'미소년' 부대, 티켓다방 점령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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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바 이어 '신종 업종'으로 호황…
007 가방 들고 차 배달, 윤락 행위까지


유흥업소들이 10대 소년들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10대 후반∼20대 초반 미소년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는 호스트 바가 우후죽순 난립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10대 소년을 종업원으로 고용해 윤락을 시키는 티켓 다방까지 등장했다.

전남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지난 2월7일 10대 소년들을 차 배달원으로 고용해 티켓 영업을 시키고 윤락을 알선한 광주시 남구 서동 우 아무개씨(29)를 붙잡아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10대 차 배달원과 성관계를 가진 김 아무개씨(21·여)를 불구속 입건하고, 티켓 다방에 고용되어 윤락 행위를 한 김 아무개(17·광주ㅈ고 3학년)·이 아무개(18) 군은 조사한 뒤 훈방했다.

경찰에 적발된 우씨는 조사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광주시 남구 월산동에 ㅈ다방을 운영하면서 미성년자 6명을 고용해 시간당 4만원씩에 티켓 영업을 내보내는 등 모두 100여 차례에 걸쳐 8백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낮에는 보통 다방처럼 여성 종업원을 쓰고, 밤에는 여성 고객만을 위한 전화를 따로 설치하고 10대 미소년들을 고용해 영업했다. 특히 이들 미소년들은 '멋진 남자가 차를 배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정민·훈이·막내 등 자신들의 가명을 새긴 형형색색 스티커를 유흥가 주변과 여성 고객에게 뿌리며 홍보까지 했다. 모두 키가 훤칠하고 용모가 준수한 이들은, 주위의 시선을 피하느라 007 가방에 보온병과 찻잔을 넣어 차를 배달했다. 말쑥한 정장을 갖추고 겨울용 바바리 코트 차림에 007 가방을 들고 차를 배달한 이들은 손님이 요구하면 시간당 4만원씩 화대 명목의 티켓을 끊고 윤락 행위까지 했다. 티켓 다방 업주는 이들이 벌어온 화대의 절반을 가로챘다.


시간당 4만원씩 화대 명목 '티켓' 끊어


심야 다방 남자 배달원들의 주된 고객은 유흥가 여성.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그리고 이들이 합숙하는 여관이나 모텔이 주요 배달처였다. 고객 가운데는 회사원·대학생·주부도 있었다. 혼자 있으면서 차를 배달시킨 여성의 경우 대개 윤락으로 이어졌는데, 여섯 차례나 티켓을 끊은 단골이 적발되기도 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인 김아무개 군(17)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 수능시험을 마친 뒤 아르바이트 삼아 자발적으로 티켓 다방 일을 시작했다. 용돈과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속칭 '남봉'이라 불리는 차 배달원 생활을 시작한 김군은 경찰에서 "티켓을 끊은 대부분의 여자 손님들이 성행위를 요구하거나 신체 특정 부위를 만져 달라고 하는 등 짓궂은 행위를 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진술했다. 여성 차 배달원이 겪는 고충과 별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이 아무개군(18)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해 차 배달원이 되었다. 실제 이들은 심야에 차를 배달하면서 커피 석 잔에 만원, 주스 두 잔에 만원으로 값을 정한 뒤, 여기에 시간당 4만원인 티켓비와 함께 여성 손님들에게 팁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밤늦게 출근해 아침까지 일하면서 하루 10만원 이상을 쉽게 벌었다.

사건을 수사한 한 경찰은 "티켓 다방 업주를 다그치니 여자 손님이 어린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10대 남봉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남성의 왜곡된 성문화에 여성도 물들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유흥가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 티켓 다방은 흔히 '호스트 바'와 '디제이 바'로 불리는 여성 전용 유흥업소와 함께 날로 확산되는 신종 업종이다. 광주 충장로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애들한테 전단을 받아 보고 호기심 때문에 차 배달을 시켰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김상겸 수사 3계장은 "이제는 매매춘에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남자애들이 호스트 바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창피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돈 잘 벌고 옷 잘 입는 이들이 또래들의 우상이 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광주에만 남자 접대부를 둔 호스트 바가 수십 개에 달할 정도로 성업하고 있기 때문에 남봉을 고용하는 다방들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스트 바의 경우 이제는 여성들의 동창회 모임이나 생일 파티 뒤풀이 장소로 이용되면서 음성적으로 대중화하는 추세이다. 또 현행 법규에 미성년자라도 부모의 동의만 있으면 휴게 음식점인 다방에 취직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 차 배달원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10대 청소년을 비롯해 20대 초반 젊은 남성들이 유흥업소 취업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호스트 바의 경우 흔히 '2차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고객과 종업원으로 만난 커플끼리 따로 만나거나 사귀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역 원조교제'인 셈이다. 유흥업소를 운영했던 최강호씨(28·가명)는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선수'(호스트바의 남자 종업원을 부르는 속칭)들의 경우 값비싼 이탈리아 수입 의류를 선물 받거나 용돈을 두둑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벌에 1백80만∼2백만 원을 호가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남성 정장에다 로렉스나 까르띠에 시계, 페라가모 구두에 미쏘니 니트 의류를 즐겨 입는다. 평균적으로 '선수' 한 사람이 입는 명품의 가격만도 천만원이 넘을 정도이다.


"잘 생기고 춤 잘 춰야 '선수' 될 수 있다"


호스트 바의 한 종업원은 "잘 생기고 춤 잘 추고 끼가 있어야 선수가 될 수 있다. 용모가 좀 떨어져도 유흥업소에 취직할 수 있는 여자애들과는 경우가 다르다"라며, 유흥업소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일하는 티켓 다방 남자 배달원 역시 준수한 용모를 비롯해 수입이나 씀씀이가 이들 못지 않다. 한창 젊을 때 돈을 벌면서 즐긴다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남자 청소년들이 호스트 바나 티켓 다방 등 유흥 업계에 거리낌없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셈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취업과 이번에 불거진 '남봉' 파문은 빠르게 개방되어 가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남녀 고교생 2천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 고교생의 성의식과 성교육 실태' 조사 결과 남학생들의 성교 경험률은 13.5%,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한 경험'이 있는 남학생은 1.1%에 달했다. 그러나 서울YMCA 청소년성교육상담실이 발표한 남자 청소년들의 성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 고교생의 성경험률은 17.9%로 올라간다. 지난해 11월 말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발표한 전국 6개 지역 남녀 고교생 성의식 조사에서는 아예 남학생의 37.9%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난해만도 광주·전남 지역 중고생 가운데 3천3백명이 가정 형편이나 학교 생활 부적응 따위 이유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까지 유흥업소는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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