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대학도 분쟁 잘 날 없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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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횡포 등으로 13곳 '몸살'…
덕성여대 옛 이사장, 복귀 즉시 교수 5명 해임


사진설명 교수 '길들이기'인가 : 아주대는 최근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1명을 해임하고 4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분쟁에 시달리기는 사립 대학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부패의 정도가 심하고 그 뿌리가 깊다. 3월17일 현재 분쟁이 불거진 대학만 13곳이다.

덕성여대는 대학 가운데 가장 심하게 몸살을 앓는 곳이다. 지난 3월15일 덕성여대 학생 100여명이 학내 집회를 열고 박원국 이사장(72) 사퇴를 촉구했다.

덕성여대 분규의 시발은 19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재단 이사회는 1997년 교수협의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한상권 교수(사학과)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박이사장은 1977년 5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20년 동안 덕성여대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학생들은 65일 동안 수업을 거부하고 2백60일 동안 총장실을 점거하며 재단의 비민주적인 독단 운영을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교수 재임용 탈락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드러나고 분규가 장기화하자 교육부는 1997년 10월 박씨를 이사장 직에서 해임했다. 그러나 박씨 퇴진은 분쟁 해결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박씨는 교육부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즉각 법원에 임원취임승인 취소처분 청구소송을 냈다.

3년을 끌어온 재판 끝에 지난 1월19일 대법원은 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씨는 승소하자마자 이틀 뒤부터 덕성여대 복귀를 서둘렀다. 1999년부터 유지된 공익 이사 체제가 지난해 무너져 박씨의 복귀를 막는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였다. 박원국씨의 친동생인 박원택 상임이사와 박이사의 아들 박상진 이사가 '공익 이사 흔들기'에 나서 이문영 이사장, 함세웅·방정배 이사 등 개혁적인 인사가 학교를 떠났다.

학생들이 박씨 복귀를 반대하는 이유는 재단의 독단적 횡포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우려는 곧장 현실로 나타났다. 박씨가 이사장으로 복귀해 주재한 첫 이사회는 교수 5명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재임용 탈락 교수 가운데 4명이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다. 1997년 자신을 몰아냈던 교수협의회에 대한 보복의 신호탄이었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는 모두 지난해 임용된 신임 교수들이었다.

지난 2월28일 해임된 김경남 교수(37·중문과)는 "교수협의회 길들이기 차원에서 만만한 신임 교수들을 본보기로 자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덕성여대 사태는 문제가 되고 있는 사립학교법의 맹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90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 재단 이사회가 인사권을 가지면서 독단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가 가능해졌다. 재단에 쓴소리를 하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목을 내놓고 활동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4일 인하대는 교수협의회 의장 김영규 교수(55·행정학)를 파면했다. 인하대는 '김교수가 재단 소유주인 한진그룹의 빚 2천억원을 학교로 떠넘겼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학교의 명예를 손상했다'는 이유를 댔다. 지난 3월7일 아주대 이일영 교수(56·의학)도 재단이 학교에 빚을 전가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임되었다.


재단에 쓴소리하는 교수들 '목 내놓고' 활동해야


사진설명 '보복 바람' 부는 덕성여대 : 1997년 해임된 박원국 이사장이 최근 복귀해 교수 5명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바람에 덕성여대는 또 학내 분규에 휩싸였다. ⓒ한향란

인사권을 재단이 쥐면서 임용 관련 비리도 사학 비리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1998∼2000년 교육부 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사회의 인사 관련 비리가 4년제 9개 대학 27건, 2년제 10개 대학에서 39건이 적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년제 전문대학의 임용 비리는 교육부 감사에서도 적발되지 않을 만큼 교묘하다. 정 아무개씨(37)는 지난해 강원도 태백의 ㄱ대학에 임용되었다. 그는 임용 때 '신입생 30명을 모집하지 못하면 해임되더라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게다가 백지 사표까지 강요당했다. 그는 교수라기보다는 '학생 모집 세일즈맨'이었다며, 자신의 처지가 보험 외판원보다 못하다고 한탄했다.

사립 학교가 대학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4년제 대학의 77%, 2년제 전문대학의 96%가 사립 학교다. 매년 사립 대학 설립 신고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교육부에는 4년제 대학 4개, 전문대 5개, 대학원 대학 4개, 기능 대학 1개 등 14건의 설립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렇다면 왜 너도나도 대학 설립에 나서는 것일까? 한마디로 대학만 세우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비리 막는 최소 장치"


지난 3월15일 오전 11시 이용구 교수(경문대 교협회장)와 같은 대학 최병수 교수는 경문대 비리를 재조사하라고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이 폭로한 자료에 따르면, 경문대학의 경우는 교육 재벌·학교 재벌 비리의 교과서다.

경문대학(전 평택공업전문대학)은 1997년 3월1일 심규섭 의원(민주당)이 설립했다. 그러다 1998년 8월 전재욱씨(61)가 이 학교를 인수했다. 전씨는 교육 재벌이다. 그가 소유한 학교만 8개였다. 전씨는 1981년부터 동우대학(강원도 속초)을 비롯해 경복대학(경기도 포천)·문막대학(강원도 원주)·경동대학(강원도 고성)과 동우여고(경기도 수원)·동원고등학교(경기도 수원)·안성종합학교(경기도 안성)를 소유하고 있었다. 2∼3년에 하나씩 학교를 세우거나 인수한 셈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전씨는 경문대학을 인수하면서 동우대학에서 1백41억1천만원, 경복대학에서 58억5천만원, 경동대학에서 57억5천만원 등 2백57억원을 빼돌렸다. 그가 이렇게 교비에 마음대로 손 댈 수 있었던 것은 족벌 체제 때문이다.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은 여덟 학교에서 노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교육부 감사로 비리가 적발되어 학교에서 물러나더라도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사학 비리가 밝혀져 비리 재단이 물러나도 분쟁은 그치지 않는다. 강원도 태백의 ㄱ대학처럼 관선 이사가 파견되어도 설립자 부인이 이사에 포진해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이사회의 친족 참여를 3분의 1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친척이 아닌 측근으로 이사진을 구성하면 비리에 연루되어 재단에서 물러나더라도 얼마든지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 게다가 2년이 지나면 복귀가 가능해 허수아비 이사장이나 학장에게 2년 동안만 학교를 맡기면 된다.

끊이지 않는 사립 대학 비리에 대해 시민단체의 요구는 한결같다. 성낙돈 교수(덕성여대·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교육위원장)는 "사립 학교를 사유 재산처럼 여기는 현행 사립학교법으로는 사학 비리를 막을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성교수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사립 학교는 더 이상 사유 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교조 김은형 수석 부위원장도 "사립학교법 개정은 사학 비리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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