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프랑스 라팔, 미국 F15 '능가'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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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사업 경쟁 기종 분석/
기술 이전·가격 조건에서 우위, 성능은 비슷


차세대 전투기(Fighter X)를 포함한 1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이 재검토되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로비전과, FX사업이 기술 도입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내에 마무리될 예정이던 FX 기종 선정은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사업 자체가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쪽은 공군이다. FX사업이 늦추어지면 공군의 차기 지대공 미사일(SAMX), 공중경보관제기(EX), 공중급유기(KCX) 사업까지 지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공군은 '한반도 공중 전력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국방부가 완제품을 도입해 빨리 실전에 배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사오든 추진 일정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군이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공군은 차세대 전투기 1백20대를 확보한다는 계획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FX사업을 추진했으나 1997년 경제 한파를 겪으며 계획의 절반인 60대로 축소되었고, 그나마 예산 배정을 거치면서 40대로 다시 줄어들었다.


FX사업이 애초의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이유는, F16 전투기를 기술 도입으로 조립 생산하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998년 이미 확보 계획이 끝난 F16을 20대 더 추가 생산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기술력 유지를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일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추가 생산을 승인했다.


그러나 공군은 FX사업에 써야 할 아까운 예산을 F16 생산에 1조원 이상 빼앗겼고, 이 때문에 차세대 전투기 물량이 줄어든 데다 도입 시기마저 늦어졌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형편이어서 공군은 FX사업 전면 재검토를 가장 염려하고 있다.


FX사업의 핵심은 앞으로 30년 동안 한반도 상공을 책임질 첨단 전투기를 확보하면서, 라이선스 생산을 통해 축적된 기술로 2010년 이후에는 같은 전투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따라서 FX를 선정하는 기준은 성능·가격·기술 이전의 상대적 우위가 기본이다. '사용군'인 공군이 요구하는 성능이 보장되어야 하고 가격 조건이 좋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이전이다. 항공산업은 21세기의 첨단 기술을 선도할 기술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기술 도입 안된다면 3∼4년 연기해야"




현재 FX를 2004년부터 실전에 배치하고 싶어하는 공군은 완제품을 요구하고, 지금까지 국방부는 일정에 지나치게 매인 분위기여서 일이 지금 이대로 진행되어 간다면 답은 뻔하다. 미국이 이 사업에 자존심을 걸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다른 나라 항공기가 아무리 우수해도 4조원이 넘는 사업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줄 수 있겠느냐 하는 논리다. FX 기종은 보잉의 F15K로 이미 결정되어 있고, 나머지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FX사업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사업의 본질은 왜곡되고 만다. 보잉의 F15K가 공군의 요구를 비교적 만족시킬 만큼 성능은 우수하지만, 가격이 비싼 데다 기술 이전 조건이 까다롭다. 보잉이 제시한 국산화 비중은 기체 부문의 15%라고 알려지며, 이런 정도로는 기술력 확보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말하자면 4조원 이상을 지출하고도 독자적인 국산 전투기 생산 계획은 고스란히 물 건너가고 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FX를 도입하면서 기술을 함께 이전받는 것이 필수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FX사업을 3∼4년 정도 미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굳이 완제품을 사야 한다면 미국이 F15의 후속 기종으로 개발하는 4세대 전투기 F22나 5세대 전투기 JSF를 도입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군과 군의 전문가들은 F15K와 프랑스 다소 항공의 라팔 MK2,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라팔을 제작하는 다소 항공은 미라주 전투기로 명성이 높은 회사다. FX사업에 후보로 올라 있는 유로파이터는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합작해 만들었지만,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차세대 전투기 라팔을 완성할 정도로 병기 분야에서 대단한 저력을 가진 나라다. 병기산업은 프랑스의 3대 전략 사업 중 하나이다.


다소는 기술 이전에 가장 적극적이다. 다소는 한국이 라팔을 선택해 준다면 한국에 항공기 공장을 짓고 자신들의 항공기 기술자 5백여 명을 파견해 공동으로 라팔을 제작한 뒤 해외에 수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보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격적인 조건인 셈이다.


이 제안은 지난해 10월 다소의 명예회장 세르주 다소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내용이다. 다소가 한국에 모든 기술을 다 주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이유는, 라팔을 개발했지만 아직까지 자국인 프랑스 공군과 해군으로부터 2백95대를 주문받은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개발비를 투자해 만든 첨단 전투기를 불과 수백 대 팔아서는 회사 운영이 불가능해 한국에 판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다소는 한국이 라팔을 도입하면 네덜란드·싱가포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잠재 시장에서도 발주를 받아내기가 수월해질 것으로 본다.


라팔의 무장·작전 수행 능력 최고 수준




다소의 라팔은 공군용으로 1인승 C형과 2인승 B형이 있고, 해군용으로는 1인승 M형과 2인승 BM형이 있다. 해군용 라팔은 2001년 말 실전 배치될 예정이며, 공군에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배치된다.


라팔 B형은 공중전·요격·지상 근접 지원·정찰(사진 촬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이며, 한국에 판매하려고 하는 기종은 라팔 C형과 B형의 수출용 MK2다. 라팔 MK2는 전자 스캐닝 방식인 RBE2 레이더를 탑재해 공중전에서 최대 40개의 목표물을 포착하며, 그 중 8개를 동시 추적해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라팔 MK2에는 스펙트라 전자전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어 적의 방공 레이더 전파를 방해하거나 발사된 미사일을 교란할 수 있다.


라팔에는 미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스칼프 EG 공대지 크루즈 미사일이 탑재된다. 미카 미사일은 사거리가 최소 500m에서 최대 60km이며, 발사 후 중간 단계부터는 레이더의 유도 없이 자체 레이더를 사용해 목표물을 추적해 파괴하는 첨단 미사일이다.


스칼프 EG 크루즈 미사일은 길이 5m에 무게 1.2t으로 미국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축소한 모양이다. 사거리는 장거리(300km)여서 조종사가 적의 대공망 밖에서 발사하면 미사일이 입력된 지도와 실제 지형을 대조해 가며 저공으로 500kg의 강력 폭약이 든 탄두를 달고 날아가 지상의 목표물을 파괴한다.


조종석은 모두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만들어 액정 스크린 3개에 무장 상태·사격 통제·항법 장치 등이 표시되며, 손가락만 대면 모든 장치가 작동된다. 라팔 MK2는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과, 같은 전투기로부터 공중에서 급유를 받을 수 있는 장치 등 특별한 기능도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기수 앞 부분에 기역자 모양으로 달린 급유 장치를 통해 공중 급유를 받으며, 작전 반경인 1,800km보다 훨씬 멀리까지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다소의 한국 홍보회사인 알프레드 사의 관계자는 라팔 MK2의 가격이 5천만 달러 이하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환율로 따진다면 1대에 6백50억원쯤이어서 40대의 기체 가격은 2조6천억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물론 가격은 무장과 탑재되는 전자 장비의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렇더라도 기본형이 5천만 달러 이하면 FX사업에 책정된 4조2백95억원만으로도 기술 도입을 전제로 한 가격 협상이 가능하다.


기술 도입이 결정되면 국내에 공장을 지어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공군이 요구하는 2004년이라는 일정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소는 공군에 전력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프랑스에서 완제품을 들여와 실전에 투입했다가, 나중에 생산되는 라팔로 교체해 철수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는, 라이선스 생산을 하게 되면 기술료 때문에 대당 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는 그 차액을 10% 내외로 잡고 있어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과연 우리 손으로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국산 전투기를 만들어낼 의지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라팔 MK2와 보잉 F15K의 성능을 비교하자면, 무장 탑재 능력과 지상 공격력에서는 F15K가 앞서며, 전자 장비를 포함해 기술적으로는 라팔이 우수하다. 기술 이전 면에서는 한국에 공장을 지어 전투기를 같이 만들자는 조건을 내세운 다소와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보잉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미국에 끌려 다닐 것인가


다소가 이토록 적극적인 공세를 펴자 잘못하다가는 한국 시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보잉은 비장의 카드를 빼들었다. F15K에 액티브 방식의 전자식 스캐닝 레이더를 달아주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먼 거리에서 적을 볼 수 있는 레이더는 전투에서 핵심을 이루는 장비이다.


전자식 레이더에는 수동식인 패시브 방식과 자동 추적 처리가 가능한 액티브 방식이 있다. 물론 수출형인 라팔 MK2에는 액티브 레이더가 탑재될 예정이며, 미국 공군은 알래스카의 엘멘도프 공군기지에 배치된 F15C 18대에 액티브 레이더인 APG63(V)-2를 장착해 운용하고 있다.


다소는 한국에 라팔을 판매하는 것이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다소는 한국에 너무 많은 것을 주겠다고 나섰고, 이에 보잉은 F15E 스트라익 이글에 탑재된 APG70 기계식 레이더를 F15K에 달아주려던 계획을 바꾸어 최신형 전자식 레이더를 탑재해 팔겠다고 수정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보잉과 다소의 경쟁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만일 정부가 F15K를 선택한다면, 다소는 한국을 도와주는 들러리 역할로 FX 로비를 마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F15 기종은 이미 미국에서 퇴역을 앞두고 있으며 더 이상 미국 공군을 위해서는 생산되지 않을 기종이다. 그렇게 볼 때, 한국은 미국이 머지 않아 도태시킬 기종을 서둘러 사주는 꼴이 된다.


제작사인 보잉이야 자기 제품을 팔기 위해 앞으로도 전자 장비와 탑재 무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면 일선에서의 운용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F15 기종이 이미 오래된 기술로 만들어진 전투기라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기술적으로 정상 수준에 있는 프랑스의 첨단 항공 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국익을 위한 선택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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