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남 걸찰, 대선 체제 '시동'?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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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간부 인사에 호남 출신 대거 중용…
정가에 '7월 사정설' 나돌아


정가에는 최근 7월 사정설이 떠돌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안기부 예산 총선자금 유용과 박노항 수사에서 별 재미를 못 본 검찰이 인사를 끝내고 조직을 안정시킨 후 곧바로 수세에 몰린 정국을 바꾸기 위해 사정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신승남 체제의 검찰이 진영을 갖추기도 전에 나돌고 있는 사정설은 함량 미달이다. 5월 사정설이 박노항과 병역 비리라는 그럴듯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7월 사정설은 알맹이조차 없다. 사람에 따라서 사정의 그림도 달라진다. 검찰 관계자는 "사정은 기획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것이다. 7월 사정설은 검찰 생리를 모르는 정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라며 불쾌해 했다. 반면 야당의 한 관계자는 "사정은 내용보다 정국 흐름이 중요한 것이다. 7월 사정설이 나온 것은 여당이 수세를 뒤집을 적기가 바로 7월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검찰과 야당이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지난 6월7일 중간 간부 인사를 끝으로 신승남 총장 체제의 진용이 드러났다. 야당과 언론 등에 의해 정치적 중립성을 계속 의심받아온 여권과 검찰은 인사를 앞두고 고민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법무부는 능력과 지역을 안배했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다.


그렇지만 요직을 살펴보면 지역 안배를 했다는 발표가 무색하다. 검찰 수뇌부가 호남 출신들을 중용해 친정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짙기 때문이다. 우선 '빅4'로 불리는 검찰의 핵심 보직 가운데 서울지검장에는 김대웅 중수부장(광주), 대검 중수부장에 유창종 대검 강력부장(충남), 법무부 검찰국장에 송광수 부산지검장(경남), 대검 공안부장에 박종렬 법무부 보호국장(광주)이 전보되었다.


사시 13회 동기끼리 치열하게 경합한 서울지검장에 김대웅 중수부장이 발탁된 것은 대검 중수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대검 중수부=정치적 목적이 있는 사정'이라는 부담이 있어, 민감한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아닌 서울지검 특수부에 배당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충남 출신인 유창종 대검 강력부장이 대선 정국에서 사정을 진두 지휘할 중수부장에 임명된 것도 중수부의 정치 색깔을 완화해 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유부장은 강직한 성품으로 YS 집권 초기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신승남 3차장과 함께 슬롯 머신 사건을 수사한, 자타가 인정하는 기획수사통이다. 하지만 검찰 일각에서는 중수부장을 호남 출신으로 임명하지 않은 까닭은 사시 14회·15회에 수사통이라고 할 만한 호남 출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사정 라인은 호남 일색" 주장




중간 간부 인사에서 가장 핵심인 서울지검 인사에서도 지역 안배에 신경을 썼다. 먼저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재경 지청장 인사를 보면, 동부지청장에 임승관 의정부지청장(광주), 남부지청장에 홍석조 서울지검 2차장(부산), 북부지청장에 홍경식 성남지청장(경남), 서부지청장에 고영주 서울지검 1차장(충남), 의정부지청장에 신언용 부산지검 1차장(전남)을 각각 전보 발령했다. 또 서울지검 1차장에 신태영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서울), 2차장에 임채진 수원지검 2차장(경남), 3차장에 박상길 대검 수사기획관(서울)이 임명되었다. 한마디로 지역색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인사다.


하지만 중간 간부 인사를 좀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울지검에서 사정 수사를 지휘할 특수 1부장에는 박영관 검찰 1과장(전남)을 임명했다. 대검에서 선거사범 수사를 지휘하던 박철준 공안 2과장(전북)은 이번에는 서울지검 공안 2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부장은이회창 총재를 정조준한 총풍 사건을 수사했다. 또 형사부의 수석이라고 할 수 있는 형사 1부장 자리에는 이귀남 청와대 민정비서관(전남)을 앉혔다. 이부장은 서울지검 특수 1부장으로 거론되었으나 사정을 담당하던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또 사정을 지휘하는 특수부장을 맡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형사부장에 임명했다는 후문이다. 또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으면서 대우·안기부 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박상길 기획관이 특수부를 지휘하는 서울지검 3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차장과 함께 대검에서 함께 뛰었던 박용석 대검 과장(경북)이 특수 2부장이 되었다. 이밖에 전국 선거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공안 2과장에 주철현 서울지검 부부장(전남)을 임명했다.





검찰 사정 라인 진용
















































직책 이름 기수 출신지
검찰총장 신승남 9회 전남
대검차장 김각영 12회 충남
중수부장 유창종 14회 충남
수사기획관 명동성 20회 전남
서울지검장 김대웅 13회 광주
3차장 박상길 19회 서울
특수1부장 박영관 23회 전남


따라서 한나라당은 이번 검찰 인사가 사정 라인을 호남 인맥으로 강화했다고 본다(표 참조). 한나라당이 편파 인사라고 평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사정 라인은 여전히 호남 일색이다. 그리고 현정권에서 사정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대로 서울지검으로 수평 이동했다. 김대웅 서울지검장이 중수부장 때 갖고 있던 수사 파일을 싸들고 서울지검으로 간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대검에 있다가 서울지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과거에도 있던 일이다.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신총장은 5월28일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세간에 떠도는 7월 사정설을 일축했다. 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그동안의 관행이나 제도 들을 재검토해 잘못된 것은 과감히 고쳐갈 것이다"라며, 검사들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개혁 총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집권 말기 여권이 검찰을 친정 체제로 만드는 것은 상식이다. 전례가 그렇다. YS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수뇌부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 전략을 총괄하는 최고 선거지휘본부라는 비선 조직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당시 청와대가 만든 대선기획서에 따르면, 이 조직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정무수석·안기부 차장·내무부장관·당 사무총장·경찰청장 등 여권 핵심 인사 10명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검찰과 청와대의 통로 구실을 하는 민정수석을 참여시켰다는 것은 검찰을 대선 정국 운영에 적극 활용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이 대선 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지난 대선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직접 보여주었다. 김총장은 DJ 비자금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해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의 사정이 정국 국면 전환에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여러 번 당해 봐서 잘 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당하기만 하던 여당이 거꾸로 칼자루를 잡게 되자 검찰의 힘을 잘 아는 야당은 총력을 다해 견제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검찰총장은 물론 대검 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호남 검찰의 사정 기획력이 과거 검찰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고 고백한다. 그렇더라도 검찰은 과거 정권에서 그랬듯이 대선 정국에서 사정기관이라는 숙명 때문에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정국 운용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는 검찰 수뇌부가 신한국당의 안기부 예산 유용 사건 수사처럼 정국을 뒤흔들 한 건을 해주기보다는 내부를 잘 통솔해 여권 인사가 개입된 권력형 비리를 발굴하는 따위의 레임 덕 악재를 만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정부가 면서기(검찰총장) 때문에 면장(법무부장관)을 바꾸었다가 낭패했다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목포 출신 신총장을 고집한 진짜 이유는 7월 이후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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