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브로커 3인방 장성·군의관 쥐락펴락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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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술·변재규·박노항, 비리·은폐 수법 해부



'김대업 테이프’에는 청탁을 받고 병역을 면제해준 병역 브로커가 여러 명 등장한다.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씨로부터 2천만원을 받고 이정연씨 병역 면제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김도술씨(58)나 테이프에서 ‘변실장’으로 등장하는 육군 헌병 준위 출신 변재규씨, 병역비리 수사 보조원으로 활동했던 김대업씨(41)도 명성을 날리던 브로커였다.


이정연·이수연 씨가 체중 미달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1990년대 초반, 고위층과 부유층 주변에서는 변재규·박노항·원용수·김도술 등 부사관 출신 전문가를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병역을 면제받는 ‘정석’이었다.
김도술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병무청과 국군수도통합병원 주변에서 ‘신검(신체검사) 분야에서는 도술을 부릴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대업씨에 따르면, 한인옥씨가 병무청 직원의 소개로 병무청 인근 다방에서 김도술씨를 만난 것도 면제받을 수 있는 ‘확실한 통로’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병무청 민원실 유학담당 직원과 한씨는 김도술씨에게 ‘(아들) 면제를 시도했다가 한번 실패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도술씨는 1998년 병무비리로 구속되어 전역하기 전까지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던 국군수도통합병원의 주임원사로 일하면서 병역비리 수십여 건에 가담했다. 김씨는 군 안팎에 발이 너르고, 군인 월급으로 자녀 둘을 외국에 유학 보낼 정도로 재산 형성에 의문이 많았다. 김씨는 1998년 구속된 뒤 겨우 10개월 복역했고, 2000년 2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비리 감시자가 비리 주도해 떼돈 챙겨


군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에 따르면, 김씨의 미국행은 ‘자의 반 타의 반’에 가까웠다. 김씨는 공소 시효가 지나지 않은 병무비리에 개입한 사실이 있다. 고위 공직자의 아들 병역 면제에도 두루 개입해 귀국 자체가 핵폭탄이 될 수 있다. 김씨가 지난 8월15일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잠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8∼1999년 군·검 합동 병역비리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까닭도 김도술씨와 무관하지 않다. 김씨는 당시 국방부 현역 장성인 ㄱ씨 아들의 ‘의병 전역’ 개입 사실을 수사반에 흘려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했다.

1999년 7월, 1차 수사본부를 이끌던 이명현 수석검찰관은 ‘수사 기밀이 새어나가고 기무사와 헌병의 반대 때문에 군 내부 병역비리 수사가 어렵다’는 보고서를 당시 국방부 정책보좌관이던 ㄱ씨를 통해 조성태 국방부장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정책보좌관인 ㄱ씨 자신이 김도술씨가 수사 과정에서 언급했던 의병 전역 비리 당사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때부터 병무비리 수사는 군 내부에서부터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꼬일 수밖에 없었다.


김대업 테이프에서 ‘변실장’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전 헌병 준위 변재규씨(64)로 밝혀졌다. 변씨는 1990년대 초반, 박노항씨(52)와 함께 병무청 파견 연락관과 수도통합병원 연락관을 번갈아 맡았다.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한다는 서울지방병무청의 한 간부는 “변재규·박노항 씨는 군 고위층들과 어울렸는데 장군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수천만원짜리 골프장회원권을 보유했던 변씨는 당시 군 장성급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


변씨와 박씨가 장악한 병무청과 국군수도통합병원 주변에는 병무와 관련된 청탁자들이 들끓었다. 당시 병무청에 파견되어 자원병 모집 업무를 맡았던 모병연락관 원용수 준위(57)도 쉴새없이 ‘먹잇감’을 날라다주었다. 병무비리를 감시해야 할 당사자들이 비리를 주도했기 때문에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목돈이 들어왔다. 변재규·박노항·김도술 씨의 재산이 수십억원대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변씨는 병역 업무와 관련한 잡음이 불거져 정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1993년 전역했다.


변씨가 군을 떠난 뒤 박노항씨가 이권을 장악했다. 수도통합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군의관은 “1990년대 초반에는 변재규씨, 중반 이후에는 박노항씨 파워가 김도술씨를 능가했다. 변씨와 박씨는 군의관들의 진급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지방의 군 병원에도 선이 닿았다”라고 전했다. 1991년 이정연씨를 면제 판정했던 전 춘천병원 진료부장 백일서씨(42)는 ‘물 좋은’ 육군사관학교 병원장으로 옮겼다.




병역 면제 시장에 불황은 없다?


2001년 4월25일, 박노항씨가 체포된 뒤 군·검 합동수사본부는 변씨를 박씨의 장기 도피 배후 인물로 지목했지만 혐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김도술씨나 박노항씨도 변재규씨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김대업씨는 변씨가 1998년 한나라당 ㅈ의원과 함께 박노항 도피 대책회의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1동에 사는 변재규씨는 현재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다.


박노항·김도술 씨 등 병역 브로커들은 주로 군의관들을 통해 병역 면제 청탁을 해결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자 저울이 아니라 추를 매달아 사용하는 계측기로 체중을 측정했다. 브로커로부터 비밀리에 청탁받은 군의관은 신검 대상자의 체중을 5kg 가까이 부풀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아들이 체중 미달이나 초과로 병역을 면제받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강창성·신영균·유흥수·김덕룡 의원과 장영신 전 민주당 의원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도술씨 등 병역 브로커들은 청탁자들을 대하는 방법도 달리했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청탁하면 큰 돈을 받지 않고, 고위직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김도술씨가 개입한 것으로 진술했다는 국회의원 ㅅ씨, 전 부총리 ㄴ씨, 전 대법관 ㄱ씨 경우 등이 그 사례로 꼽힌다. 브로커들은 대신 병무청이나 국군병원, 동사무소 직원 등을 통해 부유층 자제들의 청탁을 받으면 알선자에게 100만∼2백만원을 주고도 한 건당 2천만∼4천만원을 챙겼다.


국방부는 1998년 병역비리 태풍을 겪은 뒤 병무청과 군 병원에 파견된 헌병·기무 연락관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군내 기관 요원들이 병무청과 각 지방의 통합병원을 드나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사람들이 지금도 넘쳐나기 때문에 브로커들이 병역 면제 시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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