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일 벗는 '다이애나비의 죽음'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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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는 정보부 요원이었다”
요즘 유럽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로 술렁이고 있다. 지난 10월20일, 영국 신문 <데일리 미러>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남긴 편지를 공개한 것이 그 발단이다.

1996년 10월 작성된 이 편지에는 자신을 상대로 암살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인물의 이름까지 들어 있다.

<데일리 미러> 발행인은 법적인 문제를 고려해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에야말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블레어 정부에 충고했다. 편지를 <데일리 미러>에 넘긴 사람은 왕실 집사 폴 버렐. 그는 생전의 다이애나로부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편지를 간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그동안 다이애나의 두 아들이 진실을 소화할 만큼 성장하기를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최근 폴 버렐이 출간한 책 <왕실의 의무(A Royal Duty)>에는 다이애나가 왕실로부터 위험 인물로 찍혀 감시받고 신변 위협을 느끼는 모습과, 급기야 그들의 암살 음모를 예견하기까지의 섬뜩한 사연이 담겨 있다.

프랑스 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파리 시내 알마 터널 안에서 자신이 탄 자동차가 교각을 들이받아 사망했다. 이 ‘단순 사고설’은 영국 왕실은 물론 다이애나 가족도 그대로 받아들였고, 지금껏 다이애나 죽음에 대한 공식 버전으로 통해왔다. 하지만 영국 국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이애나의 6주기였던 지난 8월31일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 시민 27%가 암살을 확신하고 있고, 49%가 진실이 은폐되었다고 본다. <데일리 미러>가 공개한 편지는 영국 국민이 품고 있는 의혹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다이애나의 육성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올 초 영국 왕실은 파리 사건(다이애나비 사망)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이애나 편지가 나온 후에는, 직접 언급하기를 피하면서도 조사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왕실의 ‘방어전’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파리 사건의 공식 버전이 수많은 의혹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일부터 48시간 동안 다이애나가 탄 승용차를 따라 붙은 사진사들(파파라치)에게 책임을 돌렸다. 운전기사 앙리 폴이 이들을 따돌리려고 시속 180km가 넘는 속도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분석이다.

사고 났을 때 구급차에 있던 이들은 누구였나?

그러나 파파라치를 탓하던 주장은, 당시 운전기사 폴이 술에 취해 있었고 마약을 복용했다는 검시 결과가 나오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사건 당일 폴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그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이는 없다. 이것은 호텔 감시 카메라에 잡힌 사진으로도 확인되었다. 폴의 가족은 따로 검시를 할 생각이었지만, 수사 당국은 이같은 요구를 묵살했다. 수사 당국은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화장할 경우에만, 시체를 돌려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랑이 끝에 검시 기록 복사본을 받아든 가족은 영국과 스위스의 저명한 법의학 팀에 감정을 맡겼는데, 두 팀 모두 검시 기록이 신뢰성이 없다고 판정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이애나가 탄 메르세데스 벤츠를 자동차 2대와 오토바이 몇 대가 따라 붙었고, 터널 안에서 벤츠를 향해 강력한 섬광이 발사되었다. 벤츠가 교각을 들이받은 후, 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쏜갈같이 터널을 빠져나갔다는 증언도 있다. 수사본부는 벤츠와 충돌하고 내뺀 차가 피아트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야 이를 인정했다.

그 다음 의문은 다이애나가 병원에 실려가는 과정이다. 사고 현장에서 다이애나는 내부 출혈 때문에 신음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현장에 간 의사는, 다이애나가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다이애나가 앰뷸런스에 실리기까지는 약 1시간, 또 사고 현장에서 약 5km 떨어진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43분이 걸렸다. 벤츠 뒷자리가 크게 부서져 다이애나를 사고 차량에서 빼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공식 발표다. 그러나 첫 구조팀 의사는 공식 발표와 달리 다이애나를 구급차에 옮기는 데 아무 장애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사건 현장 주변에는 다이애나가 실려간 병원말고도 더 가까운 곳에 병원이 다섯 군데나 있었다. 그 중 한 곳은 프랑스 요인들의 전용 병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이애나 정도의 환자라면, 마땅히 헬리콥터라도 날아와서 환자를 수송해 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구조팀은 왜 외곽 병원을 택했으며, 왜 1시간43분이나 낭비했을까. 병원에서는 프랑스 내무장관이 구급차를 기다리면서 사건 현장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또 현장 사진에는 구급차를 세워 놓고 이동용 전화를 거는 사람과, 또 첫 구조팀이 떠난 후 구급차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이들은 누구이며 대체 누구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 것일까.

이같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전직 영국 비밀 정보부(MI6) 요원 리처드 톰린슨이 파리의 사건 담당 판사에게 ‘양심 선언’을 한 것이다. 그의 증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벤츠 운전사 폴은 영국 정보부 요원이다. 파리 사건 직전까지 정보부와 그가 접촉한 기록을 찾아야 한다. 영국 정보부는 1992년 유고연방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만들었다. 지하 터널에서 리무진을 충돌시키는 사고인데 이 때 운전사에게 광선 총을 쏜다는 구상이었다. 다이애나를 쫓아다니는 파파라치 중 한 사람은 정보부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2000년 5월, 파파라치 제임스 앤던슨이 낭트 근교 숲속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가 바로 파리 터널에 흔적을 남긴 피아트의 주인이다. 톰린슨은 파리 판사에게 첫 증언을 하고 나서 미국 NBC 텔레비전과 인터뷰하려고 뉴욕으로 갔지만 공항에서 입국을 금지당하고 제네바로 돌아왔다. 그 때가 1998년 8월 30일. 사흘이 지난 9월2일, 뉴욕에서 제네바로 가던 여객기 ‘스위스111’이 캐나다 연안에 추락해 승객 2백29명이 죽은 참극이 일어났다. 스위스 111은 톰린슨이 예약한 여객기였으니, 그는 뉴욕에서 추방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다이애나의 복수’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면 파리 사건의 진실 찾기에서 사선을 넘나들게 될지 모를 톰린슨과 버렐, 두 사람을 주목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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