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북한 전문가, 누가 진짜인가?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200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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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한반도 전문가 지상 검증/30여 명 활동…방북 경험·통찰력이 최우선 자질
최근 몇 년 사이 워싱턴에는 북한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정책 중개상이 급속히 늘어났다. 그 계기는 1994년 10월 미·북한 제네바 핵 합의문이 체결된 이후 북한 문제가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부터다. 벌써 몇 년째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가 워싱턴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요즘 북한 정책 중개상은 말 그대로 제철을 만난 느낌이다. 현재 워싱턴 정가에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줄잡아 30명에 이른다.

엄밀히 따져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북한 문제를 남북한이나 미·북한 관계라는 큰 테두리에서 보려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미국의 핵심 대외 정책인 대량 무기 확산 방지 차원에서 북한 문제를 파악하려는 비확산 분야 전문가들이다. 전자가 대북 포용파에 속한다면, 후자는 아무래도 강경파에 가깝다. 물론 북한 전문가라고 할 때 보통은 양쪽 모두를 아울러 말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는 명실상부한 한반도 전문가인가, 아니면 단순한 관측자일 뿐인가.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북한 문제를 추적하고 있는 조엘 위트 씨의 말을 들어 보자. 90년대 중반 미국 국무부 제네바 합의문실 책임자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기자에게 진짜 북한 전문가가 되려면 두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북한을 다녀온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사람을 직접 상대해본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북한을 다녀왔거나 상대해본 전·현직 행정부 관리를 빼고 민간인 가운데 북한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워싱턴의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로동신문>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북한을 단편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북한 전문가로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해리슨·토니 남궁·헤이즈 등이 첫손 꼽혀

이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면, 앞서 말한 30여 명 사람 가운데 셀리그 해리슨·토니 남궁·피터 헤이즈·케네스 퀴노네스·로버트 갈루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이른바 북한 전문가 반열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시절인 1972년 처음 북한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90년대에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셀리그 해리슨은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북한 포용 정책 신봉자이다. 그는 북한 핵 문제를 미·북한 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패키지 딜’(일괄 타결안)을 이미 1989년에 제기했을 정도로 북한 문제에 남다른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피터 헤이즈 박사는 1990년대 초부터 북한을 여러 차례 왕래하며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연구해온 1급 전문가다. 한반도에 관한 저서를 두 권이나 낸 헤이즈 박사는 현재 미국 내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노틸러스 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워싱턴에 소재한 민간 두뇌 집단 애틀랜틱 카운슬의 한국계 미국인 토니 남궁 박사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1989년 북한의 유엔 주재 허 종 대표가 미국 정부와 선이 닿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접근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미국 국무부 관리들과 북한측 인사들과 두루 친교가 있는 그는 1993년 평양에 갔을 때는 강석주 당시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미·북한 고위급 회담과 관련한 미국측 의중을 타진하기도 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퀴노네스나 1994년 제네바 핵협상의 미국측 수석 대표였던 갈루치는 모두 북한측 인사를 직접 상대해본 전직 관리들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직접 북한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북한 전문가 반열에서 무작정 끌어내릴 수는 없다. 설령 북한 체험이 있는 전문가라도 분석력이 떨어지면 북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평화연구소 스콧 스나이더 연구원이나 국제경제연구원 마커스 놀란드 박사는 북한을 직접 가보거나 북한 인사를 상대한 경험은 없지만 분석력만큼은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다. 1983년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기도 한 스나이더 연구원은 지난 몇 년간 미국 평화연구소에 몸 담으면서 한반도 상황에 관한 여러 편의 분석 보고서를 냈는데, 대부분 정확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북한 포용론자와 붕괴론자로 양분

사실 워싱턴에서 북한 전문가로 통하기 위해 굳이 이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미국 사회는 거창한 학위보다 해당 분야의 출판 실적으로 사람의 실력을 평가한다. 이를테면 정년 퇴임 때까지 기자로 있다가 1997년 <두 개의 한국>이라는 저서를 펴낸 돈 오버도퍼 씨의 경우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한반도 전문가로 발돋움했다. 또 1988∼1995년 <뉴욕 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내며 한반도 문제에 관한 논설을 쓴 레온 시걸 박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눈길을 끌게 된 계기는 2년 전 1994년의 미·북한 제네바 합의 전후 과정을 꼼꼼히 파헤친 <이방인의 무장 해제>라는 저서를 펴내면서부터다. 이 책을 두고 미국측 핵 협상 수석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대사가 ‘당시 미·북한 핵 협상의 내막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지침서’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다만, 셀리그 해리슨 씨만큼이나 대북 포용 정책 신봉자인 그를 두고 일부에서는 ‘너무 북한을 감싸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없지 않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북한 붕괴론’을 언급한 한 이름 있는 패널리스트를 면전에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난센스!’라고 윽박질러 청중석을 싸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진짜 북한 전문가인지 여부를 판별하려면 이들이 과거에 주장한 내용을 검증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대표적인 미국내 한국통인 시카고 대학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1997년 미국 원자력과학자 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지적한 대목은 꽤 시사적이다. 그는 이 회보에서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1990년 6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 붕괴론을 주장했으며, 최근까지도 이에 동조한 사람들이 많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라고 일부 북한 전문가의 빗나간 예측을 꼬집었다. 그가 언급한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종말>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미국 내에서는 대표적인 북한 붕괴론자로 꼽힌다.

사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북한에 대한 화두는 ‘언제 붕괴할 것이냐’였다. 또 이를 두고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붕괴론 쪽과 연명론 쪽으로 나뉘어 열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보수적 두뇌 집단인 헤리티지 연구소의 대릴 플렁크 씨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윌리엄 테일러 씨,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 씨가 북한 붕괴론 쪽에 무게를 두는 주장을 펼쳐온 사람들이다. 1994년 미·북한 제네바 합의 무용론자인 플렁크 씨의 경우 최근 북한정책 보고서에서, 클린턴 행정부가 지난 5년 동안 북한에 약 5억 달러나 원조했지만 단 하나도 외교 목표를 성취한 것이 없다며 북한에 대한 정책을 바꾸라고 주장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워싱턴 정가에는 이들과 같은 보수계 인사보다는 포용파 인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 북한 전문가들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크지 않다. 실제로 웬만한 세미나에 가보면 대개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대동소이해 그들의 입김이 실제 행정부의 북한 정책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고 보면 된다. 브루킹스 연구소 조엘 위트 연구원은 과거 국무부 근무 경험을 예로 들며, “이들의 주장이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영향력 있는 매체에 실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세미나에서 한 주장이라면 실제 북한 정책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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