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찬양하다 쫓겨난 중국 언론 거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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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이론지 <초우스> 왕톈시 편집국장 경질
지난해 후진타오 체제 출범 이후 ‘체제 공고화’ 작업의 일환으로 중국 언론계에 대대적으로 일었던 칼바람이 절정을 맞고 있다. 중국 공산당 최고의 이론지 <초우스(求是)>의 편집국장이 최근 전격 교체된 것이다.

<초우스>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펴내는 격주간지로 당 공식 신문인 <런민르바오(人民日報)>와 더불어 중국 공산당을 대표하는 ‘이바오, 이칸(一報一刊)’인데, 최고 권위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영향력이 큰 만큼 <초우스> 편집국장 자리는 권력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초우스>의 마오쩌둥 시절 제호는 <홍치(紅旗)>였다. 이를 1988년 당시 개혁 개방을 추진했던 중국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이 좌 편향 이데올로기 색채를 탈색시키고 실용주의 노선을 확고히 하기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 <초우스> 편집국장 자리에 앉았던 인물은 장쩌민 계열인 왕톈시(王天璽). 소수 민족 안배 차원에서 <초우스> 편집국장에 발탁되었던 그는, 재임 시절 장쩌민이 내놓은 ‘3개 대표론’의 나팔수 노릇을 해 유명해졌다. 일개 ‘이론’에 불과했던 ‘3개 대표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과 병치해 은근히 ‘사상’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 공로로 그는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6차 당 대회에 당당히 주석단의 일원이 되어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행적이 그를 <초우스> 편집국장 직에서 물러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야쥬쥬칸(亞州週刊)> 1월4일자에 따르면, ‘문혁 시기 선전 방식을 방불케 하는’ 그의 지나친 장쩌민 찬양이 최대 귀책 사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왕 편집국장이 중국 공산당 중앙의 눈 밖에 난 결정적인 사유는, 그가 후진타오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눈치 없이’ 장쩌민 찬양을 계속했다는 데 있다. 그는 상급 기관인 중국 공산당 선전부의 허락 없이 <초우스> 내에 3개 대표론을 본격 전파하기 위한 전문 연구소(일명 ‘3개대표연구원’) 설립을 추진했다. 이같은 성격의 연구소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함께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을 당의 지도 원칙으로 떠받들고 있지만, 이를 위한 별도 연구소는 아직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쩌민의 3개 대표론 연구를 위해 별도 기관을 세운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전통에 대한 ‘참월’로 비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왕 편집국장을 쳐내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후진타오 체제는 지난해 6월부터 ‘부실 언론사 정리’라는 명분으로 중국의 관영 언론에 대해 대대적인 청소 작업을 벌여왔다. 국가가 운영하는 신문·잡지 수천 종을 강제 폐간하거나 경영진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언론계에서 장쩌민 색깔을 지우고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 위한 작업에 부심해 왔던 것이다. 후진타오의 ‘언론 개혁’은 오는 9월까지 계속된다.

중국 공산당 중앙은 <초우스> 편집국장을 교체하면서, 잡지 운영에도 손을 대 편집국장 중심인 체제를 ‘사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장쩌민 세력을 솎아내고 자파 인물을 심으려 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한 ‘기술적 변화’로 보인다. 새로 사장 자리에 올라 <초우스>의 운영을 책임질 인물로는 <런민르바오> 전 부편집국장인 우헝촨(吳恒權)이 낙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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