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 비행기 30년, 실패와 성공
  • 파리·김제완 통신원 ()
  • 승인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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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30돌 맞은 콩코드, 상업적 실패 딛고 재도 약 안간힘… 미국·일본도 차세대 초음속 비행기 개발 박차
요즘 유럽에서는 2000년을 두 번 맞는 항공 상품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령 파리에서 2000년 새해를 맞은 뒤 곧바로 1월1일 0시30분 샤를 드골 공항에서 콩코드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면 99년 12월31일 22시15분 뉴욕 타르막 공항에 도착한다. 뉴욕에서 또 한 차례 21세기의 첫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시차보다 더 빠른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덕분이다. 파리와 뉴욕 간의 시차는 6시간인데 운항 시간은 3시간45분이므로 2시간15분만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두 번의 새해맞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상품은 콩코드기를 보유한 에어프랑스와 브리티시 에어웨이만이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이다. 값은 5만 프랑(천여만 원). 파리와 런던에서 각각 한 대씩 운항하므로 모두 2백명만이 이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콩코드 타면 파리·뉴욕에서 두번 ‘2000년 맞이’

콩코드가 첫 출항에 성공한 것은 69년. 지난 3월2일로 꼭 30년을 맞았다. 콩코드의 ‘출생지’인 프랑스 남부 과학 도시 툴루즈에서는 이 날부터 6개월 동안 콩코드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회고전을 열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도 차분하게 콩코드의 지난 자취를 짚어 보고 있다. 콩코드는 여객기 분야에서 ‘음속(마하 1:초속 340m)’을 깨려는 유럽인들의 오랜 꿈을 실현해 주었지만 실패의 쓰라림도 맛보앗다.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을 밟기 4개월 전인 69년 3월2일, 콩코드 001호는 툴루즈 공항을 이륙해 29분간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4월9일에는 콩코드 002호기가 영국 필턴 공항 활주로를 이륙했다. 음속의 벽은 같은해 10월1일에 깨졌다. 그리고 다시 백 번이나 시험 비행을 한 끝에 70년 11월4일 마하 2를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62년 11월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 개발 계획에 착수한 이후 모두 3백50억 프랑을 들여 이룩해낸 성과였다.

첫 출항 두 해 전에 이미 미국 항공사 5개를 포함해 전세계 16개 항공사로부터 74대를 주문받아 놓고 있었으므로 콩코드의 미래는 활짝 열린 것처럼 보였다. 전문가들은 백대를 수주하면 막대한 투자비가 빠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프랑스와 영국 정부는 73년 1월10일, 주문받은 항공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바로 이 때 ‘커다란 흰 새’의 부푼 꿈을 찢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73년 1차 오일 쇼크가 몰고온 경기 불안으로 계약 취소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보잉 747보다 기름을 3배 소비하는 것도 콩코드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콩코드가 대서양을 한 번 횡단하는 기름이면 보잉 747은 승객을 4배 태우고 2배 멀리 비행할 수 있어서 경쟁이 되지 않았다. 가격은 1억2천만∼1억5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보잉 747의 2배였다. 오일 쇼크가 끝난 뒤에도 구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비싼 가격과 과다한 연료 사용이 콩코드의 경제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렸음을 입증한다.

콩코드는 73년 9월26일 대서양 횡단 시험 비행에도 성공했으나 미국 항공사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14대만이 프랑스와 영국 국기를 달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최초의 상업 운항은 76년 1월21일 에어프랑스의 파리~리우데자네이루 노선과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런던~바레인 노선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해 카라카스·멕시코시티·워싱턴 등에도 취항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뉴욕 노선은 미국 환경보호단체들과 2년 동안 힘겹게 법정 싸움을 한 끝에 77년 11월 운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콩코드가 타산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노선은 뉴욕 노선뿐이다. 지금은 이 노선에서만 파리는 하루 한 차례, 런던은 두 차례씩 운항하고 있다. 첫 출항 30주년을 맞은 다음날인 지난 3월 3일, 미국 의회는 뉴욕 운항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 콩코드의 불운이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케 했다. 이 조처는 유럽연합(EU)이 일부 미국 항공기의 소음을 문제 삼아 유럽 취항을 금지한 데 대한 보복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원의 심의와 무역 교섭 과정을 남기고 있으므로 운항 금지가 실현될 것인가는 더 두고보아야 한다.

상업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초음속 여객기가 여전히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은 기술적인 성공 때문이다. 그동안 10여 대의 비행기가 항공 시간 21만 시간을 기록했는데도 단 한번도 사고가 없었다는 점은 기술의 승리를 잘 보여준다.

기존 콩코드는 마하 2.04의 속력에 항속 거리가 6천6백㎞로, 대서양을 건너는 수준이다. 승객 정원도 백명에 불과해 항공사가 타산을 맞추기 어려웠다. 차세대 콩코드는, 승객 2백50명 정도에 항속 거리는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만㎞ 이상, 그리고 속도는 마하 2.5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항공기 시장의 요구 사항이다. 이밖에 환경단체들이 제시한 소음 기준치를 만족시켜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가 모습을 보일 시기는 2010년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 주요 도시와 서울·도쿄 간의 운항 시간이 6시간대로 줄어든다.

비록 지난 30년간 콩코드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초음속 여객기 시장 규모가 약 5백 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미국과 일본은 망설임 없이 ‘꿈의 비행기’를 향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68년 보잉 2707이라는 이름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나섰다가 중단했던 미국의 경우, 항공우주국(NASA)이 콩코드의 러시아판인 투폴레프 144(일명 콩코르드스키) 기술을 이미 러시아로부터 싼값에 사들였다.

미국과 일본의 추격에 맞서는 유럽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 주체는 에어버스 컨소시엄이다. 1세대 콩코드는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해 만들었지만 차세대 콩코드는 유럽 4개국 연합체가 담당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 영국의 브리티시 아에로스페이스, 독일의 다임러-벤츠 아에로스페이스 그리고 스페인 국영 항공사가 각각 37.9, 37.9, 20, 4.2% 비율로 투자하고 있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이다.

그러나 각국의 상이한 정치·경제 사정과 이해 관계 때문에 원활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90년대에 지속된 경기 침체와 콩코드의 실패 때문에 주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라 별로 보면 영국이 적극적인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근년 들어 예산을 오히려 줄이고 있는 형편이다. 유럽 컨소시엄이 90년대에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는 데 투자한 연구 개발비는 미국의 5%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네 나라는 지금 차세대 콩코드 개발보다 에어버스의 성공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전세계 항공기 시장은 현재 보잉과 에어버스가 독과점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양사의 점유율이 그동안 60 대 40이었으나 지난해 들어 50 대 50에까지 이르러 에어버스가 약진세를 보이고 있다. 에어버스는 72년 10월 첫 출항한 이후 지금은 1천5백대가 넘는 항공기를 전세계의 하늘에 띄우고 있다. 프랑스 항공사, 사업가용 ‘미니 콩코드’ 개발중

에어버스는 또한 보잉 747기보다 승객 수가 두 배인 6백인승 초대형 항공기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탑승객 수가 많아 항공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투자의 안정성도 높다.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전망이 불확실하고 투자비도 2배 이상이 드는 차세대 콩코드기 개발이 썩 내키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의 닷소 항공이 끼어들었다. 미라주 전투기를 생산하는 닷소는 동체 길이 32.4m, 날개 길이 17m인 초음속 중형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가용 ‘미니 콩코드’로 불리는 이 초음속 비즈니스 제트기는 2010년 상용화를 목표로 97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마하 2 속도에 탑승 인원이 백명에 이르러 사실상 기존 콩코드와 성능이 대등한 이 미니 콩코드가 출현하면 1세대 콩코드는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할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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