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한 미사일 기지 선제 공격?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9.09.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북한 선제 공격 연구…자금·물자 교류 금지도 검토
‘방위청이 항공 자위대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는 것을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었다.’ 이는 지난 7월13일 일본 교도 통신 보도로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북한이 일본 열도 전역을 거의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노동 미사일을 발사한 93년 이후 일본 방위청은 항속 거리가 비교적 긴 F4EJ 개량형 전투기 4대를 이시가와(石川) 현 고마쓰(小松) 기지에서 발진시켜 북한 미사일 기지 상공에서 5백 파운드 폭탄 16발을 투하하고 귀환하는 작전을 연구해 왔다.

일본의 선제 공격은 헌법 위배

일본 항공 자위대는 현재 최대 항속 거리 2,900㎞인 F4EJ 개량형 전투기를 1백10대 보유하고 있다. 이 전투기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 항공모함의 주력 전투기로 용맹을 떨쳤으나, 함경북도 화대군과 제일 가까운 고마쓰 기지에서 발진해 저공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고 귀환하기에는 항속 거리가 너무 짧다.

현재 항공 자위대가 1백94대를 보유한 주력 전투기 F15J 이글 전투기의 항속 거리는 4,000㎞이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려 할 때 공중전을 치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이 전투기 역시 북한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고 귀환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방위청은 항공 자위대 전투기가 단독으로 북한을 폭격하고 귀환할 수 있도록 공중 급유기 4대를 확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가 사실일지라도 일본 항공 자위대가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북한 미사일 기지를 선제 공격하는 것은 헌법의 ‘전수 방어 원칙’에 위배된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茂成) 방위청 장관은 지난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때라도 적의 기지를 선제 공격하는 것은 법리상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적의 무력 공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반격을 위한 무력 행사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따라서 전투기들이 북한 미사일 기지를 선제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본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일 소지가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동의 없이 일본 자위대가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본 주변의 긴급 사태나 출동하는 미군에 대한 지원을 규정한 ‘주변사태법’이 지난 8월25일 발효되었다. 이 법에 따라 자위대는 전투 지역으로 출동하는 미군에 대한 보급, 수리·정비, 수색 구조 활동이 가능해졌다. 해외에서 분쟁에 휘말린 일본 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자위대 함정과 헬기를 파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사태법 어느 조항에도 일본 자위대가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규정한 근거는 없다.

한국의 홍순영 외교통상부장관과 일본의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무장관은 지난 8월23일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미사일 발사 문제에 북한이 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클린턴 대통령·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때 3개국 정상 회담을 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단독으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돌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앞서의 교도 통신 기사가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모으는 것은, 일본인들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에 큰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또다시 시험 발사할 경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지원금 10억 달러 지출을 동결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목적으로 한 이 사업과 미사일 재발사는 별개 문제라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입장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지원금을 동결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 국내 여론을 감안하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일본 정부는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사람·물자·자금을 삼위 일체로 압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에서 일본으로 입국한 사람은 2백14명인 반면 북한에 입국한 일본인은 1만2천6백명에 이른다. 주로 조총련계 재일 동포가 일시 귀국 형식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숫자다.

이들을 주로 실어 나르는 것이 원산항과 니가타 항을 연결하는 9,672t급 만경봉 92호다. 화물 여객선인 만경봉호는 승객을 최대 3백명 태울 수 있는데, 연간 7천여 명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각종 물자도 만경봉호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경봉호가 니가타 항에 입항할 때마다 대량으로 선적되는 컴퓨터·기계류·첨단 기기 따위가 북한 군사력 강화에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한반도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현대 코리아>는 91년 만경봉호 등을 통해 북한으로 가는 돈과 물자의 총액을 6백억 엔이라고 추산했다. 이같은 현실을 파악한 일본 정부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재발사할 경우 만경봉호를 비롯한 북한 화물선이 일본에 입항하는 것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경봉호 등의 입항을 제한할 경우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또 북한으로 건너가는 조총련계 재일 동포에게 재입국 허가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처도 검토하고 있다.

자민당, 북한 돈줄인 조은신용조합 재건 반대

그러나 이같은 경로로 북한으로 가는 돈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 일본 정부의 고민이 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은 94년 각종 통로를 통해 일본에서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의 총액을 연간 1천8백억∼2천억 엔이라고 추산했다. 아시카가(足利) 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정식 송금되는 금액은 연간 20억 엔 정도지만, 제3국을 경유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송금되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북한으로 보내는 각종 송금을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외환관리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작년에 중고 자동차·전기제품 등 2백27억 엔어치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수출되었고, 수산물 등이 북한에서 일본으로 2백87억 엔어치 수출되었다. 그러나 이런 수출입 통계 역시 별 의미가 없다. 제3국을 경유해 일본의 첨단 부품이 대량으로 북한에 흘러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량 파괴 무기나 특정 지역에서 통상 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있는 물자에 대해서는 수출 금지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정 지역이 북한을 겨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재발사하면 조총련과 북한의 돈줄인 조은신용조합을 재건하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경영이 파탄 난 조은신용조합 13개를 파산시켜 33개에 이르는 신용조합을 5개로 개편한다는 조총련의 계획을 공적 자금 약 1조 엔을 투입해 지원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자민당 의원들은 조은신용조합 경영이 부실해진 최대 이유가 북한에 대한 송금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은신용조합이 연간 5백억∼1천억 엔을 북한으로 송금한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이 돈이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재발사할 경우 조은신용조합 구제 계획은 동결될 것이 확실하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을 연구하고 사람·돈·물자를 규제하겠다며 단단히 엄포를 놓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