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Y2k 세대 알고 보니 ''모범생''
  • 런던·韓准燁 편집위원 ()
  • 승인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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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타임스> 18세 대상 여론조사 결과, 가족·국가관 ‘건전’
서기 2000년을 시작으로 천년의 시간띠가 바뀌었지만 심각히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밀레니엄 버그에 의한 안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기말 종말론까지 가세해 1999년 한 해 동안 지구촌 주민을 줄곧 긴장시켰던 Y2k(컴퓨터 2000년 인식 오류) 문제는 지난 1월4일 미국·영국 등 세계 주요 국가 정부가 종결을 선언함으로써 싱겁게 막을 내렸다.

같은 날 영국 땅에서는 2000년 새해 들어 성년(만 18세 생일)을 맞는 청소년을 ‘Y2k 세대’로 명명한 ‘Y2k 세대와 21세기’라는 여론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선데이 타임스>가 여론조사 기관 NOP와 함께 실시한 이 조사는 2000년 1월에 만 18세가 되는 영국 청소년 가운데 5백명을 표본 추출해 이들의 인생관과 미래관을 광범위하고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철나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영국 본토에서 대서양 건너 1만3천㎞ 떨어진 남대서양 포클랜드 섬을 기습 점령한 아르헨티나 군을 수주 만에 물리치면서, 또 다시 위대한 영국을 소리 높여 외친 1982년에 태어난 이른바 ‘대처의 아이들’이다.

<선데이 타임스>가 1월4일자에서 새해 첫 특집으로 보도한 이 보고서는 영국의 기성 세대와 언론이 새로운 세대에 품고 있는 왜곡된 편견과 과장된 우려가, 찻잔의 태풍 격으로 끝나버린 Y2k 소동처럼 인식 오류와 판단 착오에서 말미암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앙은 ‘내리막길’, 결혼 제도는 지지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사실은 18세 성인 초년생이 갖고 있는 종교관과 국가관이 기존 청소년 여론조사와 큰 격차를 보인다는 것이다. 먼저 조사 대상자의 22%(남 20%, 여 24%)만이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을 뿐, 77%가 무종교·무신앙론자로 드러났다. 1987년 이후 14∼21세 영국 청소년의 일요일 교회 예배 참석률도 무려 33% 이상 떨어졌다. 지난 4세기 반 동안 성공회를 국교로 삼아온 영국이 20세기 후반의 탈종교화를 거쳐 21세기에는 급격하게 무종교 국가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영국의 청소년 및 성인 초년생의 신앙은 퇴조하고 있으나 결혼과 국가 등 전통과 기존 제도에 대한 애착과 신뢰·소속감은 강해지고 있다. 먼저 혼인 제도에 대한 강한 지지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남녀 모두 자유롭게 상호 성적 접촉을 허용할 수 있고, 부모의 승낙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이 16세를 이미 2년이나 넘긴 이들은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전통 의식을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고 혼인 과정을 거쳐 2세를 갖겠다는 결혼 예찬론자들로 밝혀졌다. 무려 82%가 웨딩마치가 울리는 정식 결혼을 통해서 배우자를 맞겠다고 답한 것이다. 또 86%가 꼭 아이를 갖겠다며 종족 보존 의지를 보였고, 이들 가운데서도 70%가 결혼을 통해 정식으로 2세를 적법하게 낳겠다고 밝혀 건강한 가족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젊은 세대는 그들이 몸 담고 있는 국가와 인종적 뿌리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기성 세대보다 더 잦은 해외 나들이와 텔레비전 시청 등으로 외부 세계에 친숙해 다른 국가와 민족의 이질적인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지구촌 세계 시민인 영국의 18세들이지만, ‘영국은 살기 좋은 위대한 나라다’라는 설문의 가상 주장에 무려 80%가 찬성하고 13%만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 신세대가 통합 단일 왕국이면서도 연방 국가, 또는 다인종·다민족 국가의 성격을 지닌 입헌군주국 영국의 앞날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종 편견·성차별 사라지지 않을 것”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 영국 사회가 지난 20세기 후반에 복합 인종·문화 사회로 급격히 변하면서 국수주의적 백인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위기 의식을 부추기며 사회 곳곳에 심고 있는 인종적 편견 및 차별이다. ‘인종적 우월주의 레시즘은 21세기에 사라질 것이다’라는 가정에 응답자의 13%만 찬성했을 뿐 83%는 레시즘의 폐해가 더욱 악화, 또는 계속해서 사회의 화합과 조화를 해칠 것이라고 심각히 우려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37%가 남녀간 성차별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악습으로 남아 인간 평등과 사회 정의를 흐리게 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여자 응답자의 50% 이상이 비관적 입장을 나타냈다.

영국의 정치 기상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신세대 첫 유권자 군단(1982년에 출생한 71만9천1백55명)이지만, 이들의 정치관 역시 선배 유권자층인 20∼30대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실망을 표시해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 지지 정당을 아직 결정할 수 없다는 부동층이 14%, 아예 선거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정치 무관심·혐오주의자가 30%로, 전체의 44%가 기존 정치권에 큰 실망을 표시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48년 동안 군림하고 있는 영국 왕실 윈저 왕가가 Y2k 세대의 강력한 지지와 성원을 받아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응답자의 57%가 영국 왕실 및 왕정 제도 폐지에 반대한 반면 34%만이 찬성했다.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은 물론 왕실 가족의 끊임없는 스캔들로 국민의 지지도가 거듭 하락해 왔는데도 영국의 18세들은 일단 왕정 제도가 자신의 생애에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알코올 중독에 강한 거부감

기존 청소년 여론조사 관계자들이 이번 조사에서 가장 각별히 관심을 보인 부분은 18세 성인 초년생의 성생활·마약 사용·음주 실태이다. 지난 한 해 10대 미혼모 파동 속에서 과연 영국의 청소년들이 유럽의 10대 미혼모 및 임신율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는지, 영국이 청소년들에게 섹스와 마약의 메카가 되어 가고 있는지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응답자의 표본 통계를 그대로 적용하면, 18세 청소년 가운데 74%가 성관계를 경험했거나 현재 맺고 있다. 이 가운데 85%가 첫 성경험을 15∼18세에, 15%가 14세 이전에 한 것으로 드러났다. 18세까지 성경험을 한 응답자 중 3분의 1 이상이 평균 4명 정도의 파트너를, 그리고 6%는 무려 10명이 넘는 상대와 성적 접촉을 경험했다. 그러나 동성애자 간의 성적 접촉 허용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16세로 낮추려는 노동당 정부의 입법 움직임을 아직은 무분별한 성개방이라고 반대하며(반대 45%, 찬성 41%), 응답자의 5분의 4가 콘돔을 사용할 정도로 신중했다.

또 대부분의 청소년이 음주와 끽연을 경험했지만, 마리화나나 엑스터시 등 마약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전체의 91%가 음주를 경험했으며, 31%가 담배를 피워 보았거나 피우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환각제·마약을 흡입한 경험은 26%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드러그’ 경험자 가운데서도 50% 이상이 호기심으로 손을 댄 뒤 바로 중단했다고 대답해, 현재 Y2k 세대 가운데 상습 마약 흡입자는 전체 10% 미만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선데이 타임스>는 청소년들이 마약의 상습 위험성, 담배의 유해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제어할 수 있는 분별력과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마약 사용과 담배 흡연율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0년 벽두에 Y2k 세대는 Y2k 대란 우려 소동이 지구촌에서 조용히 막을 내린 것처럼 기성 세대의 지나친 우려가 고정 관념에서 말미암은 편견과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증명해 보일 것이며, 그 시기가 빠를수록 21세기 영국의 앞날은 그만큼 밝다고 <선데이 타임스> 보고서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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