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통신]‘우물안 고래’에게 개혁은 없다
  • 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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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페루 인질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그래서 그런지 1월2일에 열린 일왕 신년축하회의 참석자 수가 예년보다 5천명이나 줄었다. 하시모토 총리의 동남아 순방 계획도 큰 차질을 빚을 것 같다.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 사건은 ‘일본’자체가 표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일본 정부는 91년 일본계 2세인 후지모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직후 페루에 대한 정부개발원조를 1년새 10배로 늘렸다. 일본 재계도 직접 투자를 확대해 ‘페루의 일본화’를 노렸다.

페루의 일본화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물가를 억누르고 페루 경제를 소생시켰는가 하면,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조장해 빈부의 격차를 더 벌려 놓았다.

5년 전 좌익 무장 조직 ‘센테로 루마노소’(빛나는 길)가 일본의 국제협력사업단이 파견한 농업지도원 3명을 살해하고 ‘일본제국주의에 죽음을’이라는 메모를 사건 현장에 남기고, 이번에 ‘투팍 아마르 혁명운동’(MRTA)이 일본대사관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후지모리 정권을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 정권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 일본은 1월에 유엔 안보리 의장국으로 자동 선출되었다. 그러나 페루 인질 사건에서 보듯이 위기 관리 체제가 빵점에 가까운 일본이 ‘어떻게 세계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일본인들의 자문자답이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국제 금융자본시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작년 말 도쿄 외환·자본 시장에서는 엔·주식·채권이 일제히 하락하는 이른바 ‘3중 하락’현상이 일어났다. 엔 시세가 달러당 1백16엔대를 돌파하고, 주가 지수는 1만9천엔대로 곤두박질쳤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 뉴욕 시장의 주가 지수는 1천9백달러였다. 그것이 지금 약 6천5백달러이니 10년새 거의 3배 상승한 셈이다. 반면 일본의 주가 평균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1만9천엔대에 머물러 있다. 또 엔 시세가 3년 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같은 ‘시장의 반란’은 작년 말 77조엔에 이르는 새해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작년 10월 3년 4개월 만에 등장한 자민당 단독 정권은 행정 개혁·금융제도 개혁·재정 재건 등 세 가지 개혁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행정 개혁이란 현재의 중앙 부처 22개를 2001년까지 절반으로 줄여 획기적인 행정 효율화와 규제 완화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제도 개혁은 영국의 금융행정 개편을 본떠 금융기관의 업무 영역 규제를 철폐하고 각종 금리를 완전 자유화한다는 것이며, 재정 재건 계획은 2백50조엔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21세기 초까지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비대한 몸집 때문에 한 걸음도 전진 못하는 상황

그러나 지난 12월25일 발표된 새해 예산안은 그러한 개혁 마인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단독 정권 발족과 더불어 자민당 족의원(族議員)이 부활하여 예산안을 또다시 갈라먹기 식으로 부풀려 놓은 것이다. 이에 실망한 주식 시장은 ‘팔자’일색으로 변했다. 일본 언론들의 표현을 빌리면 일본 그 자체에 실망한 ‘일본 팔자’현상이다. 그래서 새해 일본 언론들의 사설이나 주장 난에도 일본의 위기 극복을 외치는 소리가 두드러진다.

<아사히 신문>은 1월 1일자 사설에서 21세기를 향해 질주하려면 ‘새로운 샘물을 퍼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현재의 일본을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안 고래’라고 표현하면서, 몸체는 비대해졌으나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일본의 폐색(閉塞)을 크게 우려했다.

<니혼 게이자이 신문>도 ‘2020년의 경종, 일본이 소멸한다’라는 특집 기사를 1면에 싣고, 한걸음도 내디디지 못하고 있는 개혁이 일본의 쇠약을 재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작년 11월 중국 상해 시장이 주최한 회의에 초대된 기업 명부 순위 10위 안에 일본 기업이 한 회사도 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지금 일본은 19세기 말 영국이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보면 97년 일본의 제일 우렁찬 구호는 ‘개혁’이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세 가지 개혁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일본의 쇠약증도 서서히 치유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할 경우 일본은 올해에도 우물안 고래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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