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통신]맥도널드에 잡아먹힌 ‘양육면’
  • 글·사진/李興煥 특파원 ()
  • 승인 1996.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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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에서 1.5㎞ 안에 다른 패스트푸드점을 차리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이 말은 세계 패스트푸드 업계의 불문율로 통한다. 그런데도 중국의 한 식품 회사가 이 불문율에 도전장을 내고 1년 가까이 맥도널드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남성 정주(鄭州) 시에 본부를 둔 ‘홍카오량(紅高梁) 콰이찬(快餐) 연쇄공사’가 맥도널드에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 2월. 그때만 해도 맥도널드는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왕푸징(王府井)의 북경 제1호점을 필두로 북경 시내에만 분점을 17개나 차려놓고 파죽지세로 중국인들에게 ‘빅맥’과 감자 튀김 맛을 주입하고 있었다.

하남성 본부에서 홍카오량의 ‘북경 전선’에 파견된 도우파이쥔(竇柏軍·두백군)씨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의 새로운 상표를 만들어 서양식 패스트푸드에 도전하겠다고 창립 목적을 밝히면서 “맥도널드 가는 곳엔 어디든지 홍카오량이 간다”라고 선언했다.

홍카오량의 북경 제1호점이 들어선 자리는 맥도널드에서 1.5㎞ 밖이기는커녕 채 20m도 되지 않는 길 맞은편, 바로 코앞이었다. 엄청난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맥도널드 맞은편 건물 1층에 2백여㎡나 차지하고 앉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에 도전한다는 의사를 분명히한 것이었다.

홍카오량의 주무기는 한 그릇에 10위안(약 천원)짜리 양고기 국수. 양고기 국물로 맛을 낸 탕에 넓적한 국수를 말아 손쉽고 값싸게 먹도록 만들었다. 양육면은 하남성의 전통 음식인데, 95년에 창립된 홍카오량 패스트푸드는 하남성 성도인 정주 시에서만도 무려 5천여 분점이 성업하고 있다.

중국식 패스트푸드, 매장 밖으로 들고나갈 수 없는 것이 약점

북경 1호점이 자리잡고 나서 약 2개월 동안 홍카오량의 ‘북경 상륙 작전’은 먹혀드는 듯 싶었다. 특히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의 점심 시간대에는 매장 좌석이 꽉 찼다. 하지만 맞은편 맥도널드 매장은 점심 시간뿐만 아니라 영업 시간 내내 손님이 들끓었다.

북경 1호점 개설 후 1년 안에 분점을 북경에 12개, 전국에 백 개 세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세 좋게 출발한 홍카오량의 발걸음은 점차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갔다. 홍카오량 매장은 특정 시간대에만 붐비는데 맥도널드는 왜 영업 시간(12시간) 내내 손님이 붐비는가? 맥도널드가 전세계에 1만8천개 이상 분점을 차려놓고 50년 이상 전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을 관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해도, 5천 년 동안 이어온 중국 음식 문화의 전통이 맥도널드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중국인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홍카오량은 ‘중국에서 나고 중국에서 자란(土生 土長)’ 신토불이 제품이 아닌가. 중원땅(하남)의 황톳내 물씬 풍기는 홍카오량이 토마토 케첩이나 얹은 빅맥에 항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홍카오량의 1일 평균 매출액이 1만8천위안(약 1백80만원)밖에 되지 않는데 1일 평균 임대료는 만위안(약 백만원)에 가깝다. 홍카오량에게 은근히 응원을 보내던 여론도 홍카오량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홍카오량, 혹시 아름다운 물거품은 아닌가?’

우선 간식 쟁탈전의 핵심인 상품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햄버거에 콜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국물을 곁들인 양육면을 먹는 것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을 간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맥도널드의 경우 매출 총량의 6분 1이 간편하게 싸가지고 가서 먹는 매장 밖 소비인데 , 국수는 그릇을 들고 매장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홍카오량의 차오잉 사장은 서양식 패스트푸드의 성숙된 매장 경영 방식을 배우고, 시장을 냉정하게 대하며, 수요를 창출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면서 “우리도 맥도널드를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식 패스트푸드가 12억 내수 시장에서 이제 막 한 발을 내디디면서 내린 결론이다. 1회전에 구겨져버린 중국인의 자존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양육면 사업 아이디어를 낸 도우파이린(竇柏林)씨는 이렇게 말한다. “홍카오량과 맥도널드는 누가 누구를 잡아먹는 차원이 아니다. 각기 소비자가 따로 있으며, 서로 다른 파이를 베어 먹을 것이다.”

홍카오량의 앞날 못지 않게 궁금한 것은 맥도널드를 잡아먹겠다고 나설 한국식 패스트푸드가 언제 어떤 형태로 선보일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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