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교수 "남북 문제 ''헷볕'' 은 정상회담"
  • 南文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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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다녀온 곽태환 교수 인터뷰/“김정일 통치 기반 확고…흡수 통일 두려움 생각보다 커”
북한이 곽태환 교수의 북한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곽교수는 국내 유수의 한반도 전문 연구소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이 대학 교수이다. 물론 그가 현재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학에 국제정치학 교수로 적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한국 정치학자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최근 몇년 사이에 없었던 일이다. <편집자>

방북 경위를 설명해 달라.

기간은 6월6일부터 16일까지 11일 간이었다. 해외 교포들로 구성된 한반도통일연구회라는 모임의 대표단 일원으로 방문했다.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위원장 김용순)가 초청했고, 관광 목적이었다. 평양·묘향산·금강산·판문점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이번 방북의 의의라면?

방북단 9명 중 2명이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다. 특히 나의 경우는 한국에서 현역 정치학자로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였다. 학술 교류 차원에서도 북한의 개방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가져왔던 북한에 대한 인식과 입장 등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가져 왔던 입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은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강경 보수 입장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강경론적인 접근은 우리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을 뜻하는데, 북한으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없다. 현정부가 펴고 있듯이, 적극적 포용 정책만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이번에 그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잠수정 사건으로 일부 강경파가 정부의 햇볕 정책을 비판하는 소리를 키우고 있는데….

잠수정 사건과 햇볕 정책을 연관짓는 것은 잘못이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수정 사건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일상적인 군사 활동이라 할 것이다. 정부가 이를 엄중하게 추궁해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햇볕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햇볕 정책이야말로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라고 할 것이다. 또 강경파는 틈만 있으면 북한의 안보 위협이나 남침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이번에 북한군 병사들의 왜소한 체격 조건들을 보면서, 북한이 남침 의사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전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은 없다고 결론내릴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주로 누구와 대화했는가?

만난 사람은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전경남 부위원장, 신병철 국장, 김문일 부국장, 김광기 참사관, 그리고 사회과학원 김경남 연구사 등이다. 특히 전경남·김경남 두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7월26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한다는데 이에 대해 뭐라고 하는가?

북한에서는 한 목소리밖에 없다. 즉 김정일 장군님을 국가 주석으로 추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추대한다면 언제가 될 것인가?

7월26일에 대의원을 뽑고 추대는 북한 건국기념일인 9·9절 이전에 한다고 했다. 이번 9·9절은 건국 50주년으로 행사를 크게 할 예정이라는데, 아무래도 그 전이라면 8월 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국가 주석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말도 나돌았는데….

그동안 남쪽에서는 북한 체제를 두고 여러 가지 얘기가 많았는데 현지에 가서 보니까 많은 부분이 틀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 주석 문제도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김정일 장군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승계라는 말도 안 쓴다. 추대라는 말만 쓴다. 또 남쪽에서 그동안 북한 인민군이 당보다 우위에 있고 심지어 김정일조차 통제당하고 있다는 등의 얘기들이 있었는데 이는 전혀 불가능한 얘기다. 현지에서 본 북한은 역시 당의 국가이고, 김정일의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식량난·경제난 등으로 정권 기반이 흔들리거나 주민들이 동요하는 조짐은 못 보았는가?

식량 사정이나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현지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북한 정권이 흔들린다든가 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국내 학계 일부에서는 반체제 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북한 사회의 특성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일의 통치술도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변경 지방 등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정권의 기반이 되는 평양 등 대도시는 어느 정도 물질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강제 시스템이 완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농업 작황이 어떨 것으로 보는가?

지방에 다니면서 벼가 노랗게 타들어 간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왜 저러냐고 물으니까 냉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료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 얘기로는 6월 말까지 비료가 들어오지 않으면 올해 농사도 어렵다는 것인데, 이미 6월 말을 지났고 다른데서 들어올 전망도 없기 때문에 올해 수확도 상당히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비료가 그렇게 시급하다면 베이징 회담을 타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저쪽 얘기로는, 자기들은 이산 가족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쪽이 상호주의를 내걸었기 때문에 타결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국가 간에나 통용되는 상호주의를 같은 민족 사이에 적용하려 한 것은 ‘괘씸한 일’이라며 분개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산 가족 문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전적으로 남쪽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에도 우리 일행 중 세 사람이 가족 상봉을 신청했는데 한 사람만 성사됐다. 나머지 두 사람에 대해서는 가족을 못 찾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도 제한적인 인원에 대해 제한적인 방식으로밖에는 안될 것 같다.

남북 대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는가?

모든 것이 조건부다. 즉 남쪽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안기부를 해체하는 등 연북 화해 정책을 써서 먼저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햇볕 정책이 그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 김대중 정부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 같았나?

저 사람들은 현정부나 과거 김영삼 정부나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정권의 햇볕 정책도 근본적으로는 자기들을 개방시켜 흡수 통일하겠다는 저의를 깔고 있다고 본다.

아직도 흡수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나?

물론이다. 이번에 특히 그 두려움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주영씨의 북한 방문을 허용했고 금강산 개발도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내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북한측은 금강산 개발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이런 것을 볼 때 김정일 주도로 제한적 개방에 대한 전략회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고 판단한다. 앞으로 금강산 외에도 대상 지역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북한이 흡수 통일을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 생존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이 안심하고 개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번에 그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정상 회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정상 회담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왔는데,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김대통령이 김정일을 직접 만나 얘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이 응하리라고 보는가?

바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주석 직을 맡으려는 것 아닌가.

미국 연락사무소 평양 개설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던가?

자기들은 준비가 다 돼 있으나 미국이 외교 행낭의 판문점 통과를 고집하고 있어 해결이 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판문점 통과를 고집하는 것은 결국 서울에서 평양 사무소를 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권 국가로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한국으로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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