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 중국
  • 베이징·이기현 통신원 ()
  • 승인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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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휘는’ 예식은 괴로워
중국 개방의 중심지 선전(深川)에 진정한 독신주의자는 많지 않다. 대다수 노처녀들은 말로는 독신이 얼마나 좋은데 결혼을 꼭 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미모의 화이트 칼라 계층인 이들은 결혼을 하고 싶으면서도 왜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할까. 이유인즉슨 중국 총각 중에서 ‘조건’을 다 갖춘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둔 중국 여성에게 회자되는 말 중에 ‘1950년대에는 영웅, 1960년대에는 농민, 1970년대에는 군인, 1980년대에는 학력과 결혼하고,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산으로 시집간다’는 것이 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계획 경제 시대에는 전쟁 영웅이나 노동자 출신이 인기 신랑감이었지만 개혁·개방이 시작된 1980년 이후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테크너크랫이 인기 있는 배우자로 꼽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특정 직업보다는 높은 수입·높은 학력·높은 신분 등 이른바 ‘三高’를 갖춘 배우자가 인기가 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배우자를 고른다고 해도 결혼에 골인하기까지는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다름아닌 살 집 마련이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같이 살 집이 없어서 쉽사리 결혼을 결정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국가나 직장이 집을 제공해 주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직접 살림집을 마련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의 경우, 월세 또한 살인적으로 높아서 신혼 부부들에게 보금자리 마련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집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해도 또 다른 난관이 있다. 만만치 않은 결혼식 비용이다. 중국인들에게 결혼은 가장 큰 행사이고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소홀히 치를 수 없다. 1990년대에 결혼한 부부들의 결혼식 비용은 평균 2만 위안(한화 3백만원 가량)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당시 대졸자 월급이 월 1천 위안 이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이다. 최근의 결혼식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집안의 위세는 결혼식 손님 수를 보면 안다.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대형 음식점에서 치른다. 하객의 대부분이 식사를 겸하면서 결혼 행사를 지켜보기 때문에 연회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차량의 수도 집안의 위세를 재는 척도이다. 결혼식의 식전 행사이기도 한 이 카 퍼레이드에는 벤츠·아우디·BMW 등이 동원되는 것이 기본이다. 차가 고급이고 행렬이 길수록 집안의 체면이 선다고 하니, 중국인의 과시 습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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