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협상 타결시킨 일등공신은 '쌀'
  • 南文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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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일의 쌀 제공 약속에 급선회…미국, 중국 견제하려 北과 밀착
북한 지도부는 당초 경수로 협상을 타결짓는 시한을 올해 9월로 예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 1주기인 올해 7월8일과 8·15 50주년 기념일을 넘긴 9월쯤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지어 이를 김정일의 권력 승계에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올 4월부터 김용순 북한 노동당 서기나 박길연 유엔대사가 국내 재계 인사들과 접촉할 때 흘린 내용이었다. 따라서 재계 관계자들은 북한이 애초의 계획을 약 3개월이나 앞당겨 미국과 경수로 협상을 타결한 이유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언론이 크게 부각하고 있듯이 한국형 원자로를 수용한 데 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배경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최근 재계의 북한 전문가들이 이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이 바로 쌀이다. 북한은 쌀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수로 협상을 일단 제껴 놓았다는 지적이다. “경수로가 10년 뒤의 문제라면 쌀은 바로 오늘의 문제다”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북한 대외 정책 최우선 순위는 식량 확보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북한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쌀 확보에 맞추어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식량난이 최근 1년 사이 심각하게 대두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으로부터 해마다 들여오던 곡물량이 지난해에 격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쌀을 포함한 약 백만t의 곡물을 북한에 싼 값으로 판매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중국은 공업화의 진전으로 식량 사정이 악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곡물 지원량을 급격히 줄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북한의 곡물 수입량은 93년의 1백28만t에서 약 68% 감소한 39만t까지 떨어져 극심한 식량난의 원인이 되었다. 권력승계 기념식 등을 원만하게 치르기 위해 인민들에게 배급할 쌀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7월8일 김일성 사망 1주기와 광복 50주년 기념일, 그리고 10월10일 당창건 50주년 기념일 등 기념일이 여럿 있는 데다, 김정일의 권력 승계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쌀이 절실하게 필요한 해이다.

북한은 지난 1년간 쌀을 구하기 위해 동남아 등 곡물 수출국으로 고위 외교 사절단을 파견한 바 있다. 그러나 곡물 수출국들이 국제 가격을 요구해 북한의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마련된 것이다.

우선 일본 쌀이다. 쌀 도입을 위한 북한과 일본의 교섭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국내에는 지난 5월31일 북한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이성록 위원장이 일본 방문길에 처음 일본 쌀 도입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김일성 사망 직후인 지난해 8월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일본 자민당 유력 인사와 북한 노동당 김용순 서기의 측근 사이에 비밀 회동이 있었다. 이 회동에서 북한측 인사는 북한의 식량난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일본 쌀(5만~50만t)을 장기 저리 차관으로 구매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해 왔다.

양국의 교섭은 지난해 10월21일 제네바회담이 타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올해 1월 고베 대지진으로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됐다. 즉 고베 지진 당시 김정일이 재해 의연금으로 백만달러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하는데, 일본 정부는 그 답례로 일본 쌀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북경에서 몇 차례 비밀리에 열린 북·일 수교 교섭에서는 북한에 지원할 쌀의 수량까지 결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북한과 내부 합의를 본 상태에서 그동안 한국 정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쌀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부분이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바로 미국 쌀의 북한 진출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을 것으로 본다. 일본 쌀 도입이 북한 식량난의 단기 응급 처방용이라면 미국 쌀 도입은 중·장기적 해결 방안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 쌀 도입 움직임은 지난 3월 초 북한의 고위 관리 2명이 미국 곡물 생산지인 오리건 주를 전격 방문함으로써 관심을 끈 바 있다. 북한 국제문제연구소 김충걸 부회장과 대성총국 전일훈 부회장은 재미 교포인 안동식씨가 운영하는 ‘월드 스페셜 서비스사(WSSI)’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미국 곡물수출업자들과 쌀 콩 옥수수 등에 대한 수입 상담을 벌였다. 그 결과 곡물 수출 회사인 버틀랜드사가 옥수수 5만4천t을 북한에 수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좀더 중요한 접촉이 지난 4월께 또 한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이 내용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는데, 확실한 것은 당시 결정된 쌀 수출 물량이 앞으로 있을 일본 쌀의 대북 수출 물량보다 많다는 점, 그리고 이미 미국 정부의 승인까지 받아 놓은 상태라는 점 등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나 곡물 수출 업자들은 북한을 매우 중요한 곡물 수출 시장으로 본다. 따라서 미국 쌀의 북한 진출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쌀에 이어 미국 쌀을 도입하는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북한의 대내외 일정이 앞당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쌀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수로 협상의 조기 타결 결정이 이 즈음에 내려졌다. “4월부터 북한의 태도가 매우 부드러워졌다. 아마 최종 결정은 5월31일에 내렸던 것 같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5월31일 북한 노동당 비밀 중앙회의가 열려 온건 노선으로 대외 협상에 임하기로 확정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5월31일이 주목되는 이유는, 최근 북한측에서 나오는 많은 문서들이 5월31일을 계기로 내용에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날을 계기로 북한측의 자세가 매우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성록이 일본을 방문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경수로 협상 타결과 곧이어 이루어질 일본·미국 쌀 도입, 그리고 미국의 연락사무소 설치 움직임 등으로 인해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고위 인사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자금 부족, 상중이라는 점, 김일성 주석의 시신 처리 문제, 권력 내부 정리 등 대략 네 가지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런데 최근 경수로 협상 타결과 함께 김일성 주석의 시신 처리를 서두르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런 장애 요인들이 이미 제거된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 사망 1주기인 7월8일 이후에는 권력 승계 움직임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며, 늦어도 올해 10월10일 당창건 기념일까지는 최소한 국가 주석이나 당총비서 가운데 하나는 승계하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미국과 북한의 움직임은 북한의 핵 위협 저지라는 출발 단계의 동기와 목적을 훨씬 뛰어넘어 그 자체가 미국이 동북아 질서를 재편하는 한 과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은 냉전 이후 이 지역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중국 견제라는 관점에서 북한은 미국의 전략 요충지인 셈이다. 최근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들이 사석에서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 놓는 것이 동북아 질서 재편의 첫걸음이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바로 이런 관점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북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화답’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만의 국제 지위 회복에 초점을 맞춘 ‘두 개의 중국 전략’으로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 쌀 문제로 인해 중국과 불편한 관계인 북한이 최근 대만과의 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미국측의 움직임에 화답하고 있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바로 이 점은 최근 한국이 중국의 도움으로 대만의 고웅 시를 꺾고 2002년 아시안 게임을 부산으로 유치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남북한은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입장이 뒤바뀌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대만의 국제 기구 복귀 문제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올해 연말쯤, 미국과 중국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세력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한국 외교에 또 한 차례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자존심 경쟁에만 몰두해온 한국 외교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머리 위에서 진행돼온 아시아의 세력 판도 변화라는 격랑에 부딪혀 떠내려갈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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