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망언에 침묵하나
  • 양기웅(한림대 교수·국제정치학)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06.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이 처한 식량 사정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대북 식량 원조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와 일본의 보수적인 지도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서 무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라는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72) 전 일본 외무장관의 망언에 대해 한국은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일본측의 사죄와 발언 취소를 요구했다. 그런데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이례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이례적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처지에서 보면 지금껏 북한을 지탱해준 것이 항일 투쟁의 역사와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과 국교 정상화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이고 보면, 30년 전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한일합방조약의 국제법상 지위 문제는 북·일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일 것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냐에 따라서 북한이 일본한테서 받게 될 돈의 명칭과 성격이 달라질 것이며, 북한의 주체적인 역사도 새롭게 씌어질 것이다.

일본 자극하면 미·북한 협상에 어려움

왜 북한은 이 시점에서 침묵하고 있는가. 첫번째 가설은, 북한을 철저한 정치적 현실주의자로 보는 것이다. 미·북한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일본은 서둘러 북한과 수교 협상에 나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일본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유리한 교섭 지위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이 원하는 국제 사회의 승인과, 개혁·개방을 위한 돈을 얻어내는 것이 미·북한 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북한 협상의 성공을 위해 북한은 한·미·일 공조 체제의 균열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하면서 한국을 소외시킨다는 기존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일본을 자극해 한국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은 일본에게 북·일 수교협상 재개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미·북한 협상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온건하게 만들려 할 것이다. 사실 북·일 수교는 일본의 전후 처리 외교의 완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개편되는 동북아 질서라는 관점에서도 일본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망언 문제로 일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본의 아니게 남·북 공조가 발생할 수도 있고, 일본을 자극하면 미·북한 협상의 성공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북한에게는 교과서적인 사례가 있다. 70년대 초의 미·중 관계 정상화 이후 중·일 국교 정상화를 유리한 교섭 지위에서 처리한 중국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침묵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周恩來 같은 김정일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북한을 경제적 현실주의자로 보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실리이다. 현재 북한의 국가 목표가 북한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개발을 이룩하는 것이거나 혹은 중국식 개방정책이라면, 북한이 필요한 것은 등소평의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돈과 미국의 시장일 것이다.

더욱이 당장 위기에 가까운 식량 사정을 감안한다면 식량 원조 요청 대상국인 일본을 자극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만일 사정이 그렇다면 현재 북·일 수교 협상에서 일본 연립정부 내의 중추적인 인물이며 게다가 대북 식량 원조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와 일본의 보수적 지도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여 북·일 수교 협상 분위기를 냉각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침묵을 해석할 수 있다면 나진·선봉은 30년 전의 마산이 될 것이며, 우리는 박정희 같은 김정일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여기에는 몇 가지 사실이 공통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즉 한국은 북한의 침묵을 통해 △북한 외교가 이데올로기나 명분보다는 실익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 △대단히 유연하다는 것 △북한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합리적이라는 것 △당분간은 남북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와타나베 망언을 해석하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그의 망언을 하나의 버릇으로 돌리거나 군국주의 세대의 구차한 자기 변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또 사회당이 주도한 국회 부전결의안 채택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 표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와타나베의 망언에는, 부전결의안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이라는 문구가 삽입되면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며, 자신들의 정체성이 상실될 것이라는 일본 보수 세력의 분명한 손익 계산이 반영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아시아·태평양 시대로 묘사되고 있는 21세기를 준비하면서 일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국가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국가 목표가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든 친구친아(親歐親亞)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와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