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부딪힌 유럽 단일 통화
  • 파리·高宗錫 편집위원 ()
  • 승인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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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새 좌파 정부 미온 태도로 ‘단일 통화’ 진로에 먹구름
유럽연합(EU)내 양대 주축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오는 99년 실현을 목표로 추진해온 유럽 단일 통화(유로) 출범 노력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이같은 어려움은 총선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좌파 정부가 최근 유로 채택에 따르는‘안정화’협약의 조인 연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부터 예상되었다. 프랑스 좌파 정부는 안정화 협약안이 경제 성장과 고용 촉진 면에서 미흡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처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안정화 협약이 설령 채택된다 해도 아직 양국의 이견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끊임없는 충돌이 예상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유로 문제에 은근히 조바심을 나타내온 영국·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까지 논쟁에 가담할 것으로 보인다.

실상 독일은 이번 암스테르담 정상회담에서 안정화 협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주 프랑스에 커다란 양보를 한 바 있다. 즉 안정화 협약을 통과시키는 대신, 프랑스 요구대로 미래의 유럽 중앙 은행이 독주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회원국의 재무장관들로 구성된 일종의 ‘경제 정부’를 설치하고, 안정화 협약 자체에다 유럽의 고용 증진 프로그램을 추상적으로 삽입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초 순수히 통화 정책의 영역에 속해 있던 안정화 협약을 전반적인 경제 정책 수준으로 확대하는 데 독일이 동의한 것이다.

조스팽 “안정화 협약보다 고용 증진이 중요”

단일 통화를 향한 빠른 일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정 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독일 재무부의 연방은행 보유 금 재평가 시도가 최근 야당과 연방은행측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유럽 화폐 통합 구상의 중심국인 독일에서마저 단일 통화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두 나라가 국내에서마저 단일 통화를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화폐 통합이 당초 예정대로 99년 1월1일을 기해 이루어지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독일이 주도해 96년 겨울 더블린 회의에서 대강이 합의되고 이번 암스테르담 정상회담에서 세부적 조항이 마무리된 안정화 협약의 골자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단일 통화 출범 조건으로 정한 정부 재정 적자의 국내총생산 3% 미만 규정을 99년 1월 이후에도 회원국들이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알랭 쥐페 총리의 이전 우파 정부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건 충족을 구실로 삼아 지나친 긴축 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은 것을 목격한 프랑스의 새 좌파 정부가 이 협약에 미온적인 것은 당연하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재무장관은 지난 6월9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재무장관회의에서, 프랑스가 안정화 협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상세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해, 지금 상황에서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암스테르담 회담의 공전을 미리 예고한 바 있다.

당초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입장은 더 강경했다. 그는 좌파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안정화 조약은 우파 정부가 독일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것이며, 그것은 예전의 사회당 정부가 체결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당과 자신은 그것에 구속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공언했다. 실상 실업자가 넘쳐나고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드센 유럽연합에서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 아래로 묶어두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독일과 베네룩스 3국뿐이다.
우파 정부 때 제정된 반(反)이민법(드브레 법)의 피해자(불법 체류자)에 대한 대대적 체류 지위 합법화를 지난주에 발표함으로써 시동을 건 프랑스 좌파 정부의 정책은, 12.8 %에 이르는 실업률을 낮추고 우파 정부가 감축한 사회 복지를 복원하는 데 중심을 둘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 정부가 안정화 협약은 안중에 없이 유럽적 수준에서 고용창출계획을 만들자고 요구한 것도 고용 증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책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이런 정책은 국내 노조들로부터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독일은 당초 유럽 고용창출계획에 극력 반대했다. 이 프로그램이 회원국의 분담금을 크게 늘리게 될 것이고,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독일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화 협약을 살리기 위해 독일이 고용 문제에 관해 프랑스에 크게 양보하면서도,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재정 적자 기준율을 마지노선으로 고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콜 정부도 사민당의 ‘유로 연기’ 공격에 직면

안정화 협약에 대한 프랑스의 미온적 입장은 독일에서 콜 총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유럽 통합 완성을 기치 삼아 내년 총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콜에게 단일 통화를 향한 길에서 잡음이 생기는 것은 정치적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르크’라는 경화를 ‘유로’라는 연화와 바꾸는 것을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화페 통합 과정에서의 회원국간 갈등은 유럽연합이라는 구상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것은 곧바로 유럽을 상표로 삼고 있는 콜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의 정치 풍향 자체가 왼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모임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가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1일 영국에서 흐드러지게 핀 붉은 장미가 꼭 한 달 만에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에서 피어나는 것을 우울하게 목격한 콜로서는, 그것이 내년에는 라인 강을 건너 독일로까지 번져 사회민주당에게 권력을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유권자들이 우파연합의 장기 집권, 정확히는 콜 개인의 15년 장기 집권에 싫증을 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영국·프랑스에서 차례로 좌파가 집권함으로써, 이제 유럽의 큰 나라로서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을 제외하면 스페인밖에 없다.

게다가 국내 경제 사정도 콜에게 유리하지 않다. 독일 정부의 재정 적자는 아직 국내총생산의 2.9%에 머물러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3% 미만 기준을 지키고 있지만, 그 기준율 안쪽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화페 통합을 주도하는 독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의 연방은행 보유 금 재평가 소동도 재정 적자를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기준율 밑으로 묶어놓고 안정화 협약 확정을 주도하려는 독일 정부의 안간힘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사민당을 이끌고 맞설 가능성이 큰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노골적으로 유로를 연기하라고 주장한다. 만일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지금의 정치 지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독일 사민당이 내년에 집권한다면, 단일 통화 출범이 2000년대 어느 시점으로 미루어지거나 근본적으로 재고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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