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족 관리 엄격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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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족 관리 엄격…사토ㆍ무라야마 일가 깨끗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의 주변 인사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지금, 일본에서도 한 거물 정치가의 친족들이 비리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최강 수사기관 도쿄지검 특수부는 11월7일 전 신진당 소속 거물 정치가 야마구치 도시오(山口敏夫) 의원의 친누이와 동생 등 8명을 배임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올 봄 은행돈 3백40억엔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전 도쿄협화신용금고 다카하시 이사장으로부터 아무런 담보 없이 약 40억엔을 대출 받아 골프장 건설 등에 유용한 혐의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또 야마구치 의원이 이사로 있는 여가후생문화재단의 기금 일부가 친족 기업에 대한 은행 융자 때 담보로 제공된 증거를 포착하고, 야마구치 의원의 개입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지검 특수부는 곧 야마구치 의원을 소환하여 조사한 뒤 그를 정식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선 의원인 야마구치는 76년 록히드 사건이 일어나자 자민당의 금권 정치를 비난하고 ‘신자유 클럽’을 결성해 한때 자민당을 떠난 적이 있으나, 고노 외무장관과 함께 다시 자민당 와타나베파의 중진 정치가로 복귀했다.

자민당 장기 정권이 무너진 이후 그는 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따라 신진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는 친인척 비리 사건이 국회에서까지 문제가 되자 신진당을 탈당해 현재는 무소속으로 있다. 자민당·신자유클럽·신진당으로 당적을 전전하는 동안 그는 독특한 정치 감각으로 당시의 실력자들에게 접근해 ‘정계의 해결사’라는 소리를 들어 왔다.

그러나 ‘금권 정치 타파’를 외치고 자민당을 뛰쳐나간 적이 있는 그가 실은 누구 못지 않은 ‘금권 정치가’였음이 이번 사건으로 밝혀졌다. 그는 또 자기 친족들이 대리 경영하는 수많은 패밀리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위장 사업가’임이 드러나 정치 생명이 끝장났다는 것이 대다수의 관측이다.

한편 두 달 전 일본에서는 왕족들이 관례로 받아온 사례비가 큰 문제가 되었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죽은 쇼와 왕의 동생인 다카마쓰 궁가는 20여 년 전부터 오쓰(大津) 시, 사가(滋賀) 현, 오사카(大阪) 부 등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경륜 대회에 우승패를 수여하는 대가로 약 1억2천만엔을 받아온 것이 밝혀졌다. 또 현 아키히토 왕의 사촌 동생인 미카사 궁가도 마에바시(前橋) 시 간토자전차경기회로부터 사례비 2천2백만엔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왕세자 장인은 도리어 불이익 당해

일본 왕실경제법에 따르면, 왕족이 연간 1백60만엔 이상의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 국회 결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같은 금액 이상의 재산을 양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 왕족들에게는 품위 유지비 명목으로 한 사람당 연간 최고 3천만엔이 지급된다. 이는 가족이 있는 경우 그 지위에 따라 약간 늘어난다. 그런데 왕실 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나라에서 주는 왕족비는 그들의 생활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문제가 된 다카마쓰 궁가는 운전사·가정부 등 사적 고용인을 10명 가량 두고 있다. 그래서 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업들이 주최하는 골프대회나 파티에 참석하여 거마비조로 받은 사례금을 생활비로 써 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에 밝혀진 사례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왕실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왕족을 관리하는 궁내청은 이같은 잡음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달 자치단체로부터 받아온 돈을 모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조처는 왕족 개개인의 문제가 ‘왕가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진화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도 최고 권력층의 이같은 친족 비리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니다’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나루히토 왕세자비인 마사코의 부친은 현재 유엔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마사코가 왕세자와 결혼한 이후 부친 오와다씨의 거취 문제가 주목되어 왔다. 오와다 대사는 딸이 결혼할 당시 외무성 관료의 정점인 사무차관 직에 있었다. 물론 자기 딸이 왕세자비로 간택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의 관례대로 한다면 오와다씨가 사무차관 직을 마치면 주미대사나 주한·주중 대사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딸이 왕세자비로 간택된 죄 아닌 죄로 그는 명예직인 유엔 대사로 낙점되었다. 미국이나 한국·중국 대사로 나갈 경우 민감한 정치 현안이 많기 때문에 왕세자비의 부친이 맡기에는 부적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동생 아키시노의 부인인 기코씨의 부친은 학습원 대학 교수다. 일가가 사는 집은 방 세칸짜리 대학 관사. 집이 좁아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품을 둘 곳이 없어 애를 먹었다. 딸이 왕가로 시집간 이후도 가족 3명이 방 세칸짜리 대학 관사에서 그대로 눌러 산다.

이에 비해 왕후 미치코비는 재벌인 닛신(日淸)제분가 출신이다. 현재도 그의 가족이 그룹 기업들을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치코비가 왕가로 시집간 뒤에 정부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왕의 인척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그룹 경영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다. 이렇게 보면 일본 최고의 권력자로 볼 수 있는 왕가의 친인척 관리는 엄격하다. 왕족들이 관례처럼 받아온 사례비를 궁내청이 즉각 반환한 것도 하나의 예다.

재임 기간이 5년이나 되는 한국의 대통령과 정파 간의 권력 구조에 의해 수시로 교체되는 일본의 총리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7년8개월이나 총리 자리를 지킨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재임중 친인척들을 비호했다거나, 친인척들이 그의 권력을 믿고 날뛰었다는 얘기는 없다.

물론 그의 부인 히로코 여사는 남편이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숱한 화제를 뿌렸다. 예를 들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편으로부터 자주 따귀를 맞았다”고 가정 생활을 폭로해 사토 총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또 남편을 따라 외유를 떠날 때 미니 스커트 차림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라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히로코 여사가 남편이 총리로 있는 동안 누구처럼 거액을 챙겨 손가락질을 받은 적은 없다.

무라야마 총리 부인, 24년간 직원 식당 경영

현 무라야마 총리의 부인 이름이 ‘요시에’라는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드물다. 부인이 화제에 오르는 일도 없고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총리가 간호사이던 요시에 부인과 처음 만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이다. 그가 오이타(大分) 시 의회 선거에 처음 도전해 낙선한 무렵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80년 총선거에서도 떨어졌는데, 요시에 여사는 이런 남편을 대신해 생계는 물론 정치 자금 뒷바라지까지 도맡아 해왔다.

그 밑기둥이 오이타 현 직원공제회로부터 위탁받아 24년간 경영해온 직원 식당이다.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계속되는 식당일로 요통이 생겨 9년 전 은퇴했으나, 남편이 총리가 된 뒤에도 상경하지 않고 선거구를 지키고 있다.

요시에 부인을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하는 사람이 비서관을 겸직하는 둘째딸 나카하라 유리(中原由利)씨다. 나카하라 여사는 가족과 함께 도쿄 변두리에서 사는데, 가정부 없이 혼자서 가사를 처리한 뒤 지하철을 타고 부친의 의원 사무실로 출근한다.

작년 7월 서울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도 나카하라 여사는 퍼스트 레이디 자격으로 방한했다. 이 때 손명순 여사가 준 선물은 한국의 맛김이다. 나카하라 여사는 그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총회 때 손명순 여사를 다시 만나 “한국 김으로 애들 도시락을 싸주었더니 무척 기뻐하더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총리 부인의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르고 지내는 일본인들. 가정부 없이 가사를 꾸려가며 아이들 도시락을 손수 싸주는 퍼스트 레이디. 이런 풍토에서는 권력자의 친인척이 날뛸 여지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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