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밀수·외환 범죄와의 전쟁
  • 난징·성진용 통신원 ()
  • 승인 1998.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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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 위기·위안화 가치 고수 틈타 기승…관료 부패에도 선전 포고
요즘 중국은 밀수범·외환범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중국 정부가 몇 달씩이나 계속해서 ‘철저한 단속’과 ‘엄한 처벌’을 부르짖는 아주 살벌한 분위기다.

중국은 얼마 전 형법을 수정해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하기로 했다. 또 지난 10월27일 9회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 상임위는 외환을 빼돌리는 행위는 물론이고 불법으로 외환을 팔고 사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에 집어넣었다. 처벌 범위도, 국유 기업과 사업체에서 모든 개인 사업체 그리고 외환 범죄를 도와 준 외환 관리 기구와 금융 기구에까지 확대하는 결정안(초안)을 마련했다.

밀수와의 전쟁은 지난 7월 중순 ‘전국 밀수 단속 공작 회의’를 통해 그 포문을 열었다. 그후 밀수를 전문으로 단속하는 특별 경찰대가 조직되었으며, 그들의 활동은 지금까지 4개월 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전에도 종종 있었던 밀수와 외환 범죄가 올 하반기 ‘개혁의 표적’으로 떠오른 것은 현재 중국이 맞닥뜨린 경제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범죄가 중국 경제 현안인 ‘아시아 경제 위기’와 ‘위안화 가치 고수’를 토양으로 삼아 날로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국제 수지 흑자인데도 외환 보유고는 감소

현재 중국의 국제 수지 흑자는 늘어나는데 외환 보유고는 주춤거리고 있다. 올 8월 말까지 중국의 무역 수지 흑자는, 아시아 경제 위기로 인해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백13억8천만 달러나 된다. 그런데 외환 보유고는 6월 말 현재 1천4백5억 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오히려 29억 달러 정도 감소했다.

이렇게 무역 수지 흑자가 증가하는데도 외환 보유고가 감소했다면 그 차액이 외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올 상반기 외채 총액은 1천3백79억 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오히려 70억 달러 늘었다. 결국 외화가 해외로 대량 빠져나갔거나 위안화 평가 절하를 겁낸 기업이나 개인이 달러를 금고 속에 감추어 놓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밀수 문제가 전에도 심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아시아 지역의 경제 위기로 밀수품의 양이 증가하고 품목도 다양해졌다. 중국만 화폐 가치를 내리지 않아 상대적으로 값이 싸진 한국과 동남아 상품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용차를 비롯한 값비싼 외제품 밀수도 큰 골칫거리이다. 지난 7월19일 영자 신문 <차이나 데일리>의 주말판인 <비즈니스 위클리>는 ‘지난 한 해 중국에 들어온 외제차가 최소한 10만대로 추산되어 공식 세관 통계 1만대의 10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달러의 해외 유출은 중국 경제에 커다란 손실을 입히고 있고, 암시장에서 달러 값이 계속 비싼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평가 절하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이 위안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데 장애가 된다.

밀수 역시 중국 기업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며 시장 질서를 해치고 있다. 결국 아시아 경제 위기를 바탕으로 극심해진 밀수와 외환 범죄는 아시아 경제 위기 탓에 심해지는 중국의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켜 중국이 올 하반기 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올 하반기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천억 위안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경기 부양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9월 주룽지 총리는 자신의 공약인 8% 성장 목표를 재확인하고 경제 총력전에 돌입했다.

중국이 경기 부양에 역점을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필요한데, 아시아 경제 위기로 수출 부문에 큰 기대를 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 성장률은 지난해 20.8%에서 올 상반기 7.6%로 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위안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중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출 부진이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씩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은 지난해 말 3.1%이고, 실업자 수는 3천7백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농촌의 유휴 인구와 도시에서 유랑하는 농촌 인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제 실업 인구는 공식 통계의 2배가 넘는 8%에 이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나, 실업자가 1억∼1억5천만 명에 달하리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실제 중국의 실업 인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또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된 긴축 정책으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각해졌고, 올해는 ‘대홍수’라는 악재까지 겹쳐 중국 경제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밀수·외환 범죄와의 전쟁은 얼마나 효과를 보고 있을까? 전국적 차원의 밀수 단속이 전개된 지 4개월 가까이 지난 요즘,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밀수에 대한 적발 건수가 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중국 공상행정관리국(工商行政管理局)은 지난 10월 중순까지 밀수를 5백47건 적발했는데,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전부 2억6천만 위안에 달한다.

밀수 단속의 성과는 관세 수입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장쑤성(江蘇省) 하이관(海管)의 경우, 정상 경로를 통한 수입이 활발해져서, 지난 10월의 관세 수입이 9월보다 69%나 증가했다. 중국 언론은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밀수 단속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밀수 단속은 경제 투쟁일 뿐 아니라 정치 투쟁”

그러나 중국의 부패 구조가 너무나 뿌리 깊기 때문에 이번 단속이 일시적인 효과를 보는 데 그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다. 난징(南京)의 택시 운전사 탕(唐) 아무개씨는 “어떤 식으로든 관리들과 손을 잡지 않고는 밀수가 불가능하다”라며 중국 관료 사회의 부패를 꼬집었다. 그는 또 요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홍옌빙(紅眼病)에 걸린 중국 사람이 많다고 말하면서 “중국 사회의 부패가 관료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주룽지 총리와 중국 당국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칼을 빼든 것은 아니다. 밀수와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밀수 단속은 경제 투쟁일 뿐 아니라 정치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밀수와의 싸움은 중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면서 동시에 밀수범과 결탁한 당·정·군 및 사법부 내의 부패 세력들을 청소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위안화 평가 절하 얘기가 한창 나돌던 지난 8월 난징에서는 시민들이 물가 인상을 우려해 쌀을 사재기하려는 움직임이 잠깐 있었다. 그같은 염려와 달리 최근 물가는 별다른 변화 움직임이 없지만 암달러 시장은 단속 이후에도 여전히 활발해 보인다. 한때 은행 환율과 암시장 시세는 100달러에 100위안까지 차이가 날 정도였는데, 정부의 단속으로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 폭이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암달러 시장에는 여전히 암달러상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어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위안화 가치 변동 추이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주룽지 총리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위안화 가치를 고수해 온 탓에 수출 성장의 길이 가로막히고 밀수와 외환 범죄까지 증가하므로 미국과의 약속을 깨고 평가 절하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인플레를 유발하고 국제 신용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평가 절하를 쉽게 단행하지 못하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인플레 위험은 위안화 평가 절하만이 아니라 국채 발행 등을 통한 경기 부양책에도 숨어 있다.

“옳은 길이라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나라를 위해 죽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다 바칠 뿐이다.” 지난 3월 비장한 취임사로 개혁 의지를 밝혔던 주룽지 총리, 그가 거머쥐고 있는 개혁의 칼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 있지만 풀어야 할 매듭이 너무 많고 복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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