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호황 누리는 미국의 ‘흥청망청’
  • 워싱턴 · 卞昌變 편집위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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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가 급등 · 내수 시장 폭발 ‘사상 최고 호황’ … 80년대 구조 조정 덕분
유네트라는 전화 회사에서 일하는 스티브 하드(25)씨는 연봉 2만8천달러를 받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의 아내도 비슷한 연봉을 받는다. 95년 입사한 하드 부부는 궁리 끝에 한 가지 재테크를 생각해 냈다. 월급과 보너스를 주식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통신업계 거인인 월트컴 사 주식을 4만달러어치 사들였다. 주가는 1년 만에 2.5배나 올라 현재 남아 있는 주식의 가치만도 무려 10만달러에 이른다. 배당금 등 투자수익으로 휴가를 다녀오고 할부금도 같았다. 월드컴 주식은 2년 안에 두 배 넘게 치솟을 가능성이 높아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도 2년 뒤에는 30만달러 가까운 돈을 거머쥐게 된다. 이들은 이 돈으로 연 20% 수익률을 보장하는 뮤추얼 펀드에 투자해 거기서 나오는 이자 5만~6만달러로 생활을 꾸려 갈 생각이다.

미국 경제가 사상 최고로 호황을 누리면서 요즘 미국 전역에는 하드 부부 같은 알짜배기 부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한 예로 90년 인텔사 주식을 사들인 사람들은 싱글벙글이다. 그동안 주가가 무려 15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월6일 다우 존스 주가지수가 9000대를 돌파하면서 기업이나 가계 모두 경기 호황의 특수를 톡톡히 맛보고 있다. 8000선을 돌파한 지 겨우 8개월여 만에 9000선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10000선을 돌파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 같다. 얼마 전까지도 아시아의 경제 위기 여파로 미국 경제가 적지 않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던 경제학자들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 과열 현상’ 을 보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경기가 과열될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플레 현상마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인플레가 줄면 실업률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 반대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73년 석유 파동 이후 최저인 4.7%로 완전 고용률(또는 자연 실업률)이라는 6%를 훨씬 밑돈다. 전국적으로 매달 30만개씩 일자리가 새로 생길 정도다. 시간당 평균 임금이 무려 12달러60센트에 이르러 실질 임금 상승률이 인플레율을 넘어섰다.
“미국 경제의 르네상스는 21세기에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할인점이나 백화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인파가 몰려 국민들의 씀씀이가 흥청망청이다. 내수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자 지난해 국내총생산(GNP)도 4%나 늘어났다. 전통적으로 미국 경제는 대외 무역보다는 내수 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내수 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이같은 미국 경제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 경제가 오늘날과 같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인 93년 초부터였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를 세계의 기축 통화로 삼은 브레튼 우즈 체제가 70년대 중반에 무너지면서 많은 경제학자가 미국의 시대가 가고 일본과 서유럽의 시대가 찾아 왔다고 믿었다. 특히 80년대 초 레이건의 공화당 정부가 국방비 증액 및 감세 정책을 추구하면서 재정 적자가 불어나고 국제 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자 미국의 경제적 패권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냐는 견해마저 나왔다.

그러나 오마에 겐이치 같은 기업 경영의 대가는 다른 시각에서 당시를 해석한다. 80년대를 통해 미국이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은 것은 경제가 허약해서가 아니라 본격적인 구조 조정을 통해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진통기’ 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첨단정보산업의 밑거름이 80년대부터 뿌려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레이건 정부가 기업 활동을 묶는 각종 규제를 완전히 철폐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구조 조정이 원활하게 된 것이 오늘날 호황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구조 조정 과정에서 82년 한때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았지만 당시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 지금은 4%대까지 떨어졌다. 미국은 80년대에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본격 구조 조정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대호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자문회사인 매킨지 사의 일본 지사장을 지낸 오마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일본 경제는 끝났다’ 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어 관심을 끌었다. 그의 논리는 무척 간단하다. 일본이 미국처럼 일찌감치 구조 조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한마디로 일본에는 빌 게이츠와 같은 창조적인 인물이 생겨날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을 오마에는 일본의 교육 제도에서 찾는다. 즉 대다수 일본 학생이 명문 대학을 나와 대장성 같은 엘리트 정부 부처나 소니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죽자사자 암기식 교육에 매달려 있는 한 일본은 절대 미국을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도요타 자동차의 1년 매출에 맞먹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일본에서 출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일본식 교육 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한국도 교육 제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없는 한 영영 ‘가망 없는 나라’ 로 전락할지 모른다.

‘미국 경제의 르네상스는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 펼쳐진다’ 는 것이 오마에의 예측이다. 사실 오늘의 세계 경제는 미국 경제가 이끌고 있다. 반면 일본은 90년대 들어 거품이 빠지면서 침체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활로를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단일 통화 체제 실현을 눈앞에 둔 유럽연합(EU) 역시 전열을 가다듬느라 미국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제 호황론의 최면’에 빠진 미국

미국 경제가 너무 잘 나가다 보니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혹시 거품 경제가 아닌지 의심하는 경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나날이 치솟는 주가의 경우 최소한 20% 가량 과대 평가되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분위기는 경제 호황론의 최면에 빠져 그같은 분석에 코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 문제 칼럼니스트인 앨런 슬로안은 “미국은 기본적으로 금융 시장이 엉망인 일본과 다르다. 설령 미국 경제에서 거품이 걷힌다 해도 일본과 같은 충격파는 일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미국 국민은 80년대에 가혹한 구조 조정을 겪으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겪는 실업의 고통을 경험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진력하는 한편 독점금지법말고는 경기 활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철폐했다. 그뿐인가. 감세 정책을 펴서 기업의 의욕을 촉진하고, 오늘날 전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정보산업을 일찌감치 육성했다. “분명 미국식 자본주의에는 많은 결함이 있었지만 70~80년대에 구조 조정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모건 스탠리 일본지사장 로버트 펠드먼의 얘기이다. 그의 말은 오늘날 미국 경제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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