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신의주 합작 '압록강 프로젝트'
  • 이창주(코네티컷 대학 교수·국제정치) ()
  • 승인 200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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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철도 '물류 기지' 거듭나기…
신의주 경제특구가 발판 구실


사진설명 경제특구 후보 0순위 : 지난 1월20일 비공식 중국 방문을 마친 직후 신의주 화장품 공장을 찾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중국 소식통들은 신의주가 경제특구로 지정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 ⓒ연합뉴스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인 이창주 코네티컷 대학 교수가 지난 2월16∼17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 시를 방문했다. 이교수는 현지 고위 인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당시 북·중 양국 수뇌 사이에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개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이교수의 당시 취재기를 싣는다.

랴오닝성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변경 공업도시이자 군사 요새였던 안동이 일제의 침략으로 만주국에 편입된 것은 1931년.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 지역은 중국 공산당과 조선 독립운동 세력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그 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오늘의 단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는 단둥과 신의주는 바로 이런 역사성으로 인해 지난 50년간 북·중 혈맹 관계의 초석 노릇을 해왔다.

오늘날에도 단둥은 북한과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잇는 요충지이다. 단둥 시가 발간하는 <단둥 연감>을 훑어보면 단둥 시 대외 사무의 대부분이 바로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 정부 및 당 차원뿐 아니라 랴오닝성과 평안북도 차원, 단둥 시와 신의주시 단위에 이르기까지 지도급 인사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북·중 관계가 지난해부터 복원되면서 압록강을 사이에 둔 이 지역의 교류 왕래는 거의 일상적인 수준으로 확대 발전해 가는 추세이다.

현재 단둥과 신의주 간에는 버스가 두 차례씩 정기 운행하고, 압록강 철교 위에 승용차와 트럭 행렬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측 단둥세관 앞에는 밀가루와 생필품을 적재한 북한 트럭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는 국제 열차가 이곳을 기점으로 연결 운행되고 해상 화물의 접안과 하역 기지가 구축되어, 단둥과 신의주는 양국 간의 명실상부한 통로 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지역은 한국의 대북 교역 물자 통과 지역이 되었다.


경의선 개통되면 단둥에서 교통 '사통팔달'


사진설명 활기 띠는 국경지대 : 단둥에서 바라본 신의주, 새로운 물류·유통의 중심지로 주목되고 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어려운 고비마다 열차편으로 이 압록강 철교를 건너 중국을 방문하여 대중 외교를 성사시킨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지난해에 이어 지난 1월의 역사적 중국 방문 길에 어김없이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철길을 이용했다. 북한의 남양주와 중국의 도문을 잇는 두만강 다리가 양국 주민의 편의를 위한 내왕길이라면,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철교는 지난 50년의 양국 관계를 지켜오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경교(政經橋)이다.

단둥 중심가에는 북한풍 한글 간판이 즐비하다. 북한이 운영하는 최고급 음식점인 청류관과, 이곳에 파견된 아름다운 여성들이 한족(漢族)과 한국인에게 선사하는 맛과 친절은 이 땅에서 북한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현재 단둥에는 북한 국가 일꾼 2백여명이 상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수치는 베이징의 그것을 훨씬 앞지른다. 이런 점에서도 단둥과 신의주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본격화한 경의선과 경원선 연결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두 노선 중 중국은 경의선을 선호한다. 서울을 떠나 신의주에 도착한 한반도 국제 열차가 국경 도시 단둥을 기점으로 중국횡단철도(TCR)와 몽골횡단철도(TMGR)로 연결되고 여기서 다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이어진다.

경의선 복원 공사가 시작되자 단둥 지역은 한국 못지 않게 이를 반가워하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단둥 시 인민정부는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의선 개통에 대비한 환적시설 건설을 계획하고 있고, 한반도 종단-중국 횡단-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물류 유통 종합기지 역할을 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신의주 경제특구 문제가 지난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난 이후 아연 활기를 더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단둥-신의주 간에는 북·중 교역의 80%에 이르는 연간 2억 달러 이상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단둥이 북한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임가공 및 교역 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단둥과 한국 사이의 무역 거래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부산과 인천을 오가는 정기 컨테이너선이 주 1∼2회 운항되고 있고, 수출입 규모가 4천5백만 달러, 투자가 7천만 달러에 이르러, 1백14개 진출 업체의 매출 규모가 3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경의선이 개통되면 철도·도로·항구·공항 등 교통이 단둥에서 사통팔달된다. 그리고 신의주가 경제특구로 확정되면 중국의 대규모 지원이 몰리게 되는 단둥이 한반도의 인적·물적·정보 교류의 중심 센터가 된다는 것이 단둥 시 인민위원장의 주장이다. 또한 단둥 시측은 단둥에 투자하는 생산업체들에게는 부가세·소득세·수입관세·토지·건물·임금 등에서 특혜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랴오닝성 외사판공실 고위급 인사는 북한이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라면서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중국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도 이미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상하이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신의주가 단둥과 연계하여 북한을 개벽시키는 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김정일·장쩌민, 신의주-압록강-단둥 협력 논의


김일성 주석은 그의 저작집 7권에서 앞으로 경의선과 경원선이 개통되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국가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경의선 복원에 전격 합의하고 신의주 경제특구 개설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 역시 바로 이런 배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공산당 정치협상회의의 한 간부는 지난 1월 김정일 위원장과 장쩌민 주석 간의 정상회담에서 신의주-압록강-단둥 경제개발 협력 프로그램이 깊이 논의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상하이 방문 직후 신의주를 방문해 화장품 공장 등 경공업 분야를 현지 지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의주를 그가 주창한 신사고의 실험 무대로 만들기 위한 현지 시찰이었다는 것이 단둥에서 만난 북한 인사의 설명이다. 외자 유치에 실패해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성공시키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북한 처지에서는 중국의 확실한 지원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측이 제시한 화교 자본 유치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신의주 경제특구를 중국의 변경 국경 도시 단둥과 연계함으로써 화교 자본의 투자 진출을 쉽게 한다는 것이다. 단둥 시 당국이 앞으로 압록강변이 개벽의 땅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신의주는 북한에서도 풍부한 전력을 바탕으로 펄프·화장품·방직 공업이 발달하고, 압록강 유역 수운 교통의 요지이며, 평의선(평양-신의주)의 종점이자 중국과 연결하는 국제 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신의주항 근처에 있는 용암포항도 연해 및 내륙 수운이 발달했다.

과거에 비해 최근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인구 2백40만의 단둥 지구는 이제 압록강 시대 개막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인구 80만인 단둥 시는 한반도에 자신들의 명운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단둥 시에는 조선족 3만명, 한국인 5백여명, 북한인 2백여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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