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가 반가운 냉전의 자식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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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사복합체' 구성·로비·전략 해부


미국 서부의 관문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 이 공항 바로 옆에는 일반인에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로스앤젤레스 공군기지가 있다. 이곳은 미국 3대 군수기업인 록히드 마틴·보잉·레이시온을 비롯해 수십여 중소 군수업체가 입주한 일종의 방위산업 기지이다. 여기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군요원 1천 5백명과 민간 기술자를 포함해 5천명이 넘는다. 이들의 핵심 임무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개발하는 일이다. 이 기지 부근에는 기술자 약 3천명이 요격 미사일 체제를 연구하는 에어로스페이스 사가 있다.


록히드 마틴·보잉·레이시온·TRW '돈벼락'




요즘 이 군수업체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돈벼락'을 맞을 꿈에 부풀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마침내 지난 5월1일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군수업체 처지에서, 매년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 사업은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추산한 미사일 방어망 소요액은 6백억 달러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망의 사업 범위를 지상 요격뿐 아니라 공중 및 해상 요격으로 넓혔기 때문에 소요 예산은 8백억 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부시 행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국방 예산은 무려 3천1백억 달러. 이 액수는 냉전 시절 미국 국방비 평균액인 2천7백억 달러를 훨씬 웃돈다. 올해 국방 예산 가운데 미사일 관련 예산은 45억 달러지만, 국방부는 증액을 고려하고 있다. 1983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우주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이른바 '스타워스' 계획을 강행했다가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무려 5백50억 달러를 날렸다. 이번 미사일 방어망 사업에는 스타워스보다 훨씬 더 정교한 기술과,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천문학적인 예산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기술적 난관이 엄존하는데도 부시 행정부가 이 사업을 강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결국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당 군수업체만 살찌우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사일 방어망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무기업계의 '빅 스리'인 록히드 마틴·보잉·레이시온이다. 그밖에 유수의 군수업체인 TRW 사도 떼돈을 벌게 생겼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우선 록히드 마틴. F16 전투기·아파치 헬기와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생산하며 45개 주 4백47개 도시에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다. 종업원은 13만명에 이른다. 이 회사의 1999년 매출액은 2백50억 달러였다. 특히 이 회사는 국방부가 10억 달러에 발주한 전역고도방위체제(THAAD) 계약을 따내 업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상업용 점보 제트기 분야를 포함해 4개 사업군을 보유한 보잉 사의 경우 지금까지 전투기 13만대와 미사일 8천7백기를 미군에 공급했다. 보잉은 군수 부문에 5만명 가까운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은 5백13억 달러에 달했다.


레이시온 사는 토마호크 미사일과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 생산업체로 유명하다. 국내외에 종업원을 10만여 명 둔 레이시온 사는 특히 미사일 유도 체제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1999년 매출액은 1백45억 달러이다. TRW 사는 각종 무기의 전자 시스템 개발 업체인데 국내외 공장에서 6만4천여 종업원이 일한다.


이들 업체 가운데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망의 주 계약자는 보잉 사이다. 나머지 3개 군수업체는 보조 계약자로 참여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망의 전반적인 운용 시스템을 책임진 보잉은 이미 지난해 국방부로부터 앞으로 6년간 60억 달러 계약을 따냈다. 관련 연구 사업에 무려 1천3백명을 투입한 보잉은 레이시온 사와 손잡고 해군이 추진하는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 사는 저지구 궤도에 인공 위성을 배치해 적의 미사일을 격추하는 우주적외선체제(SBIRS) 개발을 맡고 있다. 레이시온 사는 대기권에 진입한 적의 미사일을 추적해 파괴하는 요격 운반체(EKV) 개발을 맡고 있다. TRW 사는 미사일 방어망의 지상 기지 운용에 필요한 통제와 통신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부터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미사일 방어망 사업은 미국 군수업계를 대표한 이들 4개 사가 독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들 업체는 1998년과 1999년에도 국방부가 책정한 미사일 연구 용역비의 60%에 해당하는 22억 달러를 챙겼을 만큼 이 분야를 독식해 왔다. 이처럼 엄청난 계약을 따내고도 막상 이들이 내놓은 요격 미사일 개발 성과는 1997년 3월부터 지난해 봄까지 세 차례 실험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특히 지난해 봄 국방부가 실시한 제3차 실험 때는 적의 미사일 탄두를 추적해 파괴해야 할 요격 운반체가 목표물을 목전에 두고도 미사일 본체에서 분리조차 되지 않아 다시 한번 기술적 난관을 확인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해 3월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TRW 사는 자체 실시한 미사일 요격 실험 결과를 허위로 국방부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TRW 사는 실험 결과 적의 미사일 탄두를 식별하는 능력이 5∼ 15% 정도로 저조했는데도 이를 95%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보수 우파, 'MD 구축' 지원 사격




이처럼 기술적 장애 앞에 속수무책인데도 해당 군수업체들이 연방 정부나 의회로부터 된서리를 맞은 적은 없다. 오히려 미사일 방어망 사업을 확장하면서 승승장구할 태세다. 왜 그럴까. 워싱턴에 소재한 세계정책연구소(WPI) 윌리엄 허텅 선임연구원은 그 비결을 군수업계와 정치권과의 끈끈한 연계, 나아가 보수 우파 연구소의 '지원 사격'에서 찾는다. 그는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연설을 통해 군산복합체가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기세는 여전하다"라고 꼬집었다. 아이젠하워가 지적한 군산복합체란 국방부·군수업체·민간 연구소의 끈끈한 결탁을 말하는데,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군수산업을 일컫는다. 국방 문제 두뇌 집단인 국방정보연구소(CDI) 자료에 따르면, 미국 군수산업은 전 노동 인구의 2%인 2백20만 명을 거느릴 정도로 방대하다. 냉전 시절에는 이보다 10배나 많은 20%를 차지한 적도 있다. 1999 회계 연도에 국방부가 이들 군수업체에 제공한 금액은 무려 1천1백80억 달러에 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방부 계약을 가장 많이 따낸 기업이 록히드 마틴·보잉·레이시온 사라는 점이다.


이들 3대 업체가 해마다 국방부 수주액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 업체는 굴지의 무기 생산 기술을 보유한 동시에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로비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업체는 1994년 이후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것을 계기로 더욱 로비에 열을 올렸으며 정치 자금도 민주당 의원보다 공화당 의원에게 2배나 많이 기부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들 3대 업체와 TRW 사는 미사일 방어망을 열렬히 지지하는 상원의원 25명에게 2백만 달러 이상을 정치 자금으로 제공했다.


로비 받은 의원들, 국방비 편법 증액




이들 업체는 미사일 방어망 논쟁이 한창이던 1997년과 1998년에 로비 회사들에 3천4백만 달러를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1997년 이후 지난해까지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해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에게 3백70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양당 선거본부에도 2백10만 달러를 헌금했다. 이처럼 로비에 총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자명하다. 미사일 사업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황금 거위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로비의 결정체가 1999년 봄 압도적으로 의회를 통과한 국가 미사일 구축 법안이다.


사실 의원들의 처지에서 군수업체의 로비는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우선 이들이 내놓는 정치 헌금은 한푼이 아쉬운 선거 때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자기 지역구에 거대 군수업체의 공장이 들어서면 지역구민들에게 항구적인 취업을 보장할 수 있다.


이들 업체가 로비 대상으로 삼은 인사 대부분이 공화·민주 양당의 실세 의원들인 것도 특기할 만하다. 책임정치센터(CFR)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상원의 경우 존 워너 군사위원장과 테드 스티븐스 국방위 세출위원장을 포함해 양당에서 15명이 1995년부터 4년간 이들 업체로부터 약 2백70만 달러를 받았다. 또 하원의 경우 똑같은 기간에 공화당 플로이드 스펜서 군사위원장과 덩컨 헌터 군사위원회 무기획득분과 소위원장을 포함해 양당 의원 15명이 약 3백36만 달러를 받았다.


특히 일부 의원은 자기 지역구에 있는 군수업체들의 무기 구매를 위해 이른바 '추가 소요 사항'(add-ons)이라는 편법을 써서 소요 예산을 국방비에 끼워넣어 왔다. 전략예산평가센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99 회계 연도의 경우 공화당 소속 트렌트 로트 상원 원내총무는 자신의 지역구인 미시시피 주에 있는 리튼 산업 사가 생산하는 해병대용 헬기와 우주기지용 레이저 무기를 구입하도록 총 16억 달러를 국방부 예산에 책정했다. 또 하와이가 지역구인 민주당 대니얼 이노구에 상원의원은 각종 무기 구매사업 명목으로 2억6천여만 달러를 국방부 예산에 끼워넣었다.


지난해 9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은 지난해 초 방산업체인 시코르스키 사가 제작한 블랙호크 헬기를 구매하도록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리버먼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코네티컷 주에 위치해 있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도 무리한 무기 구매 압력을 행사해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자신의 지역구인 조지아 주에 굴지의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의 생산공장이 있는데, 깅그리치는 이 회사가 생산하는 C130 수송기를 과다하게 구매하도록 국방부에 압력을 넣었다.


1978년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공군이 요청한 C130 수송기는 고작 5대. 그러나 공군은 깅그리치가 하원의장으로 있던 1998년까지 무려 2백56대나 구입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C130 수송기를 어찌나 많이 구입했던지 이 비행기에 집 없는 사람들이 입주해야 할 판이다"라고 조롱했다. 1998년의 경우 이런 식으로 책정된 예산이 무려 25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MD' 홍보단체에 공화당 의원 다수 포진


미사일 방어망 사업과 관련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있다. 바로 군수업체와 연계된 보수 우익 단체들의 강력한 '지원 사격'이다. 1994년 공화당에 의해 처음 미사일 방어망 구상이 나온 뒤부터 보수 단체들은 미사일 방어망의 필요성에 관해 대대적으로 여론 환기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국방부 관리를 지낸 프랭크 개프니가 이끄는 안보정책센터(CSP)는 해마다 무려 2백 건의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미사일 방어망 사업의 필요성을 홍보해온 핵심 우익 단체다. 이 단체의 주요 수입은 군수업체로부터 나오는데, 1988년 설립 이후 보잉·록히드 마틴·레이시온·TRW가 이 단체에 제공한 기부액은 2백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랄 만한 사실은, 이 기관이 자랑하는 자문위원 100명 가운데 핵심 공화당 현역 의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공화당 중진인 크리스토퍼 콕스·커트 웰던·케이 베일리·제임스 인호페·존 카일 의원이 모두 열렬한 미사일 방어망 지지파이다. 1998년 '럼스펠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윌리엄 그레이엄과 윌리엄 슈나이더도 안보정책센터 자문위원이었다.


아무튼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계기로 미국민들은 냉전 종식 이후 모처럼 국방부·군수업체·정치권·보수 단체가 결탁한 거대한 군산복합체가 탄생하는 것을 또다시 목격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록히드 마틴·보잉 같은 거대 군수업체가 주축이 된 군산복합체는 다시 한번 황금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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