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세마리 토끼 노린다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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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연구소 보고서 통해 본 미국의 전략/
신무기 개발·무기 판매 기회 등으로 활용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제기한 지난 5월14일자 랜드 연구소 보고서는 지난해 하반기 이래 미국 군사전략가들의 주장을 집대성한 것이다(〈시사저널〉 제594호 커버 스토리 '부시 행정부 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 참조).


당시 이같은 주장을 촉발한 인물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아태담당 국방차관보를 지낸 커트 캠벨이다. 그는 〈워싱턴 쿼털리〉 2000년 10월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아태지역 미군의 작전 거점과 훈련 장소를 한국과 일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호주 등 아시아 전체로 분산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론자의 원조 격인 그의 주장은 지난해 10월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파 전문가 그룹이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번 랜드 연구소 보고서 역시 그가 감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번 보고서는 일개 민간 연구소의 보고서 차원을 넘어 미국 군사전략가들의 합의를 담고 있는 것으로서 곧 발표될 부시 대통령의 신국방정책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제시한 주한미군 철수안이 앞으로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에서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 발표 시점을 전후해 살펴보면 미국의 대북 협상 전략을 추론할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즉 보고서가 발표되기 며칠 전인 지난 5월9∼10일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미국의 신국방정책 4원칙과 4개의 전략적 틀을 통보하고 돌아갔다. 이 중 눈여겨 볼 것이 바로 4항목의 전략적 틀 중 반확산이라는 개념이다. 반확산은 북한 등 이른바 '불량 국가'의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비확산단계)이 실패한 이후 등장하는 군사적 응징 전략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년부터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의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반확산 방위 구상(DCI)'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량 국가의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해 선제 핵공격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반확산방위구상은 그 자체로서 대단히 위험한 전략일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과학 기술자와 군수산업의 이해 관계를 충족하기 위해 고안된 전략이라는 이중 성격을 가지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해온 이 구상을 아미티지 부장관이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것은 부시 정부가 이 구상을 실천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5월1일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미사일 방어(MD) 강행 선언이랄지, 지난 4월15일자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저위력 핵무기 개발 관련 보도는 이제 이 구상이 정교한 틀을 갖추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상이 앞으로 있을 부시 정부의 대북 협상 전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내부나 유럽 등 동맹국의 비협조 내지는 반발을 살 것이 분명한 이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명분이 필요하다. 바로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미사일 문제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 구상을 완벽하게 구체화할 때까지는 북한의 핵·미사일·생화학 무기 문제 등이 계속 골칫거리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날인 지난 3월7일 있었던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 파문 역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월 장관은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남겨 놓은 미사일 문제에서부터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발언했는데 정부 내의 커다란 반발에 부딪혔다.

 


주한미군 문제, 북·미 협상 최대 의제 될 듯

 




지난 3월13일자 〈뉴욕 타임스〉는 파월 장관이 군사 기술을 이용해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관리들 때문에 벽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는데, 바로 이들이야말로 반확산방위구상을 추진하는 주체라 할 수 있는 국방부의 탄도미사일방어국과 국무부 비확산국 관리들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확산방위구상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어온 이들에게는 그 명분을 송두리째 앗아갈지 모를 파월의 발언이 끔찍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동안 워싱턴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간헐적으로 흘러나온 발언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즉 미국이 미사일 문제보다는 북한의 과거 핵 규명 문제를 협상의 우선 순위로 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또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여태까지의 협상 수준으로는 안되고 이미 배치된 미사일 중 사정거리 3백km 이상 되는 미사일을 전량 폐기하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정보도 흘러 나왔다. 혹자는 이와 관련해 경수로 문제가 불거질 2003년까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계속 끌고 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때까지 미국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 반확산방위구상을 실전화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주력할 메뉴는 핵과 미사일 문제가 아니라 랜드 보고서가 제기한 대로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와 북한의 재래식 전력 감축 및 후방 이동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발상을 이렇게 전환함으로써 미국은 동시에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지상군 유지 비용을 줄여 반확산방위구상에 필요한 신무기 개발에 돌릴 수 있다. 그동안 해외 군사력을 병력 위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첨단 무기 위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오래 논쟁을 벌여왔다. 민주당이 병력 주둔을 선호한 반면 공화당은 병력을 줄이고 그 돈으로 신무기를 개발하자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는 공화당의 지론과도 일치한다.


두 번째는,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를 협상 카드로 해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북·중·러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항미 연대 분위기를 완화하는 유인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 즉 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후퇴와 삭감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상응하는 조처를 요구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 안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한국에 무기 구매 압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올해 초 국내 정보기관들은 올 상반기 부시 행정부가 한반도에서 최대 역점 사업으로 보잉 사의 F15 전투기를 비롯한 무기 판매를 추진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 보고를 낸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지난 3월8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홀대함으로써 스스로 이 사업에 차질을 초래했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통령을 홀대한 것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상반기 중에 개최하려 한 한국 정부의 구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불똥이 한국 국방부의 차세대 전투기(FX) 구매 사업에 튄 것이다. 즉 4월18일 한국 국방부는 7월로 예정했던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을 9월로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국측은 급기야 지난 4월26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명자의 상원 인준 청문회 자리를 빌려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이상의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히면서 부랴부랴 한국 정부에 일종의 화해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아미티지의 방한과 랜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앞으로 있을 북·미 대화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한 셈이다. 즉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와 북한의 재래식 병력 후방 배치 및 감축 문제를 '상호주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다루어 가겠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는 문제는 이에 대한 남북한 정부의 입장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문제는 미국이 담당하고, 재래식 전력은 남북한 군축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협상 전략이 주한미군과 북한 재래식 전력을 연계하는 쪽으로 바뀔 경우 한·미 간에 새로운 협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한 무기 구매 문제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이 북·미 관계와 남북 정상회담에 최대한 성의를 보일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군축 협상 의사 내비쳐

 




다음에는 북한의 반응이다. 참고로 1990년 봄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3단계 철군 방안을 발표했을 때 북한이 보인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 3월5일 북한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철군에 대해 실질적인 조처를 취할 경우 북한 역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신뢰 조성과 군축을 위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5월31일 북한측은 '평화를 위한 군축 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 구축 △남북한 군사력 감축 △비무장 이후의 평화 보장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탈냉전의 흥분에 들떴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지난 4월16일의 북한 외교부 성명 이후 북한측은 주한미군 감축과 남북한 군축을 연계해 협상할 의사가 있음을 간접으로 비쳐 왔다. 따라서 대북 정책 재검토에 대한 미국측의 발표가 공식으로 이루어지고 남북한과 미국 3국 간의 다양한 실무 접촉, 그리고 10월에 있을 부시 대통령의 한국 방문 등을 거치고 나면 연말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제주도 정도에서 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김위원장이 들고 올 보따리 안에는 남북한과 미국의 3각 군축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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