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무적 '무인 전투기' 발진
  • 문정우 기자 (mjw21@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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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하 5로 무장한 기종 개발 박차…
무인 정찰기, 실전에서 위력


영화 〈스타워스〉에는 첨단 컴퓨터 감시 시스템과 레이저 포가 장착된 미래형 전투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전투기끼리의 공중전에서 생사를 가르는 것은 역시 조종사의 포스(정신력 혹은 기)이다. 과연 이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미래의 공중전에서도 기술력보다는 인간의 능력이 승패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인가.




지난 4월30일 미국 보잉 사의 필 콘딧 회장은 보잉이 주최한 국제 미디어투어에 참석한 전세계 기자 80여 명과 가진 화상 기자회견에서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 "미래의 항공기 전투는 어떤 양상으로 변모할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21세기 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무인기 활용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잉 사가 최근 유인기와 합동으로 적의 방공망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21세기 전반기에 하늘을 누빌 유인 군용기를 개발하고 수주하는 일은 거의 일단락된 상태이다. 따라서 항공업계가 현재 무인기 쪽으로 각국의 관심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필 콘딧 회장의 답변에는 다분히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컴퓨터와 통신 기술 발달, 생명 중시 의식 고양, 냉전 종식에 따른 군 예산 삭감 따위 영향으로 무인기 연구와 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인기 기술은 인간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 꾸준히 발달해 왔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기대에 들떠 쓰라린 좌절을 맛보기도 했으나 항공업계는 무인기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가능성의 영역을 넓혀 왔다. 따라서 현재 무인기는 정찰·감시·수색 등 비전투 분야에서는 이미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으며, 지상 목표물 공격이나 공중전과 같은 전투 분야에까지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무인기 기술 이스라엘에서 수입


무인기는 크게 정찰·감시·수색에 쓰이는 UAV(Unmanned Air Vehicle)와 전투에 직접 투입되는 UCAV(Unmanned Combat Air Vehicle)로 나뉜다(기사에서는 편의상 무인기와 무인 전투기로 구분한다).


무인기나 무인 전투기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때까지로 거슬러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연구에 불을 당긴 것은 2차 세계대전 말 독일이 영국으로 날려보낸 V1 무인 비행탄이었다. V1의 위력에 놀란 미국과 영국은 자동 제어장치를 단 무인기와 무인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무인기가 전투에 얼마나 유용한지 전세계에 확인시킨 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 미국이나 영국이 대형 무인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이스라엘항공사(IAI)는 2행정 엔진을 단 프로펠러 추진 소형 무인기를 개발했다.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무인기는 1983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눈부시게 활약했다. 텔레비전 카메라를 장착하고 레이더망을 농락하며 아랍 진영으로 날아간 이 비행기는 아랍군 기지에 대한 정보 영상을 이스라엘군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아랍군이 막대한 타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뒤 이스라엘항공사는 무인항공업계의 리더가 되어 개량한 무인기를 여러 기종 수출했다.


자존심 강한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항공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했다. 걸프전 때 미군이 투입한 무인기 파이오니어가 바로 이스라엘 항공사와 기술을 합작해 만든 것이다. 미국 육군과 해병대의 공격 선봉에 선 파이오니어에 이라크의 보병부대가 백기를 흔들며 항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현재 무인기는 두 갈래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한 갈래는 스텔스화·대형화해서 레이더에 안 걸리고 고공에 장시간 체류하며 적진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쪽으로 기종을 개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텔레다인 라이언 사가 개발하고 있는 글로벌 호크이다. 날개 너비 34.5m, 길이 13.53m인 이 비행기는 스텔스형으로서 고도 2만m에서 36시간 체공할 수 있다. 현재 한창 실전 테스트 중인데 2003년에 배치될 예정이다.


무인기 개발의 또 한 갈래는 끊임없이 소형화해 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새 크기, 심지어는 나비 따위 곤충 크기의 무인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무인기를 곤충 크기로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종이처럼 얇은 칩을 장착하고 태양 전지로 가동하면 꽤 오랫동안 귀신도 모르게 적진에 침투해 낱낱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렌즈의 크기가 작아 해상도가 떨어지고 주위의 전파나 잡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기술적으로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고속 비행·벌떼 공격으로 공중 제압 노려




그런데 초소형 무인기에 가장 위협적인 적은 뜻밖에도 기상이다. 소형 무인기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힘을 쓰지 못한다. 걸프전 때 투입된 송아지 만한 무인기도 사막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따라서 소형 무인기 연구자들은 수만년 동안 비와 바람을 이기고 비행하기 위해 자기 체중과 체형에 맞는 비행 방법을 개발하며 진화해온 작은 새·나비·벌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초소형 무인기를 운용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항공 선진국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무인기 기술을 도입해야만 하는 수모를 당했던 것은 대형 무인 전투기(UCAV) 개발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의 항공 기술자들은 '이제 인간이 항공기를 조종하던 시대는 갔다'고 기염을 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생각이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입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항공기 연구자들은 유인기에 못지 않은 전투력을 가진 무인 전투기를 개발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버추얼 리얼리티 기술을 도입해 지상 오퍼레이터의 고글에 실시간으로 무인기 밖의 상황이 비치도록 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유인기의 조종사와 공중전을 벌일 만하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 사람의 눈과 텔레비전 카메라의 정밀성은 천양지차로, 평범한 유인기의 조종사조차 지상에서 통제하는 톱건을 물리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컴퓨터 인공지능 기술에 착안해 무인 전투기가 스스로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려고 연구 방향을 전환했지만 이 또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무인 전투기에 도저히 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슈퍼 컴퓨터를 장착한다 해도 무인 전투기가 공중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영화 〈스타워스〉가 예상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던 무인 전투기 연구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이 발상의 대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최근에 개발된 최첨단 유인 전투기도 평상시에는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할 수밖에 없다. 장시간 초음속 비행을 하면 조종사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인기 연구자들은 아예 마하 4나 마하 5 이상으로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무인 전투기를 개발해 유인기와 맞서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속도의 우위로 인간의 감각을 눌러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마하 4나 마하 5 이상으로 날면서 어떻게 유인기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초음속으로 날면서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한다면 유인기는 무인 전투기에게 백기를 들 수도 있다.


벌이나 개미의 움직임에 착안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벌이나 개미의 개체 자체는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무력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이 협동해 이루는 결과는 괄목할 만하다. 정교하게 집을 짓고, 먹이를 나르고 새끼를 기른다. 이를 집단 지능이라고 하는데, 이 집단 지능을 무인 전투기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단순한 센서와 무기를 장착한 값싼 무인 전투기를 수백 기 띄워 협동 작전으로 집요하게 유인기를 공격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베테랑 조종사라도 한꺼번에 무인 전투기 10∼20기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한 가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달려드는 무인 전투기에 둘러싸인다면 유인기 조종사는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일 것이다. 이 무인기 개발의 성패는 어떻게 하면 적의 방해 전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수많은 전투기끼리 통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최근 미국 국방부와 보잉 사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무인 전투기와 유인기의 결합이다. X45A라고 명명된 무인 전투기 여러 대를 유인기가 지휘하며 지상에 공격을 가한다는 구상이다. X45A는 F16과 거의 같은 크기인데 어떻게 유인기와 효과적으로 송수신하면서 지상 목표를 공격할 수 있을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현재 무인 전투기 개발은 영화 〈스타워스〉의 예측이 무색할 만큼 눈부신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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