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 세대는 역사 왜곡 '신인류'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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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등 한·일 '3중 충돌', 과거와 달리 장기화할 듯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한 히도쓰바시 대학 나카무라 마사노리 교수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회귀 현상', 즉 국수주의·내셔널리즘이 번갈아 대두하는 현상은 30년 간격으로 반복되어 왔다. 요즘의 일본 회귀 현상은 그 네 번째 물결이다. 예컨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문명 개화와 계몽운동의 반동으로 그 첫 번째 회귀 현상을 경험했으며, 다이쇼 말기와 쇼와 초기에 초국가주의적인 코스모폴리탄 운동과 민주화 풍조에 대한 반동으로 제2 회귀 현상이 일어났다.


30년 주기로 반복되는 네 번째 회귀 현상?




일본이 패전한 후에는 인터내셔널리즘과 아메리카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일본 문화 재평가론·대동아전쟁 긍정론과 같은 제3 회귀 현상이 일어났으며, 1980년대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해 1990년대에 일거에 표면화한 것이 지금의 제4 회귀 현상이다.


이 제4 회귀 현상을 주도해 온 대표적 인물은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을 쓴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도 지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사모임)의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학 명예교수, 후지오카 노부가쓰 도쿄 대학 교수 등이다.


나카무라 교수는 제4 회귀 현상이 일본 전통 재평가, 일본 민족 우월론, 일본 국가 그 자체로의 복귀 요구 등이 특징이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의 내셔널리즘 주기로 보아 몇 년만 지나면 이런 현상도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그럴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이제는 더 이상 과거사를 거론하지 말고 21세기를 향해 양국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구축해 가자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한 직후, 기자는 신우익 단체인 일수회(一水會)의 한 간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 단체는 김영삼 정부 시절 독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자 주일 한국대사관에 집요하게 데모 공격을 퍼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기자가 한·일 공동선언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권이 바뀌면 한국이 언제 다시 과거사 문제를 들고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선언에 현혹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반한 운동을 그대로 계속해 갈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 한·일 공동선언에 맞추어 일본 대중 문화에 문호를 개방하고 일왕의 호칭을 '천황'으로 변경하면서 대일 우호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을 때, 일본의 우익은 종군 위안부 문제로 한국에 당한 수모를 앙갚음하기 위해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예컨대 우익단체 새역사모임이 태동했을 때 '제2 교과서 파동'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새롭게 등장한 종군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최초로 벌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요구가 먹혀들지 않자 1997년에 모임을 결성하고 자신들이 직접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들은 새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는 것보다 보급에 더 중점을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한국과 중국 정부의 수정 요구로 만신창이가 된 고교 역사 교과서 〈신편 일본사〉가 우여곡절 끝에 1986년에 출판되었지만, 보급에 실패해 학교 교육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반성해서이다.


때문에 1980년대의 교과서 파동과 지금의 교과서 파동은 질적·양적으로 크게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즉 1980년대의 교과서 파동이 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 정부의 수정 요구를 거의 받아들이고 학교 보급에 실패함으로써 일과성으로 그쳤다면, 이번 교과서 파동은 재수정과 교과서 보급을 둘러싸고 마찰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역사모임측은 후소샤판 역사 교과서 보급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미우라 슈몬 전 문화청 장관을 회장으로 하여 '교과서 개선 연락 협의회'를 설치하고 각지에서 판매 촉진 심포지엄을 펼쳐 왔다. 또 최근에는 자민당·민주당·자유당 의원 40여 명이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각 지방 교육위원회에 후소샤판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 전국 각지 교육위원회에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70%가 국내외 단체로부터 특정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난 7월10일 발표했다. 그러나 그런 설문 조사를 한 이 의원모임이야말로 각 지방 교육위원회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새역사모임 "10% 점유 못하면 4년 후 대공세"




현재 약 5백개 채택 지구에서 내년에 사용할 각종 교과서 채택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7월 말께 그 결과가 밝혀질 예정인데, 새역사모임측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 시장의 10%를 점유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과서 회사 관계자들은, 올해 새로 등장한 후소샤판 역사 교과서가 기존 시장의 벽을 뚫고 일거에 10%를 점유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새역사모임측도 교과서 시장의 생리를 모를 리 없다.


새역사모임측은 이번에 10%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4년 후 다시 이 벽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중학 교과서는 한번 채택하면 4년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2001년에 이어 2005년에 다시 채택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들은 그 때에도 대공세를 펼칠 계획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제2 교과서 파동은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다. 일본 회귀 현상도 나카무라 교수의 지적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현상이 아니다. 예컨대 제4 일본 회귀 현상에 불을 당긴 장본인인 이시하라가 도쿄도 지사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는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을 펴낸 후,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에 실패하자 국회의원 직을 사퇴하고 한때 작가로 복귀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이 자민당 수구파의 반대로 실패할 경우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와 이시하라가 손을 잡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업 분쟁,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대두해 한·일 관계가 벼랑으로 밀리고 있는 것도 제4 일본 회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와 어업협정을 맺고 남 쿠릴 열도 수역에서의 꽁치잡이 어업권을 획득한 한국에 일본이 강경한 자세로 나오는 것은 자민당의 이른바 '외교족 의원'들과 '농수산족 의원'들 때문이다. 그 중심 인물은 일본의 북방 영토, 즉 쿠릴 열도를 끼고 있는 홋카이도 선거구 출신인 스즈키 무네오 의원과 나카가와 쇼이치 의원이다.


특히 나카가와 의원은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을 결성해 후소샤판 역사 교과서 출판을 부추겨 왔을 뿐 아니라, 최근에 결성된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 회장을 맡아 문제의 역사 교과서 보급에 총대를 메고 있는 인물이다.


'꽁치 시비' 건 의원이 역사 교과서 보급에도 앞장


그는 또 1998년 7월 오부치 내각의 농림수산상으로 입각한 직후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이러한 그가 한국 어선의 꽁치 조업에 시비를 걸고 있는 자민당 '농수산족 의원'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어업분쟁이 단순한 꽁치잡이 분쟁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한·일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시한 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총리는 8월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은 그 후에 가서나 생각해 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튀어나올 때마다 전문가들이 일본의 '전전 세대'가 사라지고 '전후 세대'가 등장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전후 세대 정치인의 첫 번째 타자나 다름없는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의 역대 총리들도 기피해 온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강행하겠다고 우기고 있는 역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전후 세대일수록 일본의 과거 역사를 정당화 또는 미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일본 회귀 현상이 일과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러한 분석에 따른 대일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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