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건국 행진' 시작하다
  • 멜버른·남상민 통신원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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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제헌의회 선거 치러…
호주와 자원개발 조약 맺어 창업 자금 '두둑'


1999년 말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 티모르의 미래를 결정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년 예정으로 유엔이 구성한 과도 정부 통치 기간을 반년 남짓 남긴 오는 8월 말이면 제헌 의회 선거가 열린다. 제헌 의회가 헌법을 마련하면 내년 초로 예정된 건국의 물살은 더욱 빨라지게 된다.


아직 정부가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동 티모르 과도 정부는 최근 옛 식민지 모국인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적 후원국인 호주에 상주 외교관을 보냈다. 또한 주민 74만 명의 주민 등록도 7월15일 제헌 의회 선거를 앞두고 무사히 끝냈다.


"공무원 할 사람이 없다"




16개 정당이 참여한 제헌 의회 선거는 기본적으로 정당에 대한 직접 지지도를 묻는 형태이다. 제헌 의원 전체 88명 중 13개 선거구에서 각 1명씩 13명을 선출하고, 나머지는 각 정당이 추천한 후보를 득표율에 따라 선출한다.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선거 연기론도 많았지만, 지난 7월 16개 정당이 함께 평화적 선거와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자는 내용을 담은 '국민 통합 협약'에 서명함으로써 불안감이 다소 줄어들었다. 이미 1999년 독립을 선택한 국민 투표 결과나 인도네시아의 정치 상황을 고려해 일부 친인도네시아 정당도 독립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등을 표방하고 있다.


이번 선거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년 대통령 선거이다. 독립 게릴라의 지도자이자, 독립 운동체 범연대 기구였던 '전국 동티모르인 저항위원회' 의장이었던 사나나 구스마오는 지난 4월 과도 정부 수반 자리를 사임하며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평범한 시민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천명했다. 대신 동 티모르 독립 운동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도 사실상 동 티모르의 외무장관 역할을 하고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라모스 호타를 추천했다. 하지만 라모스 호타 역시 사양하면서 사나나 구스마오가 출마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라모스 호타의 말처럼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 90% 이상의 지지를 받을 것이 확실한 사나나 구스마오가 불출마를 고집한다면 잠재 후보들 간의 경쟁으로 정치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과도 정부가 끝나기 전까지 효율적인 행정 체제 기반을 최대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과도 정부 공무원 9천여 명 중 10%는 외국에서 지원한 인력인데, 이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하는 과정에서 행정 체계가 무너져 외국 지원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문제는 내년 초 유엔의 과도 정부 체제가 끝나면 철수할 이 인력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이다. 물론 인력의 일부분이 자문관으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건국으로 향하는 동 티모르에 난제는 많지만 최근 가장 중요한 경제적 고민을 덜게 되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게 되었다. 지난 7월 초, 호주와 7만5천㎢에 달하는 양국 공동 수역 자원개발 협력에 관한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동 티모르 정부가 안정적인 재정원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조약으로 동 티모르 정부가 얻을 원유 및 천연 가스 채굴권 수익은 2004년부터 앞으로 20년간 35억 달러가 될 전망이다. 국가 규모를 고려할 때 이 채굴권 수입의 중요성은 막대하다.


공동 수역 채굴권의 잠재적 수익과 아울러 동 티모르 수역 안에 매장된 천연 자원은 인도네시아가 25년 간 동 티모르를 점령하고 억압한 요인이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1989년 이 수역에서 천연 자원을 공동 개발할 티모르 해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동 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귀속됨을 호주가 공식화해 준 거의 유일한 국제 조약이었고, 호주를 주요 근거지로 하고 있는 동 티모르 독립운동의 정치적 토대를 크게 약화시킨 행위였다. 그래서 당시 동 티모르의 독립 게릴라 지도자였던 사나나 구스마오는 호주 보브 호크 총리에게 '완전한 배신'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긴 호주




이런 역사 때문에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동 티모르가 독립할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되어 가자 티모르 해역의 천연 자원에 관한 호주의 권리 문제는 중요한 정치 현안이 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동 티모르에 대한 지배 권리를 인정받는 대가로 호주에 채굴권 수익 균등 분배와 같은 유리한 조건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동 티모르의 독립이 이루어지면 조약의 주체는 바뀌더라도 '투자자의 신뢰 지속과 국가 이해 차원에서' 내용이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호주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시작된 협상에서는 기존 수익 분배 규모가 크게 조정되어 채굴권 수익의 90%를 동 티모르가 갖기로 합의했다. 유례 없이 특정 국가를 대신해 유엔이 동 티모르측 당사자로 참여한 이번 협상의 결과 동 티모르 정부는 연간 1억5천만 달러가 넘는 안정적 재정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 협상 결과에 대해 호주의 여야 모두 동 티모르에 크게 양보한 잘한 결정이라고 자찬하지만, 유엔측 협상 당사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호주의 채굴권 수익은 적지만 원유 및 천연 가스 개발 사업을 주도할 호주의 기업들이 얻을 수익은 막대하다. 아울러 어차피 동 티모르의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할 호주 정부로서는 채굴권 수익을 양보해 동 티모르에 대한 개발 원조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즉 호주는 조약을 통해 그 지역을 공유 수역으로 확정함으로써 영유권 분쟁 소지를 없애고, 다른 형태로 수익을 창출하게 되었으면서도 양보했다는 정치적 명분까지 얻게 되었다.


이렇게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는 데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가 운영에 전문성이 없는 동 티모르가 재정 지출을 적절히 할 수 있을 것인가, 제3 세계의 다른 자원 부국처럼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고 사회 문제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특정한 재정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그 재정원이 고갈되거나 재정 흐름이 막히게 될 때 생길 문제를 동 티모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우려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경제적·인적 기반을 새로 형성해 가야 할 동 티모르에 이 돈이 생명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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