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재미 화가 문범강씨 귀국 개인전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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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제1회 광주 비엔날레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화가 2명이 초대되었다. 작품 2점을 낸 문범강씨(42·미국 조지타운 대학 미술과 교수)가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문씨는 얼마전 37점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 왔다. 2년 전 그는 회화 작가로는 ‘신인급’에 속했으나, 지금은 세계 4대 미술 잡지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히는 <아트 인 아메리카>에서 리뷰를 얻은 유명 작가가 되어 있다.

서울 샘터화랑에서 개인전(6월6~22일·02-514-5120)을 여는 문씨는 화가로서의 출발이 특이했다. 한국 미술계의 제도 교육이 싫다는 이유로 미대를 포기했고, 서강대 신방과를 졸업한 다음에는 미술을 포기할 수 없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그가 선택한 매체는 판화였다. 한국에서는 회화와 병행하는 장르쯤으로 여기는 판화 작업에 그는 꼬박 10년을 몰두했다. 여러 판화 공모전에서 스물세 번 입선하고, 84년 대학원 졸업 후부터 가졌던 개인전은 이번 한국 전시를 포함해 모두 열여덟 번에 이른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워싱턴 D.C.의 조지타운 대학 미술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줄곧 판화만 하다 보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주위에서는 잘한다고 칭찬했으나 나로서는 매체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10년 공부’를 포기하는 불안한 모험이었다. 그는 1주일에 한 번씩 낮에는 워싱턴에서 강의하고 밤에는 뉴욕에서 회화를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1년간 지속했다. 회화가 손에 익을 때까지 그가 ‘머리를 숙여’ 배우고 모색한 시간은 2년을 넘겼다.

지난 3월 뉴욕 소호의 스페이스 언타이들드 화랑에 이어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문씨는 그간 익히고 다져온 독특한 개념을 회화 위에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핵심을 이루는 형상은 ‘혀’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생명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혓바닥을 길게 빼물고 상대방을 쓰다듬고 있다. 그 분위기는 종교적인 경건함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는 혀를 한 생명체의 기운과 의식을 실어 나르는 통로로 본다. 생명체의 진화와 발전은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의식 간의 교류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붉고 길게 그려진 혀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최근작에서는 네모 상자 머리를 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상자 속에 갇힌 얼굴은 딱딱한 이미지, 곧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 더욱 더 절박하게 혀를 내민다. 외양은 그로테스크하고 한편으로는 에로틱한 분위기마저 풍기지만, 그 이면에서는 고정 의식을 깨려는 처절한 싸움과 다른 생명체에 다가가 절실하게 도움을 청하는 행위가 읽힌다. 문씨는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 체류하는 한 달 남짓에도 그는 임시 화실을 구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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