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율곡 사상은 ''현재진행형'' 철학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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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5명 ‘탈중세 지향한 개혁 정신’ 재조명, 책 출간
율곡 이이(1536~1584)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오늘날에 관한 문제 의식으로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이 내놓은 율곡 사상 연구에 의하면, 율곡은 시간과 역사의 풍화 작용을 너끈히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시대를 향한, 모든 시대의 문법으로 빛난다.

율곡에 대한 전면적 탐사에 들어간 학자들은 김형효 교수(정문연·철학) 이기동 교수(성균관대·유학) 한형조씨(정문연 객원연구원·철학) 배병삼씨(경희대 강사·한국정치사상사) 장성모 교수(춘천교대·교육학) 등으로, 각각 현상학 유학 윤리학 정치학 교육학의 렌즈를 들이댔다.

율곡 사유의 ‘초점 불일치’ 뿌리 밝혀

그 결과 율곡은 당위였다. 이 세기 말과 세기 초는 결국 율곡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학자의 연구 결과는 최근에 나온 <율곡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정문연)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모든 학문은 현재이다’라는 학문 현실주의의 한 모범이라는 데서 우선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국학의 처지에서 주체적으로 서양 학문을 끌어들인 시도 또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국학의 현대화, 학문의 한국화라는 한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연구팀의 구성도 눈길을 끈다. 다섯 학자는 차례로 50, 40, 30대들로 중진에서 소장까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학제간 연구는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전공과 전공, 세대와 세대 사이에 철옹성을 세워놓은 한국 학문 풍토에 견줄 때 이번 연구는 더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논문 문체’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효 교수와 한형조·배병삼 씨의 논문에서 두드러지는 바, 이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논문 쓰기를 향해 ‘문체 반정’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김형효 교수는 율곡의 사유에서 보이는 ‘초점 불일치’(이중성)를 현상학적 관점에서 톺아 간다. 김교수의 논문 <율곡적 사유의 이중성과 현상학적 비전>은 방계적 영역의 탐구라는 방법론을 동원해 그동안 연구에서는 제외돼 왔던 율곡의 삶과 고뇌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율곡의 공식 언어(`‘사랑방 언어’·중세)보다는, 편지글과 같은 비공식 언어(안방 언어)에서 율곡 사유의 `‘살’(肉·근대)을 찾아내 어루만진다.

논문에 의하면, 어머니를 여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에 입문했던 그는 1년 만에 유학으로 방향을 바꾼 뒤 관료 사회에 몸담았다. 궁핍한 가정의 가장, 재야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재조 관료, 퇴계 이기론 및 수양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던 정치적 시도 등을 끌어안고 당쟁의 와중을 통과해야 했던 율곡의 실존적 삶은 고독하고 불우했다.

율곡 사유의 대표적인 초점 불일치는 ‘도학적 왕도와 실학적 패도’이다. 김교수는 논문에서, 율곡이 유학과 도학이라는 중세기적 이념에 충실하면서도 탈중세를 지향한 개혁을 위해 ‘탐구의 학’으로 나아갔다고 밝혔다. 도학을 제동장치[理]로, 실학을 운동장치[氣]로 설정한 합리적이며 창조적인 사고 발상법이라고 김교수는 높이 평가했다.
이기동 교수는 <율곡사상의 윤리학적 해석>에서, 퇴계의 수양 철학과 정암 조광조의 실천 철학인 지치주의(至治主義)를 통합한 율곡은, 자기 학문의 목적을 도덕 실천의 주체를 확립하는 데 두었다고 보았다. 도덕 실천의 장이 일상이므로 율곡학을 윤리학으로 파악한 이교수는, 율곡이 철학·종교·윤리학을 하나의 차원으로 연결하려는 특징을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교수는, 율곡의 도덕 실천 운동이 충분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 근대 정신의 개인주의·물질주의·합리주의 등을 내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율곡학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씨앗’이라는 것이다. 인간성 회복, 환경 문제, 세계 평화를 희구하는 오늘의 현실을 치유하고 개선하는 데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율곡사상의 유학적 해석>에서 한형조씨는 율곡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따라 가면서 율곡이 이룬 대전환의 내면 풍경을 복원한다. 한씨에 따르면, 스물셋에 당시 쉰여덟이던 퇴계를 감동시킨 문장가였던 율곡은 문장(科擧)과 도학 사이에서 ‘과거는 자신을 파는 행위’라며 갈등했다. 율곡에게는 두 차례의 전환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죽음과 금강산에서의 하산이 그것이다. 한씨는 율곡이 ‘타협이나 도피 같은 불성실한 자기 방어 기제를 거부하고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 돌파하는 지적·도덕적 용기를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한씨는 율곡의 시와, 그동안 주목할 대상이 되지 못했던 율곡과 노승과의 일화를 정치하게 분석해, 율곡의 분열적 자아와 ‘유교와 불교의 만남이라는 동아시아 문명사에서의 거대한 합류의 한 실례’를 펼쳐 보인다.

“율곡의 정치 노선은 점진적 개혁주의”

이어 한씨는 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신유학의 세계관을 발견해 낸다. 즉 신유학은 세계를 생명의 위계에서 바라보며, 그 위계의 근거를 그들의 생명을 형성하고 있는 활성적 물질[氣]의 순도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하여, 신유학은 세계와 인간을 동일한 지평에서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데, 조선 유학사에서 이 관점을 가장 탁월하게 성취한 학자가 율곡이라는 것이다.

율곡사상을 정치학 관점에서 해석한 배병삼씨는 현실정치가로서의 율곡의 정치 노선을, 그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보편성은 특수성에 의해 제한 받는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 ‘점진적 이상주의’라고 결론짓는다. 배씨는, 성리학이 품고 있는 전근대 정치학과 개혁정치론, 그리고 국가와 정치에 관한 인식을 차례로 체계화하면서 퇴계와 율곡의 정치관의 차이를 명쾌하게 비교 분석한다. 퇴계가 칠정(七情)을 사단(四端) 안으로 끌어들여 종교로, 다시 말해 소극적 정치 노선으로 나아갔다면, 율곡은 칠정을 사단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인간을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의 존재로 규정한 뒤 정치의 점진적 개혁주의를 주창했다는 것이다.

물론 율곡은 실패했다. 배씨의 분석에 의하면, 율곡은 사림을 과대 평가했고, 그의 정치적 담론은 폐쇄적이었으며 또한 독단성·독점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곡의 이통기국론에서 기국, 즉 ‘지금·여기’에 주목한다. `‘작은 정부론’으로 압축되는 율곡의 경장(개혁)론 못지 않게 ‘군주가 스스로를 국가 그 자체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율곡의 군주 도구론은 4백년 전의 이상론만은 아닌 것이다.

또 율곡 철학은 교육 이론의 저수지이기도 하다. 장성모 교수는 <율곡사상의 교육학적 해석>에서 율곡의 사상사적 배경의 전모를 풀어헤친 다음, 율곡의 이(理)는 교육의 궁극과 실재를, 기(氣)는 교육의 출발점으로서의 사실 및 현상으로 보았다. 율곡은 ‘크게 마음의 내적 수양과, 삶 또는 마음의 움직임(사단칠정)이 따라야 할 객관적 이치를 탐구한 두 방향’에서 교육 방법을 설파했다고 장교수는 밝혔다. 결국 율곡은 무시간적 차원을 내세운 퇴계와는 달리 ‘시간적 계열로서의 교육 과정과 그 속에서 학습자 개인의 마음의 발달 과정, 그리고 학습자 개인의 주체적 역할을 상대적으로 부각했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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