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국내 최초로 백두산 4계 촬영한 안승일씨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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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뒤로 ‘민족의 성지’라 불리는 백두산은 이제 먼 거리에 있는 산이 아니다. 그러나 사진가 안승일씨(49)에게는, 백두산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산이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백두산은 여전히 ‘금단의 땅’이요 ‘반쪽 산’인 것이다.

천지를 반으로 갈라 놓은 조·중 국경선은 안씨의 눈에는 휴전선이나 다름없었다. 2749.2m의 천문봉 바로 아래에서 70여 일을 야영하면서도 그는 ‘우리의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다만 중국에서 우리 땅을 카메라로 보았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안씨는 최근에 펴낸 사진집 <백두산>을 ‘미완의 책’이라 부른다.

“백두·금강 사진 좀 찍게 해주오”

88년 일본인 사진가 구로다 히로지가 펴낸 사진집 <북녘의 산하>는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척에 두고도 수십여 년을 보지 못한 명산들, 그 가운데서도 백두와 금강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컬러로 담은 이 사진집은 안승일씨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산 사진가’로 불리는 그에게 일본인들이 찍은 사진들은 ‘나의 산을 빼앗겨 버린 듯한 좌절감’마저 안겨주었다.

그 좌절감은 90년대 들어 이와하시 같은 일본 사진가들이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백두산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할 때마다 점점 더 깊어졌다. ‘철 없는 내 나이 벌써 쉰 살. 이제야 백두산을 다녀왔습니다. 울면서 다녀왔습니다. 그 산은 조국에 대한 나의 원망을 연민의 정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안씨가 사진집 서문에서 밝힌 심정이다.

지난해 안씨는 모두 세 차례 백두산을 올랐다. 천지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6월부터 5m 두께로 얼음이 어는 9월 말까지 그는 필름을 6백통이나 사용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9월에는 백두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호텔이며 공안국 같은 곳의 기관원들이 모두 철수했지만, 안씨는 텐트 속에 홀로 남아 허리께까지 빠지는 눈을 뚫으며 셔터를 눌렀다.

사진집 <백두산>에 실려 있는 사진은 모두 70점. 안씨의 계획대로 백두산의 짧은 봄 여름 가을과, 기나긴 겨울이 실려 있다. 사진집에 나온 계절마다의 천지 모습은 빛깔을 달리하며 모두 잔잔하기만 하다. 평소 높은 파도로 출렁이는 천지에서 잔잔한 풍광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닷새고 열흘이고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봉우리들이 천지에 투명하게 비치는 날은 1년 중에도 손꼽힐 정도로 드물어 안씨는 숱하게 속을 태웠다.

얼음이 풀리는 봄과 붉은 꽃들이 만발한 여름, 물빛이 검푸르게 변하는 가을, 산이며 호수가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 안씨의 사진은 모두 백두산 정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어 버린 수림 속의 이끼·야생화·고사목 들은 그의 관심권 밖이었다. “바다처럼 파도치는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나의 혼을 빼앗아 나는 그 주위를 맴돌며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산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사진집 서문에서 북한의 김정일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다. ‘나, 평생 산 사진 찍어온 사람이오. 백두산 금강산 사진 필요하면 일본 사람 부르지 말고 내가 좀 찍게 해주시오. 사진은 재주나 기술로 되는 게 아닙니다. 혼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민족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내 조국의 산하를 왜 일인들에게 또 빼앗겨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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