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 '내면'에 대한 점묘/유홍준 교수〈화인열전〉
  •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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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등 화가 8인 평전에 그림 이론 소개 곁들어


유홍준 교수의 〈화인열전〉은 기존 미술사 책과 구별된다. 지금까지의 한국 미술사가 주로 편년적 양식사와 작품 중심의 기술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작품을 지어낸 작가를 먼저 주목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우리가 서양 미술사를 한국 미술사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는 고흐·고갱·세잔·피카소 같은 미술가들에 대하여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 미술사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하나같이 희미하게 떠올려질 뿐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그 분야 전문가들만의 관심거리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교수의 〈화인열전〉은 조선 시대 화가 여덟 명의 평전인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화가 여덟 사람이야말로 그 면면이 결코 서양의 어떤 미술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동시에 조선 시대 화론서인 〈청죽화사〉와 〈화주록〉, 〈서가록〉 등의 해제를 곁들여서 조선 시대 화론과 비평에 대한 안내서 구실도 함께 해내고 있다.


그는 여러 전적들과 관련 서적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한 사람의 화가가 독특한 자기만의 조형 세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살폈다. 인적 사항이나 가문은 물론 기질과 벗들, 취미와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화가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독특한 평전을 써낸 것이다.


유교수 저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독자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는 중에 어느덧 전문적 식견에 이르게 하는 점은 〈화인열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전문적이면서 결코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정사와 야사, 정설과 속설 등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유교 시대를 산 창작자들의 의식을 안팎으로 조명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유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의해 주로 전문 학자들만의 관심 영역에 머물러 있던 우리 문화 유산의 많은 부분을 대중에게 돌려준 바 있다.


난초 같은 삶과 예술의 향기 생생히 전해




사실 문화와 예술의 저변이 대중적으로 폭넓게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좁은 전문가 영역만의 연구나 저술은 힘을 얻기 어렵다. 문화나 예술에 대한 글은 전문적이면 전문적일수록 대중으로부터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데, 몸에 좋은 쓴 약에 당의를 입혀 복용하기 쉽도록 하듯 문화 유산이나 미술에 대한 유교수의 글들은 여러 사람에게 친숙하게 읽히면서도 전문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우리 선조 예술가들의 진솔한 삶과 예술 세계를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진정한 걸작이란 그것을 그린 이의 삶과 유리되어 나올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과 유리되어 제멋대로 갈지자를 걷는 오늘의 미술사 속에서 우리는 새삼 이 책을 통해 높고 맑고 그윽하고 치열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과 예술을 보게 된다. 서풍(西風)이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오늘 깊고 높은 계곡에 홀로 피어 향기를 날리는 난초 같은 조선 미술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쪼록 유교수의 〈화인열전〉이 사그라져 가는 우리 미술의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인의 정체성〉〈한국인의 주체성〉 등으로 인문학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소장 철학자 탁석산씨(45)가 이번에는 '시민 대학 논리학 강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평소 대학과 대학원에서 갈고 닦은 강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상에 횡행하고 있는 오류투성이 문장의 논리적 허점을 예리하게 후벼판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책세상)를 펴낸 것이다.




지은이 스스로가 '논리학 셈본'이라는 별칭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적어도 겉으로는 철저하게 일반인을 위한 논리학 개론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내용 구성도 '논증이란 무엇인가' '연역과 귀납' '좋은 논증이란 무엇인가' 등 논리학 개론서의 일반 양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은이는 복잡한 원리나 개념 설명 등 '군더더기'를 대폭 들어내고, 대신 알록달록하고 간결한 삽화로 채워 넣어 '읽을 부담'을 덜어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외양만큼 가볍지 않다. 겉모습에서 받은 인상을 잠깐 옆으로 치워 놓는 순간, 이 책은 사회 세태와 언론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로 둔갑한다.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고 지배적 담론을 생산해내고 있는 권위 있는 일간지의 사설과 칼럼이 그가 휘두르는 '오류론'의 칼날에 여지 없이 난도질당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이 책의 '백미'인 6장에서 일간지의 사설·칼럼 네 편을 '오류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채점을 시도했는데, 10점 만점인 이 시험에서 대상이 된 사설·칼럼 들은 모두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이유는 '충분한 근거를 대지 못하거나' '관련성 없는 얘기를 중언부언하거나' '반박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을 늘어놓는' 등 숱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각주' 역할을 대신해 빈번히 등장하는 '촌평'(촌평마다 슈퍼맨 복장을 한 지은이의 아이콘이 있다)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다. 지은이는 100자 남짓한 이 촌평들을 통해 과외 문제·교육 문제·인문학 위기·정치인 행태에 대해 자신의 폭넓은 관심사를 반영하는 '촌철 살인'의 경제성 높은 비평을 시도했다.


지은이의 결론은, 이 책에서 요령을 터득해 영화 〈취권〉에서 청룽의 권법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논쟁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처럼 '비서(秘書)'를 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논리적 사고력에 바탕을 둔 건전한 논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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