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디자인 페스티벌 휩쓴 '누드 패션'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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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으로 '타인에게 말 걸기'/
현대인 욕망 반영하는 투명 · 무채색 · 소형이 주류
제약회사에 다니는 김종헌씨(37·부산 거주)는 평소 '디자인은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며 산다. 그러나 그도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나름의 생각은 있는 듯했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눈에 잘 띄고 독특해,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톡톡 튀는 것이 좋은 디자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도된 상식이라고 말한다. 조현신 교수(국민대 시각디자인대학원)는 산업화 이후 디자인이 자본의 첨병 구실을 하면서 그렇게 오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상품을 더 많이 더 비싸게 팔기 위해 껍데기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뿐이지, 그것이 좋은 디자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 지난 10월7∼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굿 디자인 페스티벌'은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전시장에는 늘 사람 가까이에 있는 제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텔레비전·휴대폰·컴퓨터·자동차·주방용품·가구 같은 일상용품들이 삶을 좀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꾸며주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눈에 띄는 제품은 누드(투명) 냉장고와 로켓을 닮은 노란색 보일러였다. 두 제품 모두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 있었다. 외모가 수려해 거실이나 방 한쪽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음식을 보관하고 물을 데우는 일도 하면서 집안 분위기까지 바꿀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인간은 디자인을 만들고, 디자인은 인간을 만든다


조현신 교수에 따르면, 좋은 디자인이란 이처럼 알게 모르게 삶에 도움을 주는 디자인이다. 물건을 통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도록 '표정'을 담은 디자인과, 그 시대의 가치관과 미적 취향을 담은 디자인도 긍정적이다. 거기에 인간적인 면이 포함되면 금상첨화이다. 예컨대 비싸고 잘 만든 물건보다, 질감·색채·형태에서 인간의 감성과 더 어울리는 제품이 한결 인간에게 이롭다.


그것은 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와도 부합한다. 디자인은 생활의 편의성과 쾌적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간 본성과 정체성 확립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정과 감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성정에 영향을 미치고, 미적 감각을 키우는 행위. '인간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인간을 만든다'는 처칠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상용품의 디자인에 무관심하다. 가끔, 평소에 무심히 쓰는 물건을 들여다보면 독특하고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문서를 철할 때 쓰는 스테이플러(호치키스)와 가위는 새의 부리를 빼어 닮았다. 집에서 쓰는 작은 라디오나 오디오 제품 가운데에는 특이하게도 부엉이·고양이·개구리의 표정을 베낀 제품이 많다. 화장품 용기 중에는 남녀의 신체 일부를 강조한 제품이 꽤 된다.




일상용품의 표정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변상태 교수는 "한 제품에 감성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제품이다"라고 말했다. 제품 표정이 살아 있다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관찰자의 감성에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 사람과의 관계가 두절된 사회에서 말을 들어주고,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LG전자 디지털 디자인연구소 김철호 부사장은 "디자인을 항상 사람과 연관해 생각하면서, 사용자에게 즐거움과 쾌적함과 편안함을 주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의 깨우침과 노력 덕에 디자인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요즘 유행하는 선(禪) 스타일의 디자인이 나왔다.


텔레비전을 예로 들어보자. 아직 네모 상자형 디자인에서 탈피하지 못했지만, 벽걸이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외형이 점점 더 단순화하고 있다. 색도 검은색·하얀색·회색 위주로 단조롭게 가고 있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데도 무채색 제품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복잡하다. 화려하고 복잡한 사회에 휘둘리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현대인이다. 하지만 욕망을 실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채색, 특히 회색은 현대인의 욕망을 간접으로 해소해 준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것이다.


가볍고 작게 만드는 디자인도 한창 유행이다. 소형 카세트·MP3·PDA·핸드폰 단말기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의 상징인 이동성과 가벼움은 현대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삶이 무거우니까 가볍고 작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분석한다. 한국미술연구소가 펴낸 〈디자인? 디자인!〉(시공사)에서는 인간의 고립화·내면화가 가속화하면서, 자기 것을 더 깊숙이 감추기 위해 작은 것을 선호한다고 해석한다.


유연함·투명함도 현대 디자인의 특징이다. 유연함은 디지털 기술의 산물이다. 디지털 기술 덕에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양과 색상의 제품을 얼마든지 갖게 되었다. 중절모를 닮은 건물, 곤충과 물방울을 본뜬 컴퓨터가 그것이다. 투명 디자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등으로 인간 관계가 불투명해지니까, 소통 수단으로 투명한 제품을 이용한다고 말한다. 즉 타인에게 직접 말을 걸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투명 제품을 이용해 자기를 보여주며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인공 환경에서 사는 현대인에게 디자인은 피할 수 없는 표정이다. 이제는 그 표정을 이용해 미적 쾌감을 맛보고 삶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감수성과 안목을 키울 때이다.



유홍준의 <완당 평전> 정도를 입문서 삼아 읽은 깜냥으로 <국역 완당 전집>을 독파하겠다고 덤비는 일은 상당히 무모하다. 고색창연한 한문투 번역 문장도 문제이거니와, 현대의 한 평범한 독자로서 김정희의 19세기적 박학다식을 따라 가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간송학파’ 문도들이 그 스승 격인 최완수에게 회갑 기념으로 헌정한 <추사와 그의 시대>(정병삼 외 지음, 돌베개 펴냄)는 ‘전문가들의 추사 깊이 읽기’ 결과물이다. 이 책에 실린 글 아홉 편은, 개중에 추사의 원전만큼이나 읽기 불편한 것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일반 독자 처지에서는 더 쉽게 추사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구실을 한다.



가령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세한도>와 그 못지 않은 명품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 (오른쪽 사진)를 비교하며 추사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살핀 글을 읽어 보자. 필자(강관식)는 모두에서 평소 최고급 수입 중국 종이를 애용하던 추사가 생애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세한도>를 왜 거칠고 흔한 편지 용지에 그렸으며, 그것도 여러 장을 이어 붙여 사용했을까, 라고 반문한다. <불이선란도>에 대해서는, 그림보다 글씨에 더 큰 비중을 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를 되묻는다. 필자의 그같은 반문과 대답을 번갈아 좇다 보면 이윽고 독자는 글씨와 그림, 고(古)와 신(新), 유(儒)와 선(禪)이 둘이 아닌(不二) 추사 예술의 진수와 만나게 된다.



<추사와 그의 시대>는 ‘사회와 사상’ ‘예술 문화’ 2부로 나뉘었는데, 제1부에는 추사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경제 상황과 주역·고증학·성리학·불교 분야의 사상사적 흐름을 살핀 글들을 한데 묶었다. 제2부에는 사군자·금석문·도자기 등과 관련해 추사와 그 문파에 초점을 맞춘 글들을 모았다. 독자들로서는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더 진진한 재미를 기대할 수 있을 듯싶은데, 흥선 대원군 같은 왕족을 비롯해, 서울의 양반 벌열인 ‘경화세족’이나 평민 지식인인 ‘위항시인’을 막론한 추사 인맥의 쟁쟁한 면면과 구체적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박제가·서유구 등 북학파 학자들의 조선 백자 품평을 분석한 글도 여느 책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재미를 준다.
‘추사이니까 읽어는 보아야지’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 고전에 대한 ‘예의’를 갖춘 독자라면 건질 것이 제법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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