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가장 뛰어난 첨단 문화”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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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도기마을 되살리는 김홍남 교수/“지역 주민이 자부심 갖게 하겠다”
김홍남 교수(이화여대 대학원·미술사학)의 머리 모양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바람머리’이다. 경주와 영암, 서울을 수시로 오가며 ‘바람 잘 날 없는’ 날을 보내고 있는 김교수에게 바람머리는 쉰넷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잘 어울린다.




김교수는 미국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스미스소니언센터·록펠러재단에서 학예연구원과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화여대 박물관장 시절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회를 여러 차례 열어 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박물관장에서 물러난 김교수는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석굴암·토함산 훼손저지대책위원회’ 대책위원·북촌문화포럼 대표·영암도기문화센터 고문은 새로 얻은 직함이다. 김교수는 문화 유물이 함부로 훼손되는 현실을 막아야 한다며 비주류의 길을 택했다.


문화운동가로 나서 ‘석굴암 훼손’ 저지


재야의 문화운동가로 백의종군한 김교수가 올린 첫 번째 성과는 ‘석굴암·토함산 훼손저지대책위원회’(대책위)를 조직해 석굴암 부근에 실물 모형관(석굴암 성보박물관)을 건립하려던 문화재청의 계획을 막은 것이다. 김교수는 건축업자만 배불리고 토함산의 흉물이 될 것이 뻔한 모형관 건립을 막아야 한다면서 건축역사학회장 이상해(성균관대), 미술사학자 강우방(이화여대·전 경주박물관장), 미술평론가 유홍준(명지대), 역사학자 노태돈(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대책위를 구성했다. 대책위의 ‘선봉’에 선 김교수는 국비 등 52억원을 들여 석굴암 바로 아래에 세워질 예정이었던 모형관을 각계에 탄원서를 낸 끝에 결국 중지시켰다.





김교수는 사라져 가는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의 적과도 싸우고 있다. 북촌은 가회동·사간동·삼청동·소격동·안국동·원서동·.재동·화동 등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한옥 밀집 지역이다. 1985년 1천5백18동이던 이 지역 한옥은 현재 8백50여 동밖에 남아 있지 않다. 김교수는 “이회창 전 총재가 살던 가회동 빌라촌을 짓기 위해 한옥 50채가 헐렸다. 이는 전통을 말살하는 비상식적인 일이다”라고 이 지역을 황폐하게 만드는 호화 빌라들을 비난했다.


요즘 들어 김교수가 가장 정열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전라남도 영암군의 구림 도기마을을 되살리는 일이다. 1989년 이화여대 박물관 발굴팀이 통일신라시대 도기 가마터를 발굴한 구림마을에 김교수는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다. 현지에 도기문화센터를 만든 그녀는 2002년에서 2008년까지 무려 7년이나 걸리는 ‘구림전통마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전통 마을을 조성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자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교수는 저장 용기로만 쓰이던 질그릇으로 차린 상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지를 보여주기 위해 <도기의 멋과 상차림전>(3월29일∼6월30일)을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열고 있다. 김교수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파리에서 최첨단 패션쇼가 열린다. 전통이 현대 문화와 어떻게 ‘접속’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전시회의 목적을 밝혔다.


전시회는 모두 여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2000년 아셈 정상회의 만찬에 쓰였던 도기도 선보였다. 전시회 시작 날 마을 사람들은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만들어진 도기로 풍성한 잔칫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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