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평-김소희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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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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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레 신의분노
아날로그 시대의
장대한 스펙터클-김소희



언제 어디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적 클라우스 킨스키>(1999년)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1954년, 열세 살인 헤어조크는 킨스키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는데, 어린 헤어조크가 기억하는 킨스키는 병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1972년, 서른한 살이 된 영화 감독 헤어조크는 바로 그 킨스키와 함께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는다. 그때 이미 쟁쟁한 배우였던 마흔일곱 킨스키는 헤어조크를 난장이에 불과한 감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후로 두 사람은 도합 다섯 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을 때 킨스키는 화면의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나와야만 한다는 둥 멋대로 굴고, 걸핏하면 영화를 그만 찍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스태프와 배우들은 그런 킨스키보다 별다른 표정 없이 침착하게 상황을 다루는 젊은 헤어조크감독을 더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헤어조크가 세상을 떠난 킨스키를 추억하면서 만든 <나의 가장 사랑하는 적 클라우스 킨스키>에는 킨스키와 혈투를 벌이며 생겨난 운명적인 애정이 담겨 있다.


재능이 뛰어난 과대망상증 환자는 그 자체로 볼거리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귀레가 그렇고, 아귀레를 연기하는 킨스키 자신이 그렇다. 어쩌면 이런 두 캐릭터를 끌고 험한 오지에 들어가 끝을 보고 만 헤어조크 감독 또한 같은 부류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는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배우와 가장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경험한다. 그 느낌은 속된 말로 ‘징글징글’하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첫 장면부터 희한하다. 철제 투구와 갑옷을 입은 병사들, 치렁치렁한 치마를 걸쳐 입은 귀부인들, 그런 귀부인을 태운 가마, 대포와 말 등등을 대동한 일군의 사람들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 내려온다. 먼 거리에서 보이는 그 모양새는 마치 뱀 한 마리가 산등성이를 휘감고 천천히 내려오는 듯하다. 그 일행은 아마존 강 유역에 있다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온 16세기 스페인 탐험대다. 아귀레는 강물 앞에서 앞으로 우리에겐 더 나쁜 일들만이 있을 것이라고 읊조린다.


영화는 아마존 강물 위에 동동 뜬 채 한없이 흘러가는 뗏목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인내심 있게 기록한다. 이를 통해 신화와 역사, 인간 본성이 그리스 연극이나 낭만주의 회화처럼 선명하게 묘파된다. 파시즘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어떤 측면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블랙 유머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세계 영화계의 강력한 조류 중의 하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호화로운 스펙터클이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대의 장대한 스펙터클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 비전이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광기 어린 연출
광기 어린 연기-김봉석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만의 원칙과 경지에 다다를 때까지 배우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감독들이 있다.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으면서 열악한 환경에 지친 클라우스 킨스키가 더 이상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반항하자,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그의 머리에 총을 들이댔다. “영화를 찍을 테냐,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그 덕에 <아귀레, 신의 분노>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광기가 처절하게 배어난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아귀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만이 아니다. 엘도라도를 찾아, 반역을 일으키고 아마존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스페인 병사들의 얼굴과 몸짓에 허튼 욕망과 광기의 악취가 지독하게 풍긴다.


아귀레와 병사들이 원하는 것은 돌아오라는 명령을 어기고 멕시코로 진격해 부와 명예를 얻은 사나이 코르테스가 누린 영광이다. 하극상을 일으킨 아귀레는 귀족인 구스만을 왕으로 임명한다. 공포에 질려 왕이 된 구스만은 자신의 영토가 스페인보다 6배나 넓다며 즐거워한다. 아귀레를 지지한 병사들은 광기의 포로가 되어 지옥으로 들어간다. 황금이 있다고 믿으며, 부와 명예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는 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막는 것은 자연 그 자체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스페인 병사들은 서로를 죽인다. 보이지 않는 원주민들은 단지 짧은 독침과 긴 화살로만 인식된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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