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패권은 누가 쥘까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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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지음 <홍군 vs 청군>/미·중 패권 쟁탈전 조명
중국 인민해방군은 군사 훈련을 실시할 때 가상 적국을 ‘청군’, 자국을 ‘홍군’이라는 코드명으로 부른다. 미국 국방부는 2001년 콜로라도의 우주센터에서 워 게임을 벌이면서 동북아의 한 강대국을 ‘레드’, 레드의 침공을 받는 이웃 작은 나라를 ‘브라운’, 브라운을 방어하기 위해 나서는 나라를 ‘블루’라고 명명했다. 레드는 중국, 브라운은 타이완, 블루는 미국을 가리킨다.

미국 정가에는 ‘블루팀’이라는 것도 있다. 중국위협론을 설파하며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선도하는 비공식 모임으로, 의원 보좌관·학자·싱크 탱크 연구원·정부 관리·언론인 들이 멤버다. 이들은 친중국파를 ‘레드팀’ 또는 ‘판다 허거스’(판다를 껴안는 사람들)라고 비판하며, 기본적으로 네오콘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한다.

인론인 이장훈의 <홍군 vs 청군>(삼인 펴냄)은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을 조망한 책이다. 두 나라가 벌이는 ‘거대한 장기판’의 움직임과, 어떤 말이 되든 그 장기판에 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대비책을 점검함으로써, 한반도의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청군의 전략은 미국이 옛 소련 붕괴 이후에 맞은 ‘단극의 순간’을, 클린턴의 대 중국 유화 정책 때문에 ‘단극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정세 인식을 기초로 한다. 그들은 중국을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에 도전하는, 옛 소련을 대체하는 새로운 악의 제국으로 여긴다. 유순하고 말 잘 듣는 민주적인 중국보다는, 공격적이며 반항적인 독재 국가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강력하면서도 적절한 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고 있으며, 미사일방어(MD) 체제 역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인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잇는 라인에 호주를 가담시키는 ‘아시아판 나토’를 구축해 중국을 봉쇄하는 구상까지 거론한다.
블루팀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 강경론자들이 위기를 과장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중국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해 첫 유인 우주선 신저우(神舟) 5호를 쏘아올려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제에 대응하는 우주전의 단초를 열었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석유를 놓고도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동남아 아세안 국가들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등 ‘좋은 이웃’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의 포위와 봉쇄를 깰 ‘해양 실크로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으로 ‘달러화 대 위안화’의 전쟁도 이미 불붙었다.

저자는 최신 정보와 자료 들을 종횡으로 구사하며 ‘팍스 아메리카니즘’과 ‘중화주의’의 충돌 양상을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하고 전망한다. 이 과정에서 양국의 정책 입안과 결정에 어떤 인맥들이 어떻게 개입하는가를 치밀하게 밝혀 눈길을 끈다.

예컨대 포드 대통령 시절인 197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국방부 총괄평가국 국장을 맡고 있는 앤드루 마셜 같은 인물이 특히 흥미롭다. 그의 별명은 영화 <스타워스>에서 제다이의 기사들을 가르친 스승 ‘요다’라고 한다. 네오콘이나 블루팀 같은 대외 강경파를 길러냈다는 뜻이다. 상·하원을 막론하고 미국 의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의원들이 아니라 그 보좌관이며, 때로는 그들이 의원들을 조종해 자신의 신념과 이해를 관철한다는 지적도 이색적이다.

하지만, ‘그럼 우리는 어째야 하느냐’는 데 이르면 좀 싱겁다. 어느 한쪽에 휘둘리지 말고 용미용중(用美用中)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타이완 전쟁처럼 실제로 폭발할 경우에는 ‘선택’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유보 사항을 달고 있어서다. 중국의 동북 공정으로 촉발한 고구려사 논란을 역사 전쟁의 차원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 연계된 국제 정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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