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조폭 ‘인생 역전’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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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폭 영화는 조폭과 보통 사람의 만남에서 모티브를 찾는 경우가 많다. 조직의 룰이 다른 탓에- 아니 사실은 달라보일 뿐 근본이 썩 다르지는 않은 탓에- 코미디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나두야 간다>(연출 정연원)는 아예 칼 쓰는 직업의 대표 선수인 조폭과 펜 쓰는 직업의 대표 선수인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의 삼투압 과정이 웃음을 유발하는데, 아무래도 소심한 작가가 조폭의 칼 같은 세계에 ‘감화’되어 가는 과정이 더 재미날 수밖에 없다. <나두야 간다>는 소설가를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예술가가 아니라 ‘소심함’과 ‘되는 일 없음’의 총화로 그리기 때문이다.

소심한 작가 이동화(정준호). 그는 순수 소설을 쓰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자부심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변변한 문학적인 명성조차 얻지 못한 처지이다. 출판사에 가져갈 원고를 인쇄하려는데 A4용지가 떨어져 보험설계사인 아내에게 온갖 애교를 떨어야 하고, 그렇게 가져간 원고는 별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한다. 아니, 그의 첫 소설을 출간해준 후배는 아예 당신이 내 회사를 말아먹을 뻔했다며 악담을 퍼붓는다. 그의 첫 소설 제목은 <카프카를 만났다>.

우디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 변형판?

택시 기사라도 하겠노라고 한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핸들을 잡은 그는 운전 첫날 인명 사고를 내고 만다. 목돈이 급해진 그는 후배가 건넨 대필 자서전 건을 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급기야 만철이파 보스 윤만철(손창민)과 만난다. 윤만철은 그릇이 다른 인물이었다. 부하들에게 “근본부터 다른 분이니 깍듯이 모시라”고 이동화를 소개하면서 시들어버린 자긍심에 싹을 틔워주는 것이다. 보디 가드가 아침 저녁으로 벤츠를 몰고와 그를 모시는 데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무실이 그의 차지이다. 헐크나 다름없던 아내는, 아침이면 코맹맹이 소리로 그를 배웅한다.

하지만 남 덕으로 영화를 누리기만 하면 무슨 재미랴. 자서전 대필을 위해 윤만철의 일기장을 보던 이동화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내용에 빠져든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쓸 만한 지침들을 뽑아내 체화하면서 인생 제2막을 새로 쓴다. 그 지침이란 ‘사내의 승부는 늘 반 박자에 완성된다’ 따위의 유치하지만 퍽 유용한 것들이다.

짐작하겠지만 <나두야 간다>는 흡사 우디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하다. 우디 앨런은 재능 없는 작가가, 평생 조폭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놀라운 창의력에 빚지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냈다. 사실 그 조폭의 창의력은 현실과 부딪치며 사는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게 되는 지혜와 통찰력일 뿐이어서 우디 앨런의 자조는 더욱 돋보였다. 예술가 나부랭이란, 진실을 캔다면서도 정작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나두야 간다>는, 그와 달리 판타지의 길을 간다. 두 남자가 자신 속에 감추어진 의외의 재능을 발견하고 아예 길을 바꾸어 걷는다. ‘반 박자 앞서 주먹을 날리는 지혜’를 터득한 동화는 만철의 조직을 접수하고, 남다른 감수성을 가졌던 보스 만철은 ‘글쟁이’의 길에 들어선다.

삼투압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화 충돌이 촘촘하게 웃음을 유발한다. 예를 들면 독후감을 쓰라는 보스의 특명에 동화의 책 <카프카를 만났다>에 코를 박은 만철의 부하들. 조직의 ‘넘버 2’가 나타나 ‘카프카가 뭐냐’고 물으니, 그들이 답한다. “벌렙니다요, 형님.” 그런데 <나두야 간다>에 따르면 인생을 바꾸어 살 수 있는 인생 역전은 조무래기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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