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토박물관 지킴이”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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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 인터뷰/“문화재는 사람들 속에서 빛나야 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말을 잘한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그가 사람들을 이끌고 전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며 풀어낸 말의 상찬을 글로 옮긴 것이다. 문화 유산에 대한 대중적 감각을 지닌 전문가가 문화재청장이 되었을 때 여야 정치권은 모두 환영했다. 학예직 출신 첫 문화재청장답게 그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재 정책’으로 관료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그러나 최근 정치권과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특기인 ‘말’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15일 기자간담회에서 광화문 옛 현판 글씨를 디지털로 복원했다면서 자료를 공개했다. 이로써 논란이 일단락될까. 2월16일 대전 문화재청장실에서 취임 6개월째를 맞는 유홍준 청장을 만났다.

광화문 옛 현판 글씨를 디지털 복원하기로 한 것으로 논란은 마무리되나?

그렇게 되길 바란다. 최종 판단은 문화재위원회가 하겠지만, 원형을 찾아 그대로 하겠다는 데 이론은 없을 것이다. 우리(문화재청)가 광화문 현판에 대해 공식 발표한 것은 어제(기자간담회)가 처음이다. 그동안 경복궁 복원 계획에 현판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원판을 찾을 수 없어 집자를 고려했다. 추사나 석봉, 퇴계 이황의 글씨와 함께 정조 대왕의 글씨도 여러 안(案) 중 하나로 검토했을 뿐 확정한 것은 아니었다.

집자나 디지털 복원보다 새로 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첫 글씨는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임진왜란 뒤에는 퇴계 이황이 썼고, 흥선대원군 때 복원했을 때는 임태영 총감독이 썼다. 새로 복원하는 거니까 이 시대 최고의 서예가가 쓰는 게 흐름으로 맞다. 여초 김응현 선생 정도인데, 그분은 붓도 못 잡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불가능하다.

광화문 현판 건에 이어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발언이 논란을 불렀다. 너무 정치적이 아니냐는 반응도 많은데.

현충사 발언이 정치적이었나? 김형오 의원한테 답장을 써 광화문 현판 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썼지만, 그 말은 내가 오래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했던 말이고, 사람들이 다 아는 것 아닌가. 책에 썼을 때는 탁견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장의 맥락을 무시하고 그 말만 떼어내 몰아치니까 시끄러워져서 잘못했다고 했다.

그런 발언이 박정희 재평가 분위기와 때를 맞춰 나오니까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광화문의 옛 현판 사진을 찾는다는 현상 공모를 석 달 전부터 했다. 그런데 광화문 현판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되었고, 또 문세광 사건 기록이 나오고, 모두 오비이락이다.

취임 6개월째를 맞았는데, 미술사학자에서 문화재청 수장이 된 소감이 어떤가?

학예직으로서는 처음 임명된 만큼 관료들이 맡았을 때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려 하고 있다. 전국이 국토 박물관이고 나는 국토박물관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흔히 철책을 두르고 출입금지 팻말을 세우는 것이 문화재 보호라고 알고 있지만 잘못이다. 어떻게 하면 유물이 빛나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또 목조 건물은 사람이 안 살면 썩는다. 경회루를 개방한 것도 개방보다 보존을 위한 것이다. 올 봄부터는 창덕궁 연경당에서 차를 팔 예정이다. 고궁에서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썰렁함을 지우기 위해서다.
해체 복원을 비판하면서 ‘그대로 두었다가 무너지면 그때 복원해도 늦지 않다’고 한 이른바 유홍준식 문화재 보존 정책이 화제다.

익산 미륵사지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감은사지 석탑 두 기, 부여 정림사지 석탑, 첨성대 등은 삼국시대 최고의 석조 건조물이므로 특별 관리할 계획이다. 이 탑들은 언론이 보도한 대로라면 서른 번은 무너졌을 것이다. 건축물이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안정된다. 옛날 건축에는 내진장치 비슷한 판축공법이란 게 들어가 있다. 해체 복원하려면 해체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시경 촬영까지 하면서 보고서를 만들었다. 문화재청 예산이 인건비 빼고 한 3천억원이다. 세 개 보수·복원할 것 하나로 줄이더라도 제대로 하겠다. 쓸데없이 해체 복원하는 데 돈 쓰지 않겠다.

경복궁 복원은 잘 되고 있나?

100% 복원은 불가능하고 2009년까지 45% 정도 복원된다. 경복궁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장금이 근무했던 소주방을 복원한 것도 그래서다. 또 경복궁 매표소나 화장실, 쓰레기통을 새롭게 디자인하도록 조성룡·승효상 두 건축가에게 맡겼다. 경복궁은 1백50년 전 최고의 건축가들이 세웠으니까 현재 최고의 건축가인 당신들이 아이 엠 페이(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건축가)처럼 딸린 시설을 최고로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경복궁에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나?

그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옛 성 입구에 같은 대리석으로 매표소를 만들었다가 20년 전쯤 다 때려부쉈다. 같은 석조 건물이 오히려 성의 아름다움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경북 봉화의 권충재나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의 경우 그 옆에 대형 한옥 기념관을 지어 문화재를 망가뜨려 놓았다. 차라리 현대식 건물로 낮게 지었으면 두 공간 모두 살아났을 것이다.

국보·보물 중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보·보물 지정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성은 없나?


여태까지는 국보 지정을 신청하면 심의해서 통과시켰는데, 이번에 방침을 바꿨다. 현재 국내에 높이 40cm 이상 되는 백자 달항아리가 스무 점쯤 있다. 그 중 국보나 보물급이 7~8점 되는데, 현재는 국보 한 점 보물 한 점만 지정되어 있다. 최근 한 기업 박물관이 달항아리 한 점을 국보 지정 신청했는데 내가 중단시켰다. 대신 ‘백자 달항아리 선수들 다 집합하라’며 3월 말까지 신청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국보·보물 지정은 문화재를 다 가져다놓고 상대 평가해서 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지정한다면 절대 국보가 될 수 없는 것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재지정은 어려운 문제다. 국가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야 관계없지만, 개인 소장품이 어느 날 국보에서 보물로 떨어진다면 그 상처가 클 것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4월25일 문화재위원 2년 임기가 끝나고 새로 문화재위원을 구성한 뒤 검토해 보겠다.

백제의 옛 도읍지 인근인 연기·공주에 대규모 행정도시가 들어선다. 지표 조사도 안된 것으로 아는데, 문화재 보존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가?

아직 저쪽에서 확실한 그림을 안 줬지만 매장 문화재 지도가 있기 때문에 차질은 없을 것이다. 또 청사를 짓는 중에 보존해야 할 선사시대 유구가 나온다면 보존 명령을 내고 30m 둘레로 띄어놓고 지으면 된다. 근처에 유적을 갖고 있는 건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유물이 나오면 개발을 안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획일적인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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