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판도 분석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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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계 정당들, 지지 철회해 '위기'···군부 지원 있어야 승리 가능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는 원래 11월10일에 치를 계획이었으나 동 티모르 사태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 같은 정치 현안을 빨리 수습하기 위해 10월20일로 앞당겨졌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인도네시아 각 정파는 서로 이해 득실을 따지느라 후끈 달아올라 있다.

대통령 선거 경주에서 선두를 달리는 후보는 민주투쟁당(PDIP)의 여성 후보 메가와티이다. 그는 지난 6월 치러진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당시 그가 이끈 민주투쟁당은 1백58석(33.7%)을 얻어 제1당이 되었고, 하비비의 집권 골카르당은 1백20석(22.4%)를 얻어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민주투쟁당은 과반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메가와티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적어도 2개 이상의 야당과 연합해야만 한다.

총선을 치른 뒤 메가와티는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꾸준히 축적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사이 벌어진 일을 보면 지지를 모으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 제도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을 한국의 국회 격인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국민협의회는 하원 격인 인민협의회(DPR) 의원 5백명과 지역·직능 대표 2백명 등 총 7백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직능 대표 2백명은 대다수가 수하르토 대통령 지지자이다. 인민협의회 의원 5백명은 국민이 직접 뽑은 4백62명과 군부 대표 38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협의회 의원 7백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서 과반수 이상 표를 얻는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된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한다. 이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는 국민협의회 내부에서 어떻게 세력 다툼을 벌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메가와티·하비비·이슬람계 3파전메가와티·하비비·이슬람계 3파전

어쨌든 10월 초순까지만 해도 대통령 선거전은 메가와티와 하비비 대통령이 겨루는 2파전이었다. 이는 지난 6월 총선을 전후해서 인도네시아 이슬람 정당들의 양대 지도자인 압둘라만 와히드와 아미엔 라이스가 메가와티와 ‘개혁 연합 전선’이라는 야당 연합 선거 조직을 만들어 골카르당에 맞섰기 때문이다. 야당 연합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연합해 메가와티를 야당 후보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이 구도를 이슬람 정당들이 깼다. 지난 총선에서 4위와 5위를 차지한 연합개발당(PPP)과 국민수권당(PAN) 등 8개 이슬람 정파로 구성된 ‘주축 세력’이 메가와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독자 후보를 내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결과 선거전은 메가와티·하비비와 이슬람계 정당 연합 후보가 겨루는 3파전으로 변했다.

대통령을 뽑는 기관인 국민협의회가 10월3일 ‘주축 세력’ 대표인 아미엔 라이스를 의장으로 선출한 것도 메가와티에게는 악재이다. 아미엔 라이스는 메가와티보다 집권 골카르당과 가까운 이슬람계 지도자이다. 국민협의회 의장 자리를 놓고 아미엔 라이스와 경쟁한 후보는 역시 이슬람계 정당으로 총선에서 제3당이 된 국민각성당(PKB·당수 압둘라만 와히드)의 마토리 후보였다. 마토리는 친 메가와티파이다. 말하자면 10월 3일 국민협의회 의장 선거는 친 하비비 후보와 친 메가와티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벌인 대리전이었다.

아미엔 라이스는 대선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이슬람계 의원의 표를 골카르당 쪽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아미엔 라이스는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후보가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국민수권당은 지난 6월 총선에서 겨우 의석의 7%를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선을 몇 주 앞두고 아미엔 라이스는 메가와티를 위협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정당 지도자인 메가와티와 이슬람 정당이 연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슬람계가 메가와티에게 등을 돌렸다고 분석한다. 또 이슬람계 정당들은 여성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메가와티를 지지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메가와티의 주요 경쟁자인 하비비의 정치적 미래는 더욱 좋지 않다. 그는 현재 집권 골카르당 내부에서조차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비비는 동 티모르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심지어 동 티모르를 주민 자치 투표로까지 이끌어 영토 일부를 외국에 팔아 먹었다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게다가 발리 은행 추문으로 도덕적 상처까지 입었다.

골카르당은 공식으로 하비비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대선 후보를 놓고 둘로 갈라져 있다. 국민협의회 내부의 골카르당 소속 의원들은 국민협의회에서 골카르당을 대표하는 마르주키 다루스만을 골카르당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

메가와티가 이끄는 민주투쟁당과 집권 골카르당,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 정당연합. 인도네시아의 차기 대통령은 이 세 정치 세력 간의 물밑 협상과 이합집산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승리를 확정짓기 위해서는 어느 정파이든 다른 쪽과 손 잡지 않을 수 없다.

이 한가운데에 군부가 있다. 군부는 국민협의회 내부에 38석이라는 고정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몇몇 지역 대표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군부는 아직까지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실 군부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궁지에 몰려 있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나설 수 없는 처지이다. 나라 안에서 군부는 보안법 제정과 관련해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시위를 강경 진압해서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 티모르 처리 방식과 관련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동 티모르에서 일어난 인권 유린과 관련해 유엔은 인도네시아 군부 책임자를 전범 재판소에 회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주요 대선 후보들이 군부에 다가가기가 더욱 어렵다.메가와티, 군부와 제휴 심사숙고

선두 주자인 메가와티가 대통령이 될지 여부는 그가 군부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메가와티는 현재 골카르당의 부통령 후보 제의를 거부한 국방장관 겸 참모총장 위란토가 자기 쪽으로 돌아서면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메가와티에 대한 군부의 입장이 열쇠인 것이다.

군부가 메가와티를 보는 시각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메가와티가 부통령 후보를 확정하지 않은 것과 궤를 같이한다. 메가와티의 민주투쟁당 간부들은 집권할 경우 군부가 밀고 있는 보안법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메가와티는 보안법과 군부 때리기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군부와 협조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가 수하르토 시절처럼 ‘고무 도장’과 거수기 노릇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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