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수술, 그 슬픈 뒷모습
  • 황종연(문학 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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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연이 선사한 자신과는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그 누군가가 누리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려고 몸을 고친다. 성형의 심리에는 어떤 특정 범주의 인간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한국 여성들의 성형 수술 풍조는 가히 세계적이다. 두어 해 전 <월 스트리트 저널>은 쌍꺼풀에서부터 장딴지까지 몸을 고치느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한국 여성들의 성형 열풍을 기사로 다룬 적이 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변신해서 나타나는 10대 여학생들, 성형 수술을 최고의 선물로 여기는 20대 처녀들, 젊음을 복구하려고 계를 드는 부인들, 구미의 유명 슈퍼 모델들을 따라 온몸을 조각하는 한국의 패션 모델들. 살을 찢어서라도 몸을 바꾸려고 애쓰는 한국 여성들의 얘기는 이제 조금도 신기하지 않다.

성형 수술 유행을 조장하는 대중 매체들은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을 ‘신체 위조’와 ‘세상 기만’의 수치감으로부터 구원할 많은 수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예뻐지고 싶은 것은 여자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성형만큼 자연에 대해 불경한 것,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것도 없다. 성형은 개인이 타고난 몸의 자연을 인공으로 변형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외모가 실재의 표현이라는 믿음

성형 수술에 철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현대적인 것이다. 그 철학은 자연이 인간에 대하여 아무런 초월적 권위도 행사하지 못하며 단지 인간의 인식과 통제 아래 있는 물리적 법칙의 체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성형 수술을 통한 변신을 승인하는 문화는 자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만들어낼 권리를 인정하는 문화이다. 성형 문화의 기초에는 개인은 각자 행복을 찾아서 자신을 다시 만들어도 된다는 계몽주의 이데올로기가 놓여 있다.

사람들이 성형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가가 정의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형 문화는 개인의 외모가 개인의 실재에 대한 표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외모도 능력’이라는 항간의 격언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성형 수술을 하는 의사와 수술을 받는 환자는 외모를 바꾸면 실재도 바뀐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통속적인 심리학적 지혜, 인상과 영혼, 색정과 불성은 별개라는 인류 보편의 종교적 교훈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성형을 하는 사람은 외부의 모습이 내부의 실재에 대한 표시라는 믿음과 그러한 믿음에 따라 자기를 다시 만들려는 의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형 수술을 받는 개인은 단지 자신의 자율성을 시험하려고 수술대에 오르는 철학적 모험가는 아니다. 그녀는 자연이 선사한 자신과는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그 누군가가 누리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려고 몸을 고친다. 성형의 심리에는 어떤 특정 범주의 인간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성형 수술이 15세기 말에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매독에 감염되어 코가 문드러진 환자들에게 코를 다시 만들어 주어 그들을 치욕으로부터 구제하는 수술에서 기원했다는 것,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아일랜드인·유태인·흑인·아시아인의 신체적 ‘이상’을 제거하는 수술을 거쳐 정착되었다는 것은 교훈적이다. 성형 수술은 배제의 논리가 냉혹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그 배제의 공포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성형으로 자신을 바꾸는 행동은 따지고 보면 개인적 자율성의 소극(笑劇)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사회의 관습에 맞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용기가 없다. 성형이라는 개인주의 문화의 아이러니는 자신을 다시 만들려는 의지에서 의사의 시술에 몸을 맡김으로써 결국 자신의 자율성도 헌납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성형 수술 유행이 상기시키는 것은 영화배우를 닮고 싶어 안달하는 젊은이들의 허영도 아니고 대중 소비 문화에 편승한 미용 성형 전문가들의 상혼도 아니다. 그것이 상기시키는 것은, 사회 권력에 의한 배제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 권력에 의한 ‘포함의 은총’을 갈구하고 있는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다들 멋지고 예쁘게 보이기를 꿈꾸는 성형 수술 열풍의 이면에서 자기 사회의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초라한 얼굴을 발견한다고 하면 엉뚱한 자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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