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미적분 척척, 철학에는 깜깜
  • 이정우 (철학자·시인) ()
  • 승인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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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학 교육에그토록 엄청난 비중을두면서도, 가장 기본적인학문이자 교양인 철학·사상 교육은 고등학교교육 과정에서 빠져 있다.이 사실을 어떻게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철학·사상 교육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학 교육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철학을 들먹인다. 상투적으로 ‘철학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철학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왜 우리 교육 제도에는 철학 교육이 누락되어 있는 것일까. 사회의 요청과 교육 과정 사이에 큰 어긋남이 존재하지 않는가.

대학에서는 ‘특강’이 많이 열린다. 그리고 특강의 주요 내용은 대개 철학이다. 이것은 묘한 구조적 모순이다. 정규 수업이 철학적 기초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정규 수업을 대신할 특강이 그렇게 많이 열리는 것이다.

특강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기초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강의 내용은 후기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들이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노자인 것 같다. 그리스 철학과 제자백가도 정식으로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학생들이 푸코·데리다·들뢰즈부터 읽어서 어떻게 철학을 배운다는 것일까.

유럽의 학생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프랑스에서는 졸업반에 한해 문과 학생들이 1주일에 9시간, 이과 학생들이 3시간 철학을 배운다(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반을 ‘classe de philo’ 즉 ‘철학반’이라 부른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 이미 플라톤의 <국가>, 데카르트의 <성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서 졸업한다.

<논어>와 <도덕경> 완독한 교수 몇 명이나 될까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대학 교수 중 <논어>와 <도덕경>을 완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율곡 사상이나 퇴계 사상의 대강이라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역사는 큰 비중을 두어 교육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고전은 교육 과정에서 빠뜨렸다. 프랑스의 경우 택시 운전사도 플라톤을 알지만, 한국에서는 대학 교수조차 <도덕경> 한번 제대로 읽어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 과정에서의 이 커다란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반면 수학의 높은 비중 또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공계로 진학할 학생들에게야 수학이 크게 필요하겠지만, 문과 계통 학생들이 왜 그토록 고도의 수학을 배워야 하는가? 나에게는 이것이 거의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것은 묻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배워야 되나 보다 하고 배웠을 뿐이다.

고전 사상이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우리의 삶에서 미적분이 중요한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공자·노자의 사상이 중요한가? 맥락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적분이 아니라 삶을 이끌어줄 고전적인 사상들이다. 수학보다 철학이 더 보편적인 학문이요 교양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학 교육에는 그토록 엄청난 비중을 두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자 교양인 철학·사상 교육은 아예 교육 과정에서 빠져 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교육에서 고전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모든 교육은 고전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유럽의 인문 교육은 철저하게 고전을 중심으로 짜인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제자백가와 우리 고전 사상들, 그리고 서양의 가장 고전적인 사상들이 교육 과정의 기본에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교육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왜 고등학교 때 그토록 머리를 싸매고 미적분을 풀었던 것일까? 그런 노력이 그들의 인생에 무엇을 주었던 것일까? 동시에 그들은 동양 사람에게 필수 고전인 제자백가의 저서조차도 한번 제대로 읽어볼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학제를 바꾸어야 한다. 문과 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수학을 배우고, 2~3학년 때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이과 학생들의 경우도 비중은 달라야 하겠지만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육계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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