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탈당이 곧 중립 아니다
  • (<시사저널> 취재 2부장)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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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조사를 보면 김대통령이 이인제 후보 신당을 지원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공정 선거 의지를 인정받으려면특정 후보 편들기의혹을 씻어야 한다.”
필자는 ‘김대통령의 마지막 사명-대통령 만들기에서 손떼라’는 제목의 본란(제415호, 10월 9일자)에서 김대통령이 자당 후보나 혹은 호감을 갖고 있는 다른 당 후보를 막론하고, 누구의 편도 들지 말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과거 우리의 선거 관행으로 볼 때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돕는 데 발벗고 나선다면 관권과 금권이 개입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후 필자의 시각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었다. 한 독자는 ‘독자 한마당’에 기고해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대통령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 특정 후보를 마음에 두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마 그 독자의 생각이 당시 일반 국민의 상식적인 정치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후 전개된 정치 양상은 일반인의 상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정치 고단의 ‘의도적 애매모호성’ 양동 작전인가. 김대통령의 처신은 국민을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국민은 이내 김대통령의 의중을 나름으로 읽어 냈다. 적지 않은 사람이 김대통령은 신한국당 주류측과의 갈등 속에 ‘이회창 죽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았고, 이를 곧 ‘이인제 대통령 만들기’로 연결해 생각하는 듯했다.

이중 플레이라는 상대 정파들의 비난 속에서 ‘당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다’ 혹은 ‘엄정하고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김대통령의 다짐은 공허하게 들렸다. 그의 최측근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신한국당 의원들에게 이회창 후보 지지 철회를 종용하고, 이인제 후보의 신당을 지원한 구체적인 사례와 정황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김대통령이 이인제 후보의 신당을 지원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김대통령으로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밑의 사람들이 오해 받을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엄정히 중립을 지켰노라고. 그러나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부정축재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언제 재벌들에게 돈을 가져 오라고 했나. 다만 밑의 사람한테 요즘 아무개 재벌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을 뿐이다.’ 윗분의 심중을 헤아려 ‘알아서 기는’ 것이 아랫사람들의 행태임을 안다면 그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설사 김대통령이 누구를 편들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처신에 오해를 받을 만한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 민심은 YS 공정 의지 안 믿어

최근 김대통령은 ‘15대 대선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엄격히 말해 자의로 탈당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축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불가피한 정황에 따른 것이라 해도 어떻든 김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함으로써 모양상 중립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문제는 중립의 모양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공정한 선거 관리란 그 내용이 문제다. 탈당 자체가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탈당 관련 보도 중에는 ‘김대통령은 손여사를 통해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에 자금이 전달되었다는 주장에 격노했고, 탈당 결심을 굳혔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소 감정적인 결정인 듯한 느낌이 든다. 따라서 탈당 발표에 뒤따른 특별 담화를 통해 ‘악의에 찬 거짓 선전에 대해 공권력으로 엄단하겠다’는 김대통령의 단호한 언급은 듣기에 따라서는 이른바 ‘김심’ 개입 시비 등 자신과 관련한 비방에 강력 대처하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이 진심으로 엄정 중립의 입장에서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지가 있느냐이다. 대통령이 어떤 묘수로 내심을 위장한다 하더라도 국민은 결국 그 속마음을 안다. 거꾸로 정파들의 어떤 흑색 선전도 그 진심을 훼손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공정 의지가 아직까지는 의심받아 왔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공정 의지를 국민에게 확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특정 후보 편들기에서 진정 손을 떼야 한다.

퇴임 후의 정치적 영향력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공정 선거를 이룬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김대통령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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