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엔 머무를 곳이 있었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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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자 김종헌 지음 <역사의 역사>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역사(驛舍)도 진화했다. 서울역만 하더라도 비잔틴 양식의 중앙 돔이 장중한 구 역사와, 유리벽으로 산뜻하게 외관을 치장한 신 역사 사이에는 80년 가까운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하물며, 대합실 톱밥 난로 주변에 둘러선 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한겨울 눈발을 처연하게 바라보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실재하는 역은 아니다) 같은 곳은, 이제 시 속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근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김종헌 교수(배재대·건축학과)의 <역사의 역사(歷史)>(배재대 출판부 펴냄)에는 사평역 같은 근대의 유물뿐 아니라 고대의 유물이 된 역사들도 등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를 철도의 부속물에 국한하지 않는다. 떠남과 머무름이 교차하고 이동과 정주(停駐)가 복합된 ‘교통 건축’이면 모두 역사로 간주했다. 따라서 수레나 말, 아니면 아예 죽장망혜(竹杖芒鞋)로 길 떠나던 과객의 시대에도 역사는 있었다. <역사의 역사>는 고대를 기점으로, 광복 직전을 종점으로 삼은 한국 역사의 통사이다.

한국 역사의 연원은 삼국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삼국사기> ‘거기조(車騎條)’의 수레 이용이나 ‘옥사조(屋舍條)’의 마방(馬房) 이용 규제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왕이나 귀족의 공무 수행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도 교통 건축(역사나 객관)이 활발히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 골품제에 따른 구체적인 차별 규정을 남길 정도이며, 왕이나 귀족들이 휴식·영접·전송을 위해 무슨무슨 역으로 나아갔다는 기사가 흔히 발견된다. 고구려에서도 안악 3호분 벽화의 두 간짜리 기와지붕 수렛간 그림, 쌍영총 벽화의 <행렬도> 등에서 역사의 존재를 유추해볼 수 있다.

고려 때는 절, 조선에선 주막이 역사 구실

도로 정비가 본격화한 고려 때는 길의 중요도에 따라 대로역·중로역·소로역으로 구분해 지방마다 규모와 형태를 달리하는 역사를 두어 운영했는데, 현전하는 강릉 객사문이 당시 역사 건축의 주류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후기로 오면서는 대규모 불사로 인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사찰의 요사채 일부가 역사 역할을 수행하거나, 아예 사찰로 들어가는 길목에 신도와 수도승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역사를 따로 세우기도 했다.

조선 시대의 역사는 고려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발전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역(驛)참(站)진(津)도(渡) 같은 교통 행정 기관을 지원하는 휴식·숙박 공간으로 관(館)과 원(院) 등이 활용되었지만, 전쟁으로 이들이 피폐해진 다음부터는 주막이 교통 건축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건축 면에서도 이전의 관립 역사들이 규범과 격식을 따지는 폐쇄성을 지닌 것과 달리,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간 주막들은 편의를 우선하는 개방형 건물의 특징을 보였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주막의 이같은 근대성에 주목해 근대적 계획 단지 개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주막촌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철도 역사는 대한제국 들어 비로소 언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관리들의 일본 견문기 등을 보면 기차를 화륜차(火輪車), 역사를 역루(驛樓), 플랫폼을 장행랑(長行廊)이라고 기록해 눈길을 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철도 역사인 경인선 인천역사(1899년) 이후 광복 직전까지 건설된 한국 역사의 역사는 철저하게 일본에 의해 장악되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철도 개설의 목적(한반도 수탈, 만주 침공 등)과 역사 건축 양식(일본 목조 양식, 서양 고전 양식 등)에 따라 몇 가지 단계로 나누는데, 전체적으로 ‘공학으로의 건축’과 ‘예술로서의 건축’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미학과 공간 개념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폄하했다. 근대적 의미의 여행과 교통보다는 효과적인 식민지 통치를 위해 지어진 역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역사 사진들 눈길 끌어

이같은 역사사(驛舍史) 서술을 통해 저자는 머리말에 밝힌 대로 생활사(교통)의 관점에서 공학사(건축)를 다루려는 의욕과 함께, 한국의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문헌 기록은 물론이고 일제 시대의 각종 희귀 사진·설계 도면·지도·통계 자료는 저자의 그런 노력과 시도들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특히 1920~1930년대 전주·남원·외금강·북청 역사 들의 고색 창연한 모습을 빛 바랜 사진으로 보는 맛은 각별하다.

그러나 일반 독자 처지에서 ‘교양으로는 커버가 안되는’ 전문적 논의들이 자주,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교재 장사만 한다고 종종 비판받던 대학 출판부 -그것도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열악한 지방 대학 출판부가 이 만한 학술서를 낸 것이 고맙고 반갑다는 치하 또한 빠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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