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청문회 증언 이루어져야 한다
  • <시사저널> 편집장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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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성의 있고 사려 깊은 진술을 통해 이 나라를 걱정하고 어려움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러나오는 것이다.”
경제 청문회를 둘러싸고 정국이 크게 요동하고 있다. 지난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여·야당 총재가 12월8일부터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후속 실무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청문회 기간, 청문회를 끌어갈 국정조사특위 구성비, 청문회 의제, 증인 범위 등 실무적인 쟁점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협상이 진전된 것이 없다.

막판 초 읽기에 몰려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질지 모르나,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단독 강행’과 ‘실력 저지’라는 여·야 간의 대결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다. 자칫하면 경제 청문회가 지난 1년 동안 지속되어 온 정치 파행의 결정판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경제 청문회는 어느날 갑자기 돌출한 사안이 아니다. 1년 전부터, 정확히 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를 받아들인 시점부터 환란의 진상 규명을 요구해 온 국민적 관심사이다. 새 정권이 수차례 다짐해 왔고, 외환 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실시하기로 약속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공격과 방어의 기제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적어도 청문회에 ‘누구를 불러다가 무엇에 대해서 물을 것인지’를 두고 이제서야 생떼 쓰듯 싸울 일은 아니다.

비록 청문회 진행은 국회의 국정조사특위가 맡는 것이지만, 청문회의 진정한 주최자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밀어닥친 국가 파산의 위기에 떠밀려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국민이 주최자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어떤 점을 등한히 해서 나라 살림이 거덜났는지를 사실 그대로 알아야겠다는 것이 국민의 집약된 요구이다. 청문회 성격이나 시행 방법을 결정하는 데에 가장 비중 있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국민의 요구치에 부응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문회 의제와 증인 선정 문제를 두고 뒤늦게 정쟁을 일삼는 짓은 지극히 퇴행적이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 ‘누구’와 ‘무엇’을 흐려 놓으면 사실상 묻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청문회의 의제 설정은 간결하면서 명확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이것저것 건드리다 보면, 밀도 있는 진행보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산만해지기 쉽다. 여당이 주장하는 대로 YS 정부 경제 정책 전반을 의제로 삼는다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환란이 발생한 원인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을 중심 의제로 삼고, 외환 위기로 빚어진 국난의 전후 맥락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데 청문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제 청문회는 권력을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즉 환란의 징후는 어느 때부터 발생했는가, 왜 늑장 대응했는가, 위기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묵과하려는 시도는 없었는가, 당시 경제 정책 운용에 문제점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을 풀어가는 것만으로도 이번 청문회는 충분히 의의가 있다.

청문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증인 채택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 추진 중인 경제 청문회의 성격은 특정인의 통치 비리를 전제로 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마당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89년 전두환 정권의 태동과 압제를 심판하는 청문회를 연 바 있다. 5공 비리와 광주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당시 청문회는, 지나간 정권의 비정(秕政)을 캐고 초법적으로 자행된 권력 찬탈의 만행을 드러내는 파사 현정의 자리였다. 명백히 선과 악으로 구분이 가능한 권력 행위에 대한 청문이요, 역사적 범죄에 대한 심문이었다.

그러나 경제 청문회는 통치 비리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그것은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잣대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경제 정책과 국정 기조에 대하여 효율성과 적합성을 가려내는 자리이다. 어떠한 경제 여건에서 외환 관리의 허점이 잉태되었고, 환란의 진행 과정에서 왜 적절한 대응책을 펼치지 않았는가를 찾아내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 노심초사한 부분을 밝히고, 국가적 재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당부하고 싶은 교훈이 있다면 허심 탄회하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차라리 감옥에 갈지언정 청문회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반발은 경제 청문회의 성격을 지나치게 권력을 심판하는 자리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지켜지지 않는다. 성의 있고 사려 깊은 진술을 통하여 이 나라를 걱정하고 어려움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러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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