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사냥’의 비극성
  • 진중권(문화 평론가.중앙대 겸임 교수) ()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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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86은 1990년대를 거치며 사회의 중추로 떠올랐다. 그들은 이념을 잃었지만, 이상만은 살아 있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이 386 사냥부터 시작한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리라.”
‘뉴라이트’라고 해서 담배 이름인 줄 알았더니, 나라 살리기 운동이란다. 그 우국충정, 이해하고 남음이 있으나, 주제넘게 나라 구할 생각일랑 접어두고 그냥 제 자신이나 구제하는 게 좋겠다.

위기에 처한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보수 우익이다. 김대중 정권 때만 해도 이들은 ‘5년만 기다리자’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정권 탈환에 실패하고, 총선에서 패하여 의회에서 소수파로 전락하자, 존재의 위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툭하면 시청앞 광장에 몰려나와 악을 쓰는 이들은, 영원히 2류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구(舊) 기득권층을 위해 온몸으로 울어주는 앵무새런가?

‘뉴라이트’란 1970년대 대처와 레이건의 노선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요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즉 복지를 축소하고 시장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구미와 달라 애초에 ‘복지’란 게 없으니 더 축소할 것도 없다. 또 모든 것을 ‘시장’에 내주는 정책이야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이미 잘 알아서 하고 있잖은가. 그러니 거기에 보수 우익이 특별히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철 지난 이념운동, 그 사고의 극단성

따라서 ‘뉴라이트’란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 이념의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이 부쩍 ‘사상 무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월간 조선> 읽고 사상 무장을 하다니 참으로 딱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나마 이들 외에는 딱히 희망을 걸 데가 없다는 게 한국 보수 우익의 고민이자 웃지 못할 코미디다.

이 운동을 이끄는 이들의 면모도 재미있다. 한 사람은 1980년대에 ‘위수김동’ 외친 공으로 간첩 잠수함 타고 월북해 김일성을 친견하던 부류(이른바 NL)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노선에 따라 계급 혁명으로 이 땅에 소비에트를 건설하려던 과(이른바 PD)에 속한다. 남들은 이제 가정 꾸려 잘사는데, 이들만은 여태까지 철 지난 ‘이념운동’하고 앉았다. ‘좌’에서 ‘우’로 바뀌어도 그 사고의 극단성만은 영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활동 계획도 재미있다. 앞으로 정치권에 침투한 386세력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경력(?)이 있으니, 사노맹이 주사파라고 ‘삑사리’나 내던 박 홍 총장보다는 나을 것이다. 문제는 1980년대의 386들 중에서 아직까지 그 모양, 그 모습대로 남은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 남들 다 새 모습으로 새 시대를 사는 마당에, 정작 이들만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여전히 198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68세대도 우리 못지 않게 과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 이상만은 죽지 않아, 1970~1980년대에 사회의 중추가 된 이들은 숨막히도록 보수적이었던 유럽 사회를 진보적으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의 386은 어떤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이들도 사회의 중추로 떠오르고 있다. 아스팔트의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 사회를 책임질 나이가 된 것이다. 그들은 이념을 잃었지만, 이상만은 아직 살아 있어 결국 이 보수적인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이 386 사냥부터 시작한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리라.

그래 보았자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일. 우리가 애를 낳는 것은 언젠가 이 사회를 그들의 손에 넘기기 위해서다. 이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구세대는 썰물처럼 물러가고, 386은 모든 곳으로 진출해 버렸다. 생각해 보라. 한때 김일성 만세 부르고, 레닌 만세 부르던 이들이 심지어 우익운동의 지도부까지 장악해 버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보수 우익도 살아 남기 위해서는 386세대의 이념적·조직적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저 386 사냥운동이 가진 심원한 비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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