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와 갈치와 미역이 만났을 때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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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자미 미역국, 갈치 미역국, 생멸치 된장국 따위 음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서울내기인 나도 부산 출신 남편과 살면서 알게 된 음식인데, 그 지역 사람들은 쇠고기 미역국보다 가자미 미역국을 훨씬 좋아한다. 흔히 미역국에 생선을 넣으면 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해물 비린내에 비해 육고기 누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된장국에 쇠고기를 넣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생선으로 국을 끓이려면 생선이 아주 싱싱해야 한다. 가자미국은 손바닥만한 생물 참가자미가 있어야 한다. 가자미가 좋지 않으면 달착지근한 맛도 없고 살도 부드럽지 않거니와 비린내가 심하게 난다. 그런데 이런 가자미는 가격이 비싸서 재료비에서 쇠고깃국보다 더 비싸게 먹히고, 손도 훨씬 많이 간다. 싱싱한 가자미를 다듬어 일단 물을 넣고 끓인다. 다 익으면 건더기만 건져 손으로 살과 가시를 일일이 발라낸다. 발라낸 살코기를 다시 국물에 넣고, 이번에는 불린 미역을 넣고 함께 끓인다. 물론 미역을 좋은 것을 써야 맛있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간은 반드시 조선간장으로 해야 한다. 미역이 무르도록 끓이면 가자미 살에서 노르스름한 기름이 동동 뜬다. 대접에 퍼서 상에 올려놓을 때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때까지 조금 남아 있던 가자미 냄새가 싹 가시고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갈치 미역국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한다. 갈치는 가자미보다 더 비린데, 대신 맛은 훨씬 달착지근하다. 싱싱한 생물 갈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회 떠 먹을 만큼 아주 싱싱한 갈치라면, 미역을 넣지 않은 제주도식 갈칫국을 끓일 수 있다. 미역이라는 재료가 생선의 비린내를 많이 없애주는데, 제주도식 갈칫국은 늙은 호박과 배추 줄기 등을 넣고 맑은 국을 끓이는 것이니, 이거야말로 갈치가 싱싱하지 않으면 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서 먹어 보면, 정말로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는 환상적인 맛이다.

좀더 비린 생선으로 끓이는 국도 있다. 생멸치로 국을 끓이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생멸치를 구경조차 하기 힘든데, 마치 정어리 작은 것처럼 생겼다(우리가 흔히 보는 마른 멸치는 데쳐 말린 것인데, 생멸치는 그것보다 서너 배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살이 붉은 등 푸른 생선이니 꽁치나 고등어처럼 비린내가 등천을 하지만,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삶아 가시를 빼는데, 멸치는 생선이 너무 잘아 조리나 체에 걸러야 한다. 살은 곱게 부서져 내려가고 가시가 조리에 걸린다. 이 과정이 귀찮으면 그냥 추어탕 끓이듯 믹서기에 갈면 된다. 걸쭉해진 생선국물에 된장을 풀고, 줄기가 기다란 봄 배추 삶은 것을 넣어 다시 끓인다. 된장과 마늘 양념이 희한하게도 멸치 비린내를 싹 가셔주고, 달착지근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거의 가을 추어탕 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것 모두 싱싱한 생선이 흔한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고향 떠나 타지에서 사는 바닷가 사람들은 이 향수를 어찌 달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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