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문제 거론해야”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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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15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15대 대통령 후보.

오는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서 남북 문제는 한국 정치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도 오래 전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준비해 왔고, 최근에는 그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1 야당 총재인 이총재가 남북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총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관계에 관한 자신의 원칙과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주문을 소상하게 밝혔다.

대북 정책에서 북한을 변화 가능성이 있는 대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특히 이번에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의 변화 가능성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도 약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지만, 과거와 비교해 보면 이것도 하나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남북 문제의 근본적 해결, 즉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족 통일까지 가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변화냐 하는 점입니다. 전쟁 위협을 해소하고 평화 공존으로 가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본질적인 변화인데, 그 점에서는 아직까지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는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런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 당도 원칙적으로 포용 정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포용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동안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선택적 포용 정책’을 주장해 오셨습니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소극적인 정책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인식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가령 사람 사이에서도 이것을 줄 테니 너는 이런 행동을 해라 하고 상대방에게 반대 급부를 요구하면서 베풀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 역시 자신이 뭔가를 해야만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부의 입장은 이른바 선공후득(先供後得), 즉 일단 도우면 결국 변할 것이라는 입장인데, 최소한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선택적 포용 정책이라는 것은 지원과 협력을 하되 거기에 상응한 변화 시도나 행동을 요구하자는 것이죠. 이렇게 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면 오히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독일 통일의 경우를 보아도 서독이 동독에 많은 원조와 지원을 했는데 무상으로 한 것이 없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반드시 동독의 행동이나 반대 급부를 요구했고, 그런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통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북한을 지원할 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얼마든지 일방적으로 받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남북 문제는 더욱 꼬이게 될 것입니다.

정부의 햇볕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이 정부의 햇볕 정책과 적극적인 포용 정책의 결실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은 김대통령이 노력한 결과라고 보고 그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햇볕 정책의 결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 제스처 정도만 변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해소하겠다는 방향으로 실질적으로 변화했다면 햇볕 정책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닙니까? 지금 북한은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 남한의 협력과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고, 이것이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북한의 태도를 감안할 때 대북 관계에서 경제 문제와 군사 문제를 직접 연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당연히 연계해야 합니다.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미리 걱정하고 포기하면 남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갑니까? 예를 들어 과거에 미국이 소련과 협상할 때 항상 경제 협력 문제를 군축과 연결했고 최근의 미·북 고위급 회담을 보더라도 미국은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대신 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행동을 받아 냈습니다. 그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경제 문제와 군사 문제의 연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남북 문제와 관련해 정부측에 투명성을 지키라고 요구하셨는데, 남북 문제의 특성상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기는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투명성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계시는지요?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가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원칙이 유보되거나 변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투명하게 알리고 야당과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 당이 제기한 세 가지 원칙, 즉 안보와 정체성 유지, 상호주의 준수, 국민 부담이 필요한 사항 국회 동의 등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국민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영수회담에서 그 세 가지 원칙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후 정부의 자세를 평가해볼 때 만족하시는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얼마 전에 비료 20만 t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경우입니다. 1998, 1999년에 비료를 지원할 때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추진했는데 이번에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을 붙여서 상호주의 원칙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난번 여야 영수회담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기로 합의했는데, 거기에 어긋나는 조처를 취하면서 사전에 우리 당에 그 사실을 알려오거나 양해를 구한 적이 없습니다. 또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실무 접촉 과정에서도 그 경과에 대해 사후에라도 한마디 우리 당에 그 내용을 브리핑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초당적 협력을 바란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비료 20만 t을 줘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반대할 리가 없습니다. 이번 경우는 종전에 비료를 지원할 때 취해왔던 상호주의 원칙을 포기한 측면이 있는데, 이런 원칙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더구나 여야 영수회담 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땅히 야당의 양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약속 파기지요.

이번 정상회담이 내실 있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김대통령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이 분명한 자세를 가지고 우리 쪽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만난 것 자체에 너무 감격하고, 만나면 뭔가 이루어질 수 있다든가, 이쪽에서 선의를 보이면 뭔가 될 것이라든가 하는 자세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정하고 우리가 줄 것과 북한측에 요구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회담을 내실 있게 이끌어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구체적으로 우리가 줄 것과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명백합니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은 우선 전쟁 위협 해소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목적은 바로 전쟁 위협을 해소하고 평화 공존의 길을 열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전쟁 위협 무기 문제입니다. 그걸 분명히 북한에 얘기해서 남북 정상이 만나면 이 문제를 거론해야만 한다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북한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북 정상회담 하지 말아야지요. 그 다음에는 이산 가족 문제입니다. 이것도 1회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동서독 예 같은 모델을 참작해서 분명한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호 방문과 서신 왕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밖에 여러 가지 문제, 가령 탈북자 인권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줄 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경제 협력입니다. 그러나 우리 능력 범위 내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한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낼 수 없을 것이거니와 국민도 그것은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능력 내에서 하되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보람이 있는 것이지요.

핵이나 미사일 등 군사 문제를 우선적으로 거론하면 북한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해 왔기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 위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한미군은 이러한 전쟁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 주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로 인한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선결 문제인 것입니다.

탈북자 인권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고 국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그 문제를 거론하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는데, 대처 방법이 있습니까?

대북 문제 전문가인 김대통령이 잘 알아서 하겠지요. 다만 분명한 것은 탈북자 인권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나 그것이 미치는 영향보다도 그 문제의 본질적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고 특히 김대통령은 인권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위해 동 티모르에까지 파병했는데 하물며 동족인 북한 주민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실효성이 있든 없든 대통령으로서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얼마 전 외신 기자회견에서 6·25 책임론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6·25 문제는 우리 민족의 아주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앞으로 남북이 평화 공존의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 가려면 그 바탕에는 상호 신뢰가 필요하고,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아픈 역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짚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렵게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점에서 제기하느냐 하는 것은 당사자인 김대통령이 알아서 잘 해야지요.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야당의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셨는데, 앞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초당적 협력을 선언할 용의는 없습니까?

지난번 여야 영수회담 자체에 그런 의미가 있었고 그 이후에 기자회견에서도 초당적 협력 의사를 밝혔습니다. 제가 대통령에게도 말했지만 남북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야당도 이번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초당적 협력은 야당만이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항상 걱정하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여당도 진정으로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받을 마음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비료 지원 건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초당적 협력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초당적 협력 의사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상응한 자세를 갖춰 주기를 바랍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한데, 이런 상황에서 남북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우리의 대처 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패권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고 중간에서 한국이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저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한·미 동맹 관계는 지금까지 우리의 안보를 지켜 온 골간입니다. 한·미 동맹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그 위에서 중국과 협력 관계를 이루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서독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소련과의 협력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냉전 체제를 무너뜨렸던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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