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퀴노네스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 “99년 상반기, 한반도 살얼음”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r)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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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동결 약속을 지켰는데 미국이 경제 제재를 풀지 않아 북한 경제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 일괄 타결을 선택하면 북한도 더 이상 핑계를 대지 못하고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재단은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을 목적으로 지난 54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 단체이다. 이 재단의 한국지부 대표에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가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재단의 활동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퀴노네스 대표는 한반도 전문가답게 북한 관련 분야를 재단의 새로운 사업 항목으로 추가해 재단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북한분석관을 역임한 그는 미군유해발굴단 단장과 핵연료봉 대책팀 책임자 자격으로 북한을 열세 차례 방문했다. 퀴노네스 박사는 그동안 북한 외교부와 군부의 고위급 인사 들과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문제에 대해 깊숙이 의견을 교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계십니까?

북한의 경제 일꾼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 서적 보내기입니다. 이 사업은 북한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인데, 주로 미국에서 발간된 국제 무역이나 경영학과 관련된 책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8천권 정도를 목표로 추진했습니다. 또 한 가지 사업은 북한 경제 일꾼들이 외국에 유학해 자본주의 경제를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사업은 유엔개발계획(UNDP)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아시아재단은 주로 항공료 등을 지원합니다. 이런 사업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뉴욕 대학과 베이징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의 경제 관료 10여 명을 초청해 약 1주일간 국제 상법을 강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금창리 지하 시설과 관련해 98년 12월에 있었던 미국과 북한 간의 고위급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개인적으로는 그 회담에서 커다란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탐색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회담 결과보다는 북한 대표들이 뉴욕 회담 뒤 워싱턴을 방문한 것에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북한 협상팀이 워싱턴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대표들의 워싱턴 방문은) 특히 공화당의 강경한 입장을 직접 파악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북한의 복잡한 의사 결정 구조 때문입니다. 평양은 정치가 매우 복잡한 곳입니다. 크게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데 바로 인민군과 외교부이지요. 인민군은 미국에 대해 매우 강경하고 외교부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중유 공급 문제 등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외교부의 입지가 매우 축소되고 상대적으로 인민군의 입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인민군을 설득하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즉 외교부 대표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공화당의 강경한 입장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김정일에게 이를 보고하면 김정일이 이를 토대로 인민군을 설득하는 방식입니다.

김정일이 인민군을 설득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기대해 봐야지요.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조용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한국 정부까지 강경하게 대처하면 문제가 복잡하게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인민군이 원하는 게 바로 그런 방향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과의 대립을 원치 않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인민군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북한과 경제 교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김정일이 인민군에게 남쪽이 우리와 경협을 하려 하고 있고 우리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일본 정부도 미사일 사건 직후 강경한 입장을 취하다가 최근에는 유연해지고 있는데, 그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정책 결정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커졌습니다. 얼마 전 워싱턴에 갔을 때 북한을 다녀온 미국인들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 얘기도 과거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매우 딱딱해졌다고 합니다. 북한 민간인들이나 재일교포들도 모두 인민군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북한은 경제나 사회 모든 면에서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인민군은 미국과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이런 변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김정일이 인민군과 민간의 입장 중에서 어느 것이 북한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선택해야 합니다. 다행히 인민군을 설득할 수 있다면 지하 시설 문제도 진전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99년 상반기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들이 북한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해 문제가 복잡해졌다고 주장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보기관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을 강경한 방향으로 몰기 위해 언론에 정보를 유출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입니다. 제가 국무부 현직에 있을 때도 북한 관계 현안을 놓고 국무부와 정보기관 사이에 의견 충돌이 많았습니다. 의견 대립이 있고 난 뒤에 보면 언론에 한쪽의 정보가 유출되곤 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국무부로 대변되는 미국 정부 정책에 압력을 가하려 했던 것이지요.

금창리 문제에 대해서도 국무부로 대표되는 미국 정부와 공화당이 중심이 된 의회 사이에 의견이 크게 대립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북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시각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무부의 관심은 북한과의 외교 관계 수립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고, 테러 행위를 중단하고, 미군 유해를 반환하는 등 국제 사회의 룰을 지키면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공화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권력 구조나 사회 체제를 바꾸라는 것이지요. 북한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강력한 압력을 가해서라도 듣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화당은 식량을 지원하는 대가로 북한의 경제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무부 처지에서 보면 이것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미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의 내정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제네바 합의에도 그런 조항은 없습니다. 공화당은 제네바 합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문제는 공화당도 그 이후의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화당은 한반도 상황이나 국제 상황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클린턴 행정부를 공격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금창리 문제는 많은 이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우선 금창리 시설 조사는 미국이 하는 것보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 기구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하게 되면 북한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맡으면 이런 반발을 줄일 수 있고 핵사찰에 대해서도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도 제안했지만 저도 패키지 딜(일괄 타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즉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발전하지 못한 근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경제 제재입니다. 북한은 핵동결 약속을 지켰는데 왜 미국이 경제 제재를 풀지 않느냐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또 경제 제재 때문에 미국 등 서방 자본이 들어오지 못해 북한 경제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미국이 경제 제재를 풀어도 북한 당국이 경제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미국 자본의 투자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경제 제재는 별 실익도 없이 양국 관계만 어렵게 하는 요인이지요. 미국이 패키지 딜의 일환으로 경제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도 더 핑계를 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도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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