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에게 ‘건강’ 있나니…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www.eandh.org) ()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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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수명 길다” 연구 결과 나와…우울증·알츠하이머도 덜 발병
“독실한 신앙인들이 수명이 길고, 질병 회복 속도가 빠르며,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비교적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경향이 있다.” 종교와 건강의 연관성을 다룬 논문 40여 편을 분석한 한 연구자의 결론이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마약에 비유했지만, 이쯤 되면 종교는 ‘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정신과 육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암을 비롯한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미국 듀크 대학 연구진은 요양원에 기거하는 불구 노인들과, 만성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낮았고, 우울증이 발생한 뒤 그로부터 벗어나는 속도도 빨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수명이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도와 같은 명상을 하는 시간이 많은 성직자들이 알츠하이머 질환 발생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종교가 어떻게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종교인들이 좀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 예로 신앙인들이 음주 및 흡연 비율이 낮고, 비만도 적다는 점을 제시했다. 또한 ‘그 분’이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동료 신앙인들로부터 받는 정신적 지원이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했다.

“신앙인의 죄책감이 건강 더 해친다” 반대론도

일반적으로 신앙인이 삶의 목적이 더 뚜렷하고, 그로 인해 더 행복해 하는 경향이 있다. 기도나 참선과 같은 명상 행위가 인간의 면역력을 높여 질병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의 가르침도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구상에서 에이즈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혼외 정사를 금지하는 율법을 따르는 이슬람교도들이 에이즈 유발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같은 신앙의 ‘웰빙 효과’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도 적지 않다. 신자에 대한 구분과 신심의 깊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보다 죄책감을 더 심하게 느끼는 종교인들의 심성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종교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주류 학자들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의과 대학들도 종교를 치료 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종교인류학자는 “감기에 걸린 사람이 신을 애타게 찾는 일은 드물지만, 지병이나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치료와 더불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현대인들의 내면에는 그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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