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조직이 결정하면 독자 후보 나설 수도"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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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 강령에도 들어 있다시피 당면한 목표입니다. 노동법 개정 투쟁을 벌여놓고 최종 해결은 정치권에 맡겨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그 시급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10년 만에 넥타이 부대를 다시 거리로 끌어낸 올해 초 노동법 투쟁 이후 이를 주도한 권영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의 대중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대권 주자들의 실명이 거론된 정치 소설에서 그는 국민 후보로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민주노총은 개정 노동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합법과 불법의 기로에서 표류하고 있다. 배는 떠도는데 선장의 주가는 올라가는 모순적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고자 지난 5월17일 그를 만났다. 권위원장은 이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노동계‘권영길 독자 후보론’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대선 후보 문제는 조직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 노동법 통과로 합법화한 민주노총 설립 신고서를 정부가 반려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난달부터 노동부가 법적 효력을 다투고 있는 저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언론에 흘리면서 초점 흐리기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립 신고서를 반려한 주된 이유는 전교조가 민주노총 산하 단체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명백히‘결사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해 놓고 국제적 추세인 교원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외무부 등 일부 부처에서는 교원과 공무원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정부의 방침이 오히려 국제간 교류를 방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하튼 정부측은 5월28일까지 설립 신고서를 보완해 제출하라고 통보한 상황인데, 어떻게 대처할 생각입니까?

사실 노동부가 보낸 공문에는 구체적 반려 사유가 적혀 있지도 않습니다. 언론에다가는 전교조와 간부들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면서 왜 정작 우리에게 보낸 공문에는 이를 적시하지 않는 겁니까? 이는 교원의 단결권 불인정 등을 이유로 국제 사회가 압력을 가해올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 신고서 반려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공식으로 노동부에 요구해 놓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불인정 등을 들어 통상 압력이나 국내 수출품에 대한 하역 거부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합법화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보장은 민주노총의 입장인 동시에 제 개인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교조를 배제하면서까지 합법화에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편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간부들의 해고 상태가 문제가 된다면 간부들이 새로 취직하면 되는 것이고, 전교조도 설립 신고 당시에는 잠시 배제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가입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법을 쓰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우회하지 않고 정도를 걷겠다는 거죠.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깨뜨리겠다는 민주노총의 선언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들리던데요.

우리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서 삼성이 그런 전근대적 원칙을 고수하는 한 우리나라를 노조 탄압국으로 지목하는 외국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는 수출 전략 위주로 짜인 한국 경제의 활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해당 기업의 이익 신장과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 삼성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삼성 쪽에서 민주노총을 음해하고 저에 대해서도 음모적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 강온파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처럼, 그것도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이 금한 공무원 노조 건설을 위해 물밑 작업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현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해 자생적으로 출발한 논의가 민주노총의 조직 확대 전략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현재 광범위한 추진 세력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물밑에서 나와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게 될 겁니다.

대선 전략과 맞물려 올 하반기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올해 안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5월 임금 투쟁 분위기가 예년에 비해 상당히 침체한 느낌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최근 경제 위기론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 상반기 임금 투쟁을 연말부터 준비하게 마련인데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노동법 투쟁을 하느라 임금 투쟁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조직 정비도 덜 됐고…. 그래서 올해는 임금 투쟁의 정점이 5월이 아니라 7월쯤으로 늦춰질 전망입니다.

여야 영수회담으로 마련된 경제대책회의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는데, 목표했던 성과는 거두고 있습니까?

애초부터 경제대책회의는 한보 사태로 정치권이 혼미를 거듭하는 데 대한 국면 전환 성격이 컸던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한 모임이죠.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은 참여를 결정하면서도 경제 위기와 대책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정도로 의미를 국한했기 때문에 성과를 말할 형편이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대책회의 참가 여부를 놓고도 적지 않은 내부 진통이 있지 않았던가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내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재계와 정보기관이 이런 사실을 과장해서 유포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유독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조직에서건 강온파간 갈등은 있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권위원장이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평도 있던데요.

지금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훼손될 정도로 강온 대립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결정 과정이 더디고 복잡한 것은 그만큼 여론 수렴 과정을 철저히 거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결정 과정이 더디다고 지적받는 것도,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를 조정과 조율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과 재야 쪽에서는 이른바‘권영길 독자 후보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독자 후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강령에도 들어있다시피 당면한 목표입니다. 노동법 개정 투쟁을 그렇게 벌여 놓고도 최종 해결을 정치권에 맡겨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그 시급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했고요. 그런 차원에서 전국연합과 정치세력화 필요성에 합의했고 대선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현재 두 단체가 주도하는 정치 개혁 선언을 위해 서명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독자 후보를 내세운다고 했을 때 권영길 위원장만큼 노동계 표를 결집할 수 있는 인지도 높은 후보도 없는 것 아닙니까?

(이 대목에서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글쎄요. 조직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이 결정하면 후보로 나설 의향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아니, 아니, 그건 아녜요. 조직이 아직 논의를 한 바도 없기 때문에…(이때 돌고 있던 녹음기가 꺼졌다. 그는“때맞춰 잘 꺼졌군요”라며 엷은 한숨을 뱉었다). 5월 말 중앙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7월께에는 최종 대선 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권영길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조직에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특성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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