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환경단체들 이권 놓고 난장판
  • 부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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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 한국티타늄 공장 건설 싸고 “환경 팔아 이권 챙긴다” 서로 티격태격… 당국은 모른 체
온산공단이 달아오르고 있다. 경상남도 울산시 동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온산공단은 70년대 말 ‘온산병’이라는 신종 공해병으로 눈길을 끈 이래 ‘공해 백화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85년에는 정부가 온산면 일부 를 공해 지역으로 지정하고 주민 7천여 명을 집단 이주시켜 유례 없는 ‘공해 실향민’까지 생겨났던 곳이다.

최근 온산면을 들끓게 하고 있는 문제 역시 공해에서 비롯했다. 서울에 본사를 둔 한국티타늄공업(주)이 온산에 이산화티타늄 공장을 포함하는 대규모 무기화학단지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이해 관계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갈라서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찬반 양측의 대립은 지난 4월 두 환경단체 간의 맞고소 사태와 함께 본격화했다. 울산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한기양 목사는 4월10일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온산 환경보존협의회 이인섭 회장과 회원 20명을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의장은 이들이 환경운동연합의 티타늄공장 입주반대 농성장을 습격해 도끼로 폭행과 살인 위협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해 대해 이회장측은 무고임을 주장하며 한의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한의장이 자신의 환경단체를 사이비라고 규정하고 이권 개입설을 퍼뜨리는 등 매도해 왔다는 것이다.

농민도 “우리만 소외됐다” 강력 반발

이같은 환경단체 간의 갈등은 티타늄공장 입주에 대한 양측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한의장은 그동안 울산 지역 재야·노동단체들과 연대해 강력한 입주 저지 운동을 펴왔다. 그러나 이회장과 온산 환경보존협의회는 ‘가동후 철저한 감시’를 내세워 입주를 사실상 지지해 왔다. 이 협의회는 지난 3월에는 10여개 관변 단체를 모아 온산이주민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한국티타늄으로부터 공장 건설 공사의 소규모 협력(하청)업체 선정을 위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협의회장으로 추대된 이석준씨(61·온산면개발위원장)는 79년 ‘온산병’을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등 환경 문제에 해박하고 지역 주민의 신임도 높은 인사이다. 그러나 협의회는 운영요강에서 ‘업체 선정시 이주민 우선 원칙’과 함께 이 단체만을 티타늄측과의 대화 창구라고 못박아 이권 관리를 독점할 의사를 분명히했다. 이 때문에 환경운동연합은 온산환경보존협의회를 ‘환경을 빙자한 이권 개입 단체’라고 공격해 왔다.

그렇지만 온산면 주민들이 울산 환경운동연합에 보내는 눈길 역시 곱지만은 않다. 왜 가동중인 공장들의 공해 배출을 감시하는 일보다 상투적인 입주 반대 운동에 주력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낸다. 또, 한 기업체의 열병합 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던 한의장과 ㅈ간사가 지난해 10월 회사측이 경비 일체를 부담한 9박10일간의 유럽 발전소 견학 여행단에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거기다 최근의 맞고소 사건에서마저 환경운동연합측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구설에 올라 있다. 한의장은 고소장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테러 현장을 방관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장 사진에는 ‘도끼 난동’흔적이 드러나 있지 않다. 사진을 촬영한 구정필 울산 남부경찰서 덕신 파출소장도 “농성장 상황을 파악하려고 스스로 방문했을 뿐 폭력 신고는 없었다. 도끼 난동이란 사실무근이다”라고 말했다.

울산 환경운동연합과 온산 환경보존협의회가 공방을 벌이는 사이에 온산 지역에는 또 다른 환경단체가 생겼다. 지난달 발족한 온산 공해대책주민회의(의장 김규표)가 그것이다. 이 단체는 지역 여론을 수렴한 후 입장을 정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주민토론회를 두 차례 열었다. 환경단체라기보다 권익단체임을 인정하고 출범한 것이다.

5월13일의 2차 토론회에는 울산 경실련측 류석환 교수(울산대·화학과)와 한국티타늄측 관계자가 토론자로 초청돼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주최측은 행사 당일 일방적으로 티타늄측 초청을 취소했다. 격분한 주민들의 돌발 행동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토론회는 류교수의 강연과 ‘티타늄 성토대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날 토론회장에 나온 회사측 관계자들은 우려와 달리 아무런 ‘봉변’도 당하지 않았다.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청석을 지켰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초청과 취소가 애초부터 계획된 행동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회원들의 환경운동 전력을 살펴보면 사실 주민회의의 활동 방향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이 단체는 90년부터 온산 지역에서 활동한 온산 공해대책협의회(공대협)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공대협은 회원들이 온산공단 입주 업체들을 대상으로 각종 사업을 벌여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울산 환경운동연합 온산지부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가 결국 지난해 10월께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는 검찰의 환경단체 내사설이 나돈 때였다. 이들은 지금도 구내식당 경영, 화공약품 및 식육 납품 등으로 기업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지난 2월 초순 일부 회원이 식당 운영권과 페인트 도장 공사를 따내기 위해 한국티타늄측과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환경’을 표방한 덕신리 주민 중심의 단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자, 농민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집단 행동에 나섰다. 온산공단에 인접한 강양·삼평리 11개 마을 농민 2백여 명은 5월12일 티타늄 공사 현장에서 농성을 벌여 작업을 중단시켰다. 농성장에 등장한 ‘이권 개입 이중인격자 농민이 몰아내자’는 피켓은 환경단체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었다.
정부, 업체 두둔… 회사만 어부지리

농민들은 온산공단 입주 업체들로부터 매년 공해로 인한 경작물 피해 보상을 받고 있다. 84년부터 현재까지 총 25억원, 지난해에는 4억원을 경지 면적에 따라 나누어 받았다. 온산면 인구 2만명 중 1만7천명이 이주민 상가 지역인 덕신리에 집중돼, 인근 지역 농민들은 평소에 각종 논의에서 소외돼 왔다. 농촌 지역에는 ‘직접 피해는 농민이 입고 혜택은 덕신리에서 빼먹는다’는 피해 의식이 팽배해 있다.

주민들 사이에 팬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어부지리를 얻는 쪽은 한국티타늄이다. ‘잿밥’에만 눈길이 쏠리다 보면, 사태의 본질인 공해 문제는 관심권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산화티타늄은 고무·섬유·페인트·가전제품·치약 등 다양한 분야에 백색 발색제로 쓰이는 첨가물이다. 그 자체에는 독성이 없으나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공해 물질이 발생한다.

현재까지 한국티타늄측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보인 일련의 행동은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수준이다. 회사측은 공해가 없는 후처리(코팅) 공정을 짓는다고 밝힌 후 주민들 모르게 전처리(생산) 공정으로 계획을 바꿨다. 93년 사업 변경을 허가해 준 황아무개 울산군수는 직무 관련 비리로 불명예 퇴임한 후 지난 3월 한국 티타늄 사업기획본부 부사장으로 영입돼 온산 공사 현장의 총지휘를 맡고 있다.

공사 지역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데도 행정 당국이 이를 외면한 채 업체를 두둔하기에 바쁜 것도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티타늄이 지난달 울산시에 제출한 공사착공 신고서에는 ‘온산 면민은 티타늄 입주에 대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해 민원 발생 소지가 없다’는 민아무개 온산면장의 의견서가 첨부됐다. 울산시와 낙동강 환경관리청도 ‘시·군 통합 전에 울산군이 허가한 사업이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라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기업체 신규 입주 때마다 되풀이되는 온산 지역의 ‘환경 소요’는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류석환 교수는 현행 환경 영향 평가제도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영향 평가의 취지부터가 사업 시행을 전제로 하고 있고 평가 주체도 기업 자신이어서,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말썽을 빚고 있는 한국티타늄의 경우에도 건설 공사를 수주한 삼성엔지니어링이 대우 엔지니어링과 공동으로 환경 영향 평가를 대행해 영향 평가의 의미를 잃었다. 평가 내용에서도 상당 부분 허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조작 시비까지 일고 있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환경 정책과 기업의 도덕성 결여, 환경을 팔아 이권을 추구하는 일부 주민의 틈바구니에서 온산의 바다와 하늘은 지금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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